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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 Jan 01. 2018

A, R. (1)

사랑, 동경, 삶에 대한 탐구적 스케치


A는 가정사의 지리한 단면을 표현하는 것엔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그것은 너무도 케케묵은 주제라서, 소리지르며 쿵쿵 걷는 아버지와 그가 던진 물건을 피하는 어머니, 겁에 질려 떨고 있거나 왠일인지 아버지에게 항변했다가 결국 된통 당하는 꼬마 여자애 같은 얘기들을 하나 더 안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은 없었다. 그런 비극은 늘상 일어나는 법이니까. 그래서 그랬을까, A는 아버지라는 족속들이 알 수 없는 분노로 발작을 일으킬 때면 언제나 집 구석, 곰팡이 냄새가 퀴퀴한 장롱 안으로 숨었다. 그곳에서 손전등을 켰고, 어디선가 얻어 온 귀마개를 꼈다. 그러곤....


하릴없이 스노우볼을 흔들어 대거나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동화책을 읽었다. 스노우볼 속 사람들은 얼마나 평화로운지! 작은 스티로폼 눈이 이 작은 세계 안에 떨어질 때, 그 속에서 가족들은 행복했다. 아버지는 검은색 가죽으로 된 책을 읽었으며 (그 당시에 그녀는 그것이 성경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꼬마 여자아이는 우아한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를 두른 채 맛있는 터키 구이 만찬이 차려진 나무 식탁 앞에 앉아 미소지었다. 어머니는 우아한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한 손에는 따스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황금빛 촛대를 들고 걸어나왔다. 그러면 창문 밖에서는 귀여운 합창대원들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운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그들의 포즈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입김도 나지 않았지만, 추위에 얼어 그들의 앙증맞은 손과 코가 발갛다는 점이 스노우 볼 속 날씨가 꽤 춥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듯 했다. 하지만 걱정 마시길! 작은 집 안의 벽돌 벽난로에서는 따듯한 불이 피워져 있었으니까.


동화책 속에서는... 장화 신은 고양이가 아름다운 독일의 성들을 종횡무진 누볐다. 하늘색 프릴 잠옷 입은 어린 아이들이 폭신한 침대에서 뛰어놀았고 창문을 열면 햇볓 가득 들어오는 작은 발코니에는 장미꽃이 만발해 있었다. 어쩌다가 오해가 생겨 고아원에 들어가는 일도 발생했다. 하지만 주인공은 너무도 예뻤고 심성이 고왔기에 결국 누군가는 숨겨진 원석을 알아보곤 그 고결한 품성과 귀여운 외모에 반해 다시 원래의 자리로, 즉 공녀의 자리로 주인공을 되돌려 둘 것이었다. 하지만 A는 언제나 자신이 그런 소공녀 같은 존재가 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일 자신이 동화책에 출현하게 된다면 심성은 좀 착하지만 투박한 사투리를 쓰는 하녀 '베티'같은 인물로 등장하겠지.


다행히도 A는 감수성이 예민했던 만큼 머리도 왠만큼 빨랐고, 무엇보다도 ‘가정’이라는 진창을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은 흔들리지 않고자 했다. 그녀는 비좁은 집에 오면 언제나 귀 멍멍한 소리로 틀어져 있는 TV 소리, 술이나 마시며 세상을 한탄하며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 아버지, 주눅들어있으면서도 아버지를 닮아 어머니에게 호령하기 시작한 가증스런 남동생들 (그들이 하는 것이라곤 빈둥대며 TV앞에 붙어있거나 가상의 게임 세계 속으로 도피하여 또래들과 상스러운 욕설을 지껄이는 것 밖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을 피해 구석으로, 구석으로 도망치곤 했다.


오로지 '벗어나기 위해서.'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늘상 거의 혼자 지내며 요구되는 어마어마한 공부를 했고, 나가서 카페니 편의점이니 아르바이트를 했다. 물론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인간들이란 너무도 천박했다. 술이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머리 벗겨진 아저씨, A의 외모가 어떻느니 하는 땅딸막한 30대의 남자 카페 사장, 카드를 집어 던지다시피 하는 아주머니들. 그 외에는 아무런 교류도 없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수백명의 다른 사람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냐고? 일단 한번 '그 곳'에 당도한다면, A의 모든 고통이 보상되리라고 생각했다.


