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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 Feb 05. 2024

[인터뷰]-아유 리 : 커피로 세상을 바꾸는 청년의 꿈

"커피 한 잔에 담긴 공동체의 힘" 치앙마이 아카아마 커피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여행 중간마다 들러서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카페는 중요한 공간이다. 여행이 목적이 카페인 경우도 있기도 하고, '한달 살기' 명소로 이름이 드높은 태국의 치앙마이도 마찬가지이다. '치앙마이 여행에 꼭 가봐야 할 카페' , '치앙마이 3대 커피'와 같은 제목으로 커피의 맛과 가격 그리고 장소를 소개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내가 이번 치앙마이 여행에서 특별히 '아카아마 커피'를 찾은 이유는 커피의 맛과 향을 넘어 커피에 담긴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서이다. 커피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중간에서 지인의 소개로 치앙마이에서 공정무역 커피 '아카아마 커피'를 운영하는 아유 리(39)를 만나기 위해 지난달 28일 치앙마이 올드타운에 있는 아카아마 커피 프라싱 지점을 찾았다. 


아카아마 커피는 치앙미아에서 지금 뜨고 있는 카페가 아니라 10여년 전에 치앙마이 산티탐 지역의 한적한 골목에 처음 문을 열고 시작했다. 태국 북부 치앙라이주 매잔따이 마을에 사는 아카족이 생산하는 커피콩을 공정한 가격에 구매해서 가공해서 판매하고 있다. 지금은 산티탐과 올드타운 프라싱점 그리고 일본 도쿄에도 지점을 두고 있다. 

▲ 치앙마이에서 공정무역 카페 ‘아카아마 커피’를 운영하는 아유 리 ⓒ 양석원


 '아카아마 커피'를 운영하는 '아유 리'는 친구들이 모두 편하게 '리'라고 부른다며, 편하게 부를 것을 부탁했다. 


리는 태국에서 태어난 1세대 아카족이다. 그의 부모님은 중국에서 태어났다. 마오쩌둥 문화혁명 시절에 미얀마(버마)로 넘어가서 미얀마 내전을 피해 국경지대를 떠돌다가 태국 북부의 깊은 산골 매잔따이 마을에 도착했다. 리의 부모님이 매잔따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아주 적은 수의 아카족이 살고 있었다. 대부분 타이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불법 체류자였고, 리도 15살이 되어서야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리의 부모님은 리의 교육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했다. 리가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걸어다니던 길은  왕복 8km.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태국어를 새롭게 배워야 했다. 아카족의 언어가 있었기 때문이다.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때 까지 사원에 있는 학교에 다녔고, 마을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들어간 청년이었다. 대학 진학을 통해서 조금 더 큰 세상과의 연결을 시도하고 싶고, 영어를 통해서 태국을 넘어서는 도전을 하고 싶었다. 언어 역량을 활용해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해서 태국에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아이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힘들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대학을 찾았지만 또 다른 도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에서는 영어를 못하는 그에게 "1주일 동안 수업을 듣고 교수님들이 평가해서 입학을 최종 결정하겠습니다." 라는 조건으로 그의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교수들은 호주, 영국,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 왔고, 모든 과목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리 처럼 사원 학교 출신인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들이 수군 거리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더 의욕이 생겼다.


일주일 후 교수님이 그를 평가하면서 "계속 공부해도 되지만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이 기회를 주는 이유는 "네가 아직 영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곳에서 열심히 배울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Child's Dream Foundation에서 인턴을 시작으로 3개월 후에 정규직 제안을 받아 재단에서 교육 프로젝트를 돕는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영어는 커녕 태국어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정말 운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교육 프로젝트와 함께 난민 캠프에 갔을 때 자신보다 더 불운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되었다. 지뢰를 밟아 다리가 없는 사람들, 영양실조와 말라리아 그리고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 그는 난민캠프에서 3년 반 동안 머물렀다. 


난민캠프에서 일하면서 그 자신이 이주민이었던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의 가난한 삶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만 이런 특권을 누리고 있는 건가'라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마을로 돌아가서 마을 주민들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간 그가 치앙마이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전기와 인터넷은 물론이고 길마저 제대로 닦여 있지 않던 동네로 들어갔을 때 마을 사람들은 "도시에 수많은 기회가 있는데 왜 마을로 돌아왔냐?"는 말을 들었다.


