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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 Jan 01. 2018

A. R. (2)

사랑, 동경, 삶에 대한 탐구적 스케치


어느 날 R은 외롭다고 말했다. A는 그것이 왠지 자신한테 하는 말 같아 안쓰럽고도 설렜다. R옆에서 걸으면 그들의 팔이 스치곤 했다. A는 마음 속에서 파문이 이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는 또 같이 아랍식 물담배를 피우며 예술과 삶, 사랑들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R은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하는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확신이 R을 약간은 무심하면서도 빛나는 인물로 만들었다. A는 그 주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내면의 절망은 더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언젠가는 R에게 그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불모의 땅, 그 황무지의 세계에 대해 털어놓고 싶었다. 어쩌면 이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저주는 영원히 깨져 버릴 텐데.

어두침침한 지하실을 와인 바로 개조한 어떤 외딴 공간에서, 그들은 그들 앞에 펼쳐진 인생이란 평원에서 어떤 일을 벌일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희들에게는 인생과 미래란 게 자연스럽고도 쉬운 것 같아.”


“그건, 다 허세야. 우리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어. 말만 거창하게 하고는 평범하게 살 지도 모르지. 주식 투자, 혹은 투기 정도가 취미인 인생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너희에겐 일말의 확신이 있잖아.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능력에 대한 확신.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확신. 심지어는, 사랑에 대한 확신 까지도. 그런데, 그것을 결여한 사람들, 종족들이 있는 법이거든.”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


“가끔 절망이 나를 파먹는 걸 느껴.”


하지만 말할 수록, A는 점점 더 외로움이 자신을 옥죄어 오는 것을 느꼈다.


"아, 정말이지! 나는 완벽하지 못해. 아니, 나는 너무도, 너무도 불완전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웃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나는 아무것도 몰라. 나는 절대로 절도있게 다가설 수 없어. 나는 너무 뜨겁고 너무 차가워."


A는 R의 팔목을 잠시 잡았다. 마치 호소하듯 말이다. 그러나 R은 A의 약간 거친 태도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까다로운 취향에도 불구하고 A의 절박한 호소에는 어딘가 마음을 울리는 데가 있었기에. 그래서 R은 당황했으면서도 A의 눈가에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 한 줄기를 슬쩍 닦아주었다. 


그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R은 영원히, 완전히는 알 수 없을 것이다. A가 내뱉는 고통의 언어들이 상당부분 R을 향한 것임을, 아니, 하나 하나가 R에게 외치는 모종의 외침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이것이었다. '날 이해해줘, 제발. 그리고 그럼에도 날 사랑해 줘.'


그들은 서로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R의 마음 속에 모순적인 생각들이 일었다. 이 애는 어쩌면 나를 사랑하고 있어. 아니라면 적어도 동경하고 있어. 하지만 A의 모습을 보라.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뭐라 말하기 힘든, 맹목적이면서도 가련한 새끼 동물 같은 뭔가가 꿈틀대고 있었다. 너무도 사랑을, 삶을 원하면서도 무척이나 요령 없고 더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며 자신을 깨물고 있는 뭔가, 말하자면 A의 적나라한 자아가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연민과 안쓰러움을 불러 일으켰지만 사랑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리고는 약간의 경멸.


A쪽에서도 이 소동이 끝나버렸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자신을 포함한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날것의 진심보다는 진심을 저변에 둔 스타일, 말하자면 ‘유혹’을 필요로 했다. 스타일의 얼음장이 무너지는 순간, 관계는 미숙한 요구들과 날것의 감정들로만 채워질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와 서로를 구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아슬아슬, 가뿐가뿐 걸으며 한번도 걸어본 적 없는 저 멀리의 지평으로 향하는 대신, 뜨겁고도 고통스러운 단시간의 폭발 속에 자신을 잃고는 우스꽝스럽게도 상대방의 발 밑에 몸을 던질 것이었다. 그것은 추했다. 예술적이지 못했다.


R이 이런 미학적이지 못한 행동 방식을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A도 그러한 방식을 증오했다. 그러나 A는 완전히 이해받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고 느꼈다. 이 절박한 욕망, 자기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은 언제나 저주처럼 A를 따라다녔다. 그것은 모든 관계의 전제 조건이 되어야만 했다. 거의 종교적인 철저함으로 A는 자신을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드러내고자 했다. 그 어느 거짓도 없어야 한다고, 그 어떤 위장, 기만, 허식, 그것이 무엇이건, 가장 솔직한 벌거벗은 모습으로 상대의 목전에서 서로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가능할 때, 저주는 풀릴 것이고 모든 고통은 보상받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했다. 


A는 자신이 받아온 상처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R은 그 미숙함을 휘저어 A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꺼내 줄 수 있을만큼 자애롭지 않았다. R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어떤 제단에 바치듯 자신을 더 높은 누군가, 자신이 약간의 경외심을 유지할 수 있는 누군가를 향해 바치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제스처는 우아해야만 했고, 누가 누구의 우위에 서 있는 것인지 미뭉스러울 만큼 미묘해야만 했다.