자신과 동류의 사람들이 있는 곳. 더 섬세하고, 더 세련되고, 더 부드럽고, 추악한 분노나, 떼쓰는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서도 서로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정겹게 산다는 것의 고통을, 슬픔을 토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 말이다. 사실 진짜 그런 곳이 있는지, 자신과 동류의 사람들이, 말하자면 '같은 영혼의 재질로 이뤄진' 종족이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딘가엔 그런 곳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곳을 향하는 여정이 얼마나 고되건 간에 일단 도착하기만 하면 처음으로 마음을 놓고 긴 한숨을 쉬어보리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혼자 고상한 척’ 한다는 가족들의 비아냥거림도, 구질구질한 동네도, 연예인이 어쨌니 남자친구가 저쨌니 밖에 말할 줄 모르는 또래들과의 사교생활도, 일과 공부를 동시에 해야 하는 육체적 고단함도 참아냈다. 한밤중에 모든 일이 끝나면, 그녀는 도서관에서 빌려 온 서양 예술사 책을 거의 쓰다듬듯이 들여다보곤 했다. 고딕 성당. 미켈란젤로가 지었다는 르네상스 도서관. 꿈틀대는 바로크 조각들.


무슨 의미인지, 어떤 맥락이고, 어떻게 빚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반짝이는 컬러 용지 위에 인쇄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목이 메어왔고, 잃어버린 세상의 몇 조각을 찾은 느낌이 들었다. <서양미술사>. 그 두꺼운 책이 덮어져, 아버지와 무뢰배 같은 동생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서랍 속에 고이 들어가기 전 까지, 그녀는 그렇게 하염없이 보고 또 보았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 A는 강했다. 남들이 보기에 그녀는 퉁명스러웠고 몸집이 컸다. 그리고 투박했고 어딘지 거친 데가 있었다. 여자애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여리여리함, 나긋나긋함, 싱긋 웃는 미소와 친절한 눈웃음, 그것도 아니라면 사람들이 ‘분위기’라고 부를만한 우아함을 결여하고 있었다. 그런 자질들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기 위해서 필요한 <성장 환경>이라 할 만한 것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생존 방식은 감정을 숨기는 퉁명스러움과 거의 냉정하다고나 할 수 있을 법한 (물론 가장된 것이긴 했지만) 무관심이었다.


또 그녀는 자신이 그다지 예쁘지 않다는 사실을, 아니, 그것 이상으로, 자신이 줄곧 무언가 정제되지 않은 거칢, 날것의 격렬한 감정 같은 것의 느낌을 풍긴다는 사실을 일찍이도 알고 있었다. 물론 호감과는 거리가 먼 인상이었다. 하지만 경멸할 테면 경멸하라지! 일단 ‘그들’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면…. 그들은 사회가 정한 통념의 렌즈를 통해 그녀의 외견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장애물을 뚫고 그녀의 본질을 바라봐 줄 것이었다.


A는 첫 걸음을 내디뎠다.


원하던 대학에 합격한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그러나 거기서 본 인간들 역시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들, 유복한 가정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새침하거나 해맑은 태도, 그리고 자연스레 묻어나는 제스쳐의 세련됨 같은 것들은 사실 그들의 지성이나 감성의 날카로움에서 비롯됐다기 보단 그저 유복함이 만들어 낸 생활 습관에 더 가까웠다.


게다가 그들 역시 A가 동네에서 만난 수많은 친구들의 근본적인 물질주의를 공유하고 있는 듯 보였다. 가령, 삶의 의미라던가, 예술의 의미, 예술가들이 한때 가졌던 세계관이 어떻다던가 등의 이야기를 할 때 보여주는 태도 말이다. A의 동네 친구들은 멋쩍게 웃으며 새삼스레 그런 것을 다 묻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태도로 일관했고, 대학교의 유복한 시민들은 그런 질문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는 A를 나이브한 어린애 취급하거나 삶을 사는데 있어 하등 쓸모 없는 주제에 ‘매몰돼 있다’는 것처럼 생각했다. 게다가 그들은 A가 오만하다고 생각하고는 그들의 논리로 A가 제기한 문제의식의 무용함을 증명하려 애쓰기까지 했다. A는 너무 ‘예술’을 맹신하는데, 사실 그것은 정치와 경제를 결여한 한량들의 자족적 세계임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식이었다.