그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을 했다. 여전히 이 지역 아이들의 50~60% 이상이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주유소나 식당, 건설 현장 등에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려면 기숙사 비용과 교통비 등 일상적인 금액부터가 부담이었다. 


마을에는 살구, 자두, 체리, 복숭아, 감을 비롯해 온갖 채소와 쌀 등 많은 농산물이 자라고 있었지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한 정기적인 수입이 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많은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지만 판로를 개척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태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부족의 언어인 아카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제대로 돈을 받고 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습기가 많고 기온이 비교적 낮은 고산 지역인 매잔따이 마을은 커피가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그렇게 발견한것이 커피였다.


리의 어머니께 처음 커피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왜 커피 프로젝트를 하려고 하느냐? 넌 커피를 마시지 않잖아. 여기 아무도 커피 안 마셔. 너 미쳤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리는 "아니요, 커피를 배우겠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좋은 커피를 만드는 방법을 배워서 마을에 수입을 가져다주자고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2010년 3월에 아카 아마 커피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처음부터 프로젝트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첫해에는 가족으로부터 받은 커피 2톤을 가공하고 로스팅해서 치앙마이의 카페, 레스토랑에 커피 샘플을 나눠줬다.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홍보를 하는데 까지 최소 9개월이 걸렸다. 샘플을 필요로 하는곳에는 오토바이로 배달 했고, 직접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려줬다. 아카커피는 천천히 치앙마이에서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의 반응을 확인한 리는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아카아마 커피가 마을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가격은 시장가격보다 높게 책정했다. 화학비료의 사용을 제한하고 유기농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커피의 품질은 더 좋아졌다. 커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농가도 늘어갔고, 커피의 품질도 여러곳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다른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은 커피나무의 자양분이 되어 품질 좋은 커피를 만드는 것처럼 아카커피는 단순히 마을의 경제적인 도움을 가져다 주는것이 목표가 아니라고 리는 강조한다.


"제가 지금의 일을 하는 가장 큰 동기는 농부들과 그 가족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이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졸업하고 돌아와서 가족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람들이 더 나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어린 아이들이 더 나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커피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도구입니다."       


▲ 아카아마 커피 카페 ⓒ akha ama coffee


지금은 아카아마의 카페에 마을 출신 청년들이 일을 하고 있고, 일본 도쿄에까지 지점이 있지만 사업의 확장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다. 방콕에도 지점이 없고, 정말 좋은 파트너가 있다면 한국에도 생각을 하겠지만 지금 당장에 계획은 없다. 이런 아카아마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정말 사업의 운영이 힘들었다. 사업 초기 부터 수익의 일부를 따로 긴급 자금이라는 이름으로 모아두고 있었는데 10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모으고만 있었는데 코로나 기간 동안 그 자금을 활용할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 그 자금 역시도 3개월 정도의 운영 비용이었다. 3개월 후면 운명을 알 수 없는 시기였다. 구성원들과 상황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들이 캡슐커피나 드립백 같은 상품이었는데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는 피하고 싶은 프로젝트였지만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프로젝트가 성공적이었고 코로나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기점이 되었다고 한다. 


아카아마를 위한 일에도 집중하고 있지만 아카아마의 경험을 원하는 이들에게도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주에 방문했던 마을도 처음에 아카아마의 경험을 전수 받기를 원했다. 그럴 때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10여년전에 그가 그의 마을에서 했던것 처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커피 씨앗을 제공하고,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꿈을 꾸도록 강요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가 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 아카족 언어로 '아마'는 '어머니'라는 뜻. 로고의 이미지도 어머니를 담고 있다. ⓒ akha ama coffee


 아카 아마의 로고를 가리키며 아카 아마의 철학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아카족 언어로 '아마'는 '어머니'라는 뜻이예요. 로고의 이미지도 어머니를 담고 있어요. 제 자신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저를 키워준 사람과 장소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아카 아마의 철학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커뮤니티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글을 읽은 이들 중에 다음에 치앙마이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커피 한 잔과 커피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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