R은 마지막으로 A의 손을 꾹 눌러 잡았다. 그는 그다지 차가운 인간은 아니었기에,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너도, 너 자신을 찾게 될 거야."


하지만 A도, R도, 그러한 일이 현실에서는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R의 미소에서 A는 그러한 의혹, 서글퍼하면서도 이토록 요령 없이 솔직할 수 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경멸을 읽어냈다. R은 숨겼다고 생각할 것이다. 동물과도 같은 감각으로 A가 사실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어쩌면 모든 것을 보면서도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이 A가 받은 절대적 저주인 걸지도 몰랐다.


그 후에도 인생은 잘도 흘러갔다. 그들은 계속 좋은 친구들로 지냈으나, 어쩔 수 없는 삶의 조류에 떠밀려 점점 더 멀어져 갔다.


A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래서 자신과 R, 혹은 지난 사랑, 또는 동경, 그것을 뭐라고 부르건 간에 그런 것들을 생각할 새가 없었다.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일이 결국 무슨 의미인가 되묻곤 했다. 이 회사의 특정 상품을 어떻게 많이 알리고 팔 지에 대해 인생의 80%를 할애해야 하는 삶은 조금 끔찍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글을 쓸까? 예술가가 될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저 절망 속으로 끌려들어가지 않으려면,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뭔가의 일부가 되려면, 이렇게 발버둥쳐야만 했다. 게다가 A는 강했다. 인생에 대한 씁쓸함이 파도처럼 몰려와도 주먹을 쥐면 감정이라는 파고를 넘어설 수 있었다. 흔들리지 않았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리고 다행히도 일은 그 자체로 재미가 있어서, 모든 것을 잊고 전념할 수 있는 도피처 같은 것이 되어주기도 했다.)


간혹 가다 그때 그 시절 친구들의 소식이 들려와 마음을 아프게 했다. R은 정말로 뉴욕으로 떠났고, 작가는 아니더라도 아시아 문화에 관련된 센터에서 나름대로 인정받으며 잘 살고 있었다. 언젠가 블로그에서 R과 관련된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같은 문화 계통에 종사하는 잘생기고 우아한 남자와 함께 살며 인터뷰를 했다. K는 초야의 비평가로 책을 몇 권이나 낸 상태였다. 그러면서 동아시아, 유럽, 미주를 떠돌며 나름대로 자유로운 삶을 즐겼다. 베를린에 간다던 E는 실제로 손가락을 쪽쪽 빠는 예술가 생활을 10여년 간 견딘 끝에 이제는 데뷔전도 열고 잡지에도 실리는 신예 작가로 주목 받았다.


가끔씩 A는 휴가를 떠나곤 했다.


그녀가 원했던 풍경은 무엇이건 간에 광활한 풍경이었다. 널리 펼쳐진 대양, 무한한 파도가 씁쓸하게 몰려와 검은 자갈 해변을 혓바닥으로 핥고 가는 곳. 그것도 아니라면 인간을 거부하는 만년설. 낭떠러지를 뒤덮고 있는 새하얀 눈 속에서 A는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어떤 때에는 전나무 숲이 우거진 에메랄드 빛 호숫가를 끝없이 걷기도 했다. 그러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전에는 그토록 얻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던 행복감 속에서 눈물을 흘리곤 했다. 하지만 외로움은 끝끝내 남아있었고, 그녀는 계속해서 어떤 순간을 상상했다. 그것이 누구던 간에, 그 누군가는 이렇게 말해주리라.


“이제는 어떤 기대도 없어. 그저 흐르는 대로 발길 닫는 대로 걸어봐. 일어날 일은 일어날 거야.”

“이제 더 이상 노력할 필요는 없어. 그렇지 않아도 모든 것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걸.”


그러자 그녀는 아주 많이, 정말로, 지쳐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찾지 못했어.”

“하지만 그런 것이 있긴 있는 걸까?”

“언제나 세상과는 맞지 않는다고 느껴왔는데, 뭘 위해서 이렇게 싸우듯 살아왔던 걸까.”


그래서 더 먼 곳으로 떠났다. 한겨울의 아이슬란드는 마음에 쏙 드는 뭔가가 있었다. 극지의 태양이 잠시 동안이라도 뜨면, 온 세상이, 도로조차도 흰색으로 뒤덮인 모습이었고 그 풍경에는 인간적인 것이라곤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 마음에 위안을 주었다.


A는 가이드도 없이 혼자 아이젠을 신고 외딴 얼음 동굴을 찾아갔다. 백색 설원. 한걸음 한걸음 걸어 갈수록 과거로부터 저 멀리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이 해방감이 좋아 최대한 멀리 걸어가고자 했다.

사실 영원히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저 모든 것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진, 가장 외딴 구석을 찾고만 싶었다. 기억하는 한, A의 마음 속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우주 같은 공허함을 꼭 닮은 공간. 아무도 닿지 못하는 곳 말이다.