모쪼록 A는 여전히 외로웠다. 아직 ‘그곳’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 아닌가…? 그렇대도 대학 강의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놀라웠다. 아무리 시대가 ‘인문학의 죽음’을 외친대도, 예술과 사회와 철학의 저변을 탐사하며 인간성을 탐구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아직도 경이로웠고 언제나 특정한 부류의 젊은이들을 매혹시키기 마련이었다. 매 강의가 A에게는 너무도 부족했던 자기확신을 더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로 자신의 생각, 동경, 사상, 취향이 허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게다가 이미 수많은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이 그 똑같은 길을 탐사해왔다는 확신이었다.


하지만 먼 길을 돌아돌아, 수천명의 인파에 쓸리고 쓸려 서울의 변두리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자면, 강의실에서 배웠던 모든 것들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증발해 버리는 것 같았다. 여전히 아버지는 술을 마셨고, 다 커가는 남동생들은 귀청이 찢어질 정도로 TV를 틀어댔으며 서로 큰 소리로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싸우거나 어머니에게 간식을 주문했다. 오,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빚어진 증오스러운 작은 소굴. 이러한 임대 아파트에서 이미 수천, 수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살아가면서도 서로서로 증오하고 있다니. 그러면 때때로 이 괴리에 너무도 절망스러워 마음이 찢어지는 듯 했고 어머니의 낭비된 삶에 분노했으며 가족마저도 증오하는 자기 자신의 황무지 같은 내면에 놀라 경악하기도 했다.


구원의 빛 줄기는 흔히들 인생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대학교 시절이 끝나갈 때 비쳐왔다. 자칭 재빠른 두뇌회전과 (그것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논리적, 수학적 영역이 아닌 것은 확실했지만) 날카로운 감식안, 빗나가는 법이 없는 감성을 지닌 세 명의 대학생, 그리고 한 명의 청강생인 신예 작가였다. (그들은 한 수업에서 만났다.)


그들은 A를 발견하자 마자 외쳤다.


“도대체 그 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니!”


그들에게 있어서 A의 다듬어지지 못한 태도라던가, 적절한 사회화에 의해 교정되지 못한 과격함, 그에 비해 거의 예언자적인 비관적 전망은 뭐랄까 성장 환경에서 비롯된 개인적 특성이라기보단 A의 예술가적 성정을 드러내 주는 지표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신진 멤버를 환영했으며 정신 없이 서울의 구석 구석으로 끌고 다녔다.


많은 돈이 소비되었다. 그들은 서울의 상업적인 천박함을 참을 수 없으므로, 또, 수중에 돈이 없음에도 돈을 마구 탕진하며 자본주의를 능욕하자는 어이없는 발상 덕분에, 새로 지은 호텔의 끝내주는 칵테일 바에 앉아 술을 한잔 두잔 들이키곤 했다. 그러면서 E는 자신이 학부를 졸업하면 베를린으로 떠나 미술 대학원으로 입학할 것이며 화려한 유럽 예술계에 발을 디디게 되리라 호언 장담했다. R역시 비슷했다. 인간들로 넘쳐나면서도 획일된 삶의 가능성만을 지닌 소비에트 풍 아파트의 제국 서울에서 벗어나, 차라리 포스트모던적으로 메갈로폴리스인 뉴욕으로 떠나 작가로 성공하겠다는 것이다. K는 유럽이던지 미국이던지 예술사나 예술 비평 쪽으로 대학원에 갈 것이었고 그녀의 재능을 단박에 알아본 명문대학원이 풀 펀딩을 지급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면 그들은 A에게 물었다. 너는?


A에게 미래는 난제와도 같았다. 꿈을 꾸기에 그녀는 너무도 가난했고, 그렇다고 꿈을 접기엔 너무도 자아의식이 강했다. 그러면 씁쓸함에 사로잡힌 A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인간 세상은 근본적으로 타락했어. 정치적 부조리이건 실존적 부조리이건, 어딜 가나 인간 조건의 한계에 마주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카톨릭이 그토록 심연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외쳤던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옛날에도, 지금도 우린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으니, 절대에 의존하고자 하는 절박함을 우매함이나 소심함으로 매도할 수만은 없어. 사랑, 믿음, 재능, 그 어느 것도 증거 없이는 추상적인 신변잡기론에 불과하거든. 하지만 증거를 얻으려면 우린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야 해. 적당주의로는 생존 정도만을 보장받을 수 있을 뿐이며, 피가 묻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으니까. 그래서 결론적으로 젊음을 낭비했는지, 아니면 정말로 무언가 만들어 냈는지는 모든 것이 쓰여진 후에야 알 수 있어. 인생은 한치도 양보하지 않아.”