천만년 전의 눈 입자들이 한데 뭉쳐 초현실적인 푸른색으로 빛났다. A의 튼튼한 두 발은 미끄러지지도 않고 용케 이 숨겨진 장소를 찾아냈다. 세상이 태어나기도 전, 무정형의 혼돈이란 바로 이랬을 것이다. 해일같이 사선으로 솟아있는 얼음 동굴의 어지러운 무늬 속에는 모든 가능성들이 들어 있었다. 누워있는 개, 죽어가는 인간, 미소 짓는 표정, 굳어버린 눈물.


수많은 형상을 지나쳤다.

한 얼음 기둥 앞에 서기 전까지.


두 팔로 껴안을 수 있을 만큼 얇은 그 기둥 속에는 신비롭게도 (헛것을 보고 있는 걸까?) 두 팔을 벌린 듯, 인간의 형상 같은 무언가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 투명한 형상은 춤을 추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라면 그저 반가워 팔을 벌리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오랫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 온 것 같아.”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진 않았다.

“가장 자연스러운 순간. 억지로 무언가가 되려고 할 필욘 없어. 그저 어디로 향하건, 흐름에 몸을 맡겨 보는 거야. 그러면…”


그녀는 입고 온 모든 것을 벗었다. 그러곤 두 팔로 그 기둥을 껴안았다. 갑작스런 추위에 놀란 심장이 튀어나올 듯 뛰었다. 살이 타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이 춥다는 것일까? 오히려 뜨겁다고 느꼈다. 마음 속의 절대적인 공허. 헛된 절망감. 충족되지 못한 사랑의 절박한 욕망. 그 모든 것이 녹아 내렸고 어쩌면 불 타 없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비밀의 열쇠를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떴다.

어떤 아주머니가 자신의 이마에 입을 맞춰 주곤 이불을 덮어줬다.

사진작가는 거의 숨이 멎어가는 그녀를 발견하곤 작업을 위해 대동한 전문 툰드라 가이드와 함께 그녀를 옮겼다고 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두툼한 손으로 아주머니와 사진작가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A는 사진작가가 되었다.


A는 극지방을 떠돌았다. 죽지 않고서도 세상의 끝까지 가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었다. 절벽을 기어올랐고 희귀한 중앙아시아의 독수리들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적인 사진은 아니었다. 어디서건 자신의 마음 속 지형과 똑같은 풍경을 담아내곤 했으니까. 첫 전시회… 새로 사귄 동료들… 그들의 결혼과, 그들과의 파티, 그들과의 대화, 정겨운 순간들. 다행히 인생은 매분 매초 고통의 칼날을 벼리고 있진 않았다. A는 언젠가는 마음을 다 내려 놓고 웃었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A는 한국으로 향했다.


병원은 고통 받고 아픈 사람들로 붐볐다. 그 와중에도 다리나 팔 하나 정도가 부러진 중학생들은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면서 순진한 눈빛으로 인간 군상을 짐짓 관찰하는 듯싶었다. 아버지는 무력한 모습으로 침상에 누워 있었다. 이미 모든 위해는 가해졌다. A는 어머니와 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눈빛을 주고 받았다….


미세먼지와 매연으로 가득 찬 서울에도 봄은 오는 법이다. 탁한 공기 사이로 이곳 저곳 벚꽃이 만발했다. 창문을 내다보고 있을 때 옆 병실에 익숙한 이름이 스쳤다.


누구더라?


철학과 교수 L. A는 약간 미소를 지었다. 순식간에 젊은 날의 모든 것이 되살아났다. 희망, 학문의 경이로움, 절망, 씁쓸함, 고독, 동경, 그때 나눴던 대화들.


누군가가 조심스런 몸짓으로 병실의 문을 활짝 열었다. 흰 침상은 가족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저 늙은 남자는 L 교수의 제자일까? 딸인지 아들인지 하는 한 사람이 옆으로 비껴나 창문을 열었다. 침상 위에 삐쩍 마르고 주름이 자글자글 진 노인 한 명이 누워 주변 사람들에게 눈빛으로 인사했다. R도 왔을까? 물론 오지 않았겠지. 그들 사이에는 이렇다 할 만한 뭔가가 없었으니까. 지금쯤은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던 L 교수의 존재조차도 잊어버렸을 거야.


R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A로서는 L 교수가 그 이후로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모르는 것만큼이나 무지했다. 


그런데 A는 결국 ‘그곳’을 찾은 걸까? R이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찾았을까?


글쎄, 아직도 답은 없었다. 영원히 비밀은 풀리지 않을 것이고, 모두가 서로 바라보며 손을 잡고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낙원이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은 더 이상 A를 깊게 찌르진 못했다. 한때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질문들. 그것들이 해결되지는 못했지만, 그 질문과 A의 지난 삶 사이에는 이미 너무도 많은 시간이 있어왔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질문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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