그들은 A를 피하는 대신 그녀에게 박수를 쳤다.

“우리의 쇼펜하우어 선생!”

“하지만 그대들은 피를 묻힐 자신이 있는지?”

“젊음을 낭비할 자신은 있지.”

R이 입술로 편지 봉투를 핥았다.


“누가 그녀의 소중한 젊음을 앗아가나!”

“철학과 L교수.”

“아, 인문대생들의 영원한 이상형 말이군! 클리셰라고.”


“너희들이 봤어야 되는데. 어느 날은 교실의 불을 모두 끄게 했어. 그러곤 말러의 아다지에토를 틀었지. 겨울이었고, 강의실 창 밖으로는 황량한 겨울 산이 석양 속에 질식하는 중이었어. 보들레르가 멋지게 한 구절 묘사한 바 있는 날이었다고나 할까. 장중한 음악에 우리들은 홀린듯 귀 기울였고… 그러면서 L교수는 비스콘티의 영화를 거론하며, 자신은 철학과의 교수지만, 이런 음악을 듣는 날에는 진지하게 영혼의 존재에 대해 묻는다고 말했지. 철학적 사변을 넘어선 영혼의 감동을 느꼈으니까. 상상도 못할 거야, 나는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흔들렸어. 그 순간 모든 외로움이 정당화 됐거든. 저기, 나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사람이 서 있다.”


바깥 공기는 너무도 차가워서 목을 에게 했고 재채기를 유발했다. 비루한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R은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과 비교하면 이런 광경이란 그저 어설픈 흉내내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토불이 나무들이 뭣도 모른 채 전구에 목 졸리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게 느껴진다고 비꼬았다. 그러나 A는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R은 얇고 섬세한 자신의 손에 담배를 끼웠다. 그녀에게서 지극히 우아한 불가리아 장미 냄새가 풍겨 나왔다.


“네가 아까 카톨릭에 대해 한 말 말이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지만 R에게 뭐라고 한다는 말인가! 끈질기도록 변하지 않는 삶의 타성, 폭력과 나태함 속에서 서서히 망가져가고 스러져가는 삶, 그러나 결국 진정으로 살아있는 상태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낭비하고 있다는 아주 조그마한 회한만을 가지고 그 모양 그 꼴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대신 A는 이렇게 말했다.


“알잖아. 인간이란….”

“그래….”

침묵이 흘렀다.


R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우아했다. 맑은 안색, 훤칠한 키, 유행에 따르지 않았으면서도 멋스럽고 댄디한 옷차림, 절도 있는 동작과 태도. 그런 것들이란 돈을 주고서도 사기 힘든 특징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는 듯 약간의 자의식적인 태도도 묻어 나왔는데 오히려 그 점이 R을 더욱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R은 우수에 깃든 음침한, 그러나 허스키해서 매력적인 어조로 말했다.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인물들은 우주에 남겨진 단 하나의 종족, 그래서 자기 자신의 존재의 비밀을 스스로 풀어내야만 했다고 말했지.”


A는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의 사랑이란 나약하기 그지 없는 것. 하지만… 어떤 순간이 있어. 단 하나의 단서, 몇 초의 순간, 어쩌면 내 모든 것이 이해될 것이고 내 모든 것이 받아들여질 것이라 믿게 되는 순간.”


하지만 R은 틀림없이 사랑 받을 것이었다! 우수가 묻어있지만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태도, 인간적인 향취, 순발력과 자신감, 그녀가 동경해 마지않는 교수건 누구건 간에 R은 자기 자신으로 사랑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A는 이유 모를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왜?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친구들은 모두 뛰어났고 거리낌이 없었다. 그들은 삶이 제공하는 것이 무엇이건 쉽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찬찬히 걸어 모두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A는 자신이 언제나 한쪽에서는 심연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 발을 헛디딘다면? 두 번째 기회는 없을 것이었다. 인생이란 본디 어떤 사람들에 있어서는 자비롭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자신은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볼품 없는 인간이란 말인가? 언제나 미적미적대는 몸짓,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의식적이 되어버린 미묘한 습관들, 우아하긴커녕 투박한 생김새와 누르죽죽한 안색. 아, 자기 자신을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정녕 알 수 없을 것이다. R의 아름다움을 들여다보며 A는 거울을 보는 듯 했고, R에 매료될수록 자신의 추함에 시시각각 마음을 파 먹힌 듯 고통스러웠다.


https://brunch.co.kr/@victorin/77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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