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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 Mar 13. 2024

없는 게 매력, 하지만 스타일이 있는 공동 창조의 마을

없는게 매력인 마을, 히가시카와

경기도 마을 공동체 수요일엔마프에 송고한 글입니다.




<출처 : 히가시카와 Discover Higashikawa>  


없는게 매력인 마을, 히가시카와

일본 북해도 히가시카와에는 3개의 도(道)가 없다. 국도(国道), 철도(鐵道), 상수도(上水道). 척박하게만 느껴지는 생활 환경이지만 히가시카와는 30년간 꾸준히 인구가 늘고 있다.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삶의 질을 말해주는 지표는 아니지만 다른 곳들이 인구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그것도 3도(道)가 없는 공간에 무슨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히가시카와에는 상수도는 없지만, 홋카이도에서 가장 거대한 국립공원 다이세츠산(大雪山)에 쌓인 눈이 녹아서 땅으로 쓰며 들었다가 미네랄을 품은 채로   지하수를 선물해 주는 자연이 있다. 1분간 4,600리터, 하루 6,000톤의 미네랄을 품은 광천수(鑛泉水)가 집마다 배달이 되는 셈이다. 이 물을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히가시카와의 논밭에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집마다 설치된 전기 펌프로 이 광천수를 길어 올려서 사용하기 때문에 수도 요금은 무료이고, 히가시카와에서 생산되는 쌀을 최고의 품질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물이 좋기 때문에 쌀 뿐 아니라 커피, 맥주, 사케도 그 덕을 보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존재했던 자원이었지만 이것을 히가시카와 만의 ‘가치'로 보기 시작했다. 


철도는 아사히카와와 히가시카와를 연결하는 전차가 있었지만, 추운 겨울에는 운행이 어렵기도 하고, 자가용 보급이 늘어나던 시기 경제적인 이유로 1972년에 폐선이 되었다.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주요 장소를 오고가는 커뮤니티 버스가 교통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

국도는 없지만 홋카이도에서 관리하는 홋카이도의 도로가 있어서 아사히카와 공항까지는 18.2km의 직선도로가 나 있고, 마을의 중심지까지는 15분 정도가 걸린다. 바둑판처럼 연결된 도로들은 잘 정리가 되어있다. 

<출처 : 히가시카와 사진고시엔 홈페이지>   


사진의 마을, 히가시카와

없는 게 매력인 히가시카와에는 다른 곳에는 없는 톡특함을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사진'이란 키워드를 이 마을에서 품고 있기 때문이다. 히가시카와는 1985년에 '사진의 마을'을 선언하고 40여 년 동안 ‘사진'이라는 키워드에 걸맞은 ‘문화적인 마을만들기’를 지향했다. 2014년에는 '자연'과 '문화'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사진이 잘 나오는 아름다운 마을 조성'을 진행하기 위한 ‘사진 문화수도 선언’을 하기도 했다.

<사진의 마을 선언>


자연과 사람, 사람과 문화, 사람과 사람 각각의 만남 속에서 감동이 태어납니다. 
그때 각각의 사이에 바람처럼 카메라가 있다면 그 만남을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서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남과 사진이 결실을 맺을 때 인간을 노래하고 자연을 기리는 감동의 이야기가 시작되어 누구나 언어를 초월한 시인과 뛰어난 커뮤니케이터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히가시카와초에 사는 우리는 그 훌륭한 감동을 유형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계절 계절마다 별세계를 창조하여 식물과 동물이 숨 쉬는 웅대한 자연환경과 빼어난 경관을 미래에 유구하게 지키고, 선조에게 물려받고 함께 가꾼 아름다운 땅과 풍요로운 마음을 한층 키워 혜택받은 이 대지에 세계인에게 열린 마을, 마음이 깃든 '사진에 아름답게 비치는' 마을의 창조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세계를 향해 히가시카와초 '사진의 마을' 탄생을 선언합니다. 

선언한다고 하더라도 그 말에 따르는 행동이 없다면 그야말로 말의성찬 뿐인 ‘선언'에 그칠 수 있을 것이다.


왜 하필 ‘사진’인가?

‘사진의 마을'을 선언하던 그 시기에 일본에는 마을마다 한 가지씩 특산품을 개발해 소득증대 사업의 기반으로 삼자는 일촌일품(一村一品) 운동이 있었고, 히가시카와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삿포로의 기획회사로부터 관광객 수를 증가시키고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표로 ‘사진의 마을 구상'을 제안받았다. 때마침 개인들이 디지털카메라를 가지던 시기이기도 했고, 사진 촬영의 배경이 되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 히가시카와였다.

‘우연'으로 시작한 제안을 ‘필연'으로 만드는 일에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마을에는 ‘사진'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도 없고, 국제 사진 페스티벌 이 예산을 허투루 쓴다고 생각하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마을 사람들에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있는 히가시카와 만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가치를 ‘증명'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주민들과의 대화도 더 많아야 했고,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외부 자원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기업가적인 마인드도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히가시카와 주민센터는 개척 정신을 존중하는 조직의 분위기 만들어졌다.

‘히가시카와초 국제 사진 페스티벌에 이어서 시작한 새로운 도전이 마을에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지지'를 얻는 계기를 만들었다. 여름 한 달간 열리는 사진전은 전국적인 행사로 이름을 얻어갔고,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고시엔은 ‘사진의 마을 히가시카와'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행사가 되었다. 사진 고시엔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사진코시엔 0.5초의 여름)까지 만들어졌다. 


1994년에 시작한 사진고시엔은 전국적인 예선을 거친 고등학생들이 본선에 진출해서 히가시카와로 초대를 받아서 마을의 풍경, 생활, 주민을 피사체로 해 마다 다른 주제를 사진에 담는다. 마을과 마을의 주민들이 피사체가 되기 때문에 사진을 찍었을 때 잘 나오는 마을이 되기 위해서 집을 짓는 데에도 히가시카와만의 조례를 조성하고, 주민들은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고등학생들을 자신의 생활 반경으로 초대하는 ‘환대'를 제공한다. 


사진 고시엔이 열리는 때에는 사진의 피사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평소와는 조금 다른 스타일을 갖추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진고시엔의 상 중에는 ‘주민이 선정한 특별한 상'도 있어서 심사위원에 역할도 해야 한다. 


행사를 운영하던 외부의 회사가 폐업을 했을 때는 그 동안의 운영 경험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 일까지도 옮겨와서 행정에서 시작한 ‘사진의 마을' 사업이 사진 고시엔을 통해서 ‘나의 일, 우리의 일'이 되었다. 우연처럼 시작된 ‘사진의 마을'은 마치 그래야만 했던 ‘필연'처럼 마을 전체를 관통해서 흐르는 광천수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다른 곳에는 없는 게 있어서 매력인 마을, 히가시카와 


국도(国道), 철도(鐵道), 상수도(上水道)가 없어도 괜찮고, 사진이 잘 나오는 사진의 마을만이라는 설명만으로는 30년 동안 꾸준히 마을에 인구가 늘어가는 것을 설명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다른 곳에는 없지만 히가시카와에는 있는 ‘매력’을 알아보자.


2006년에 히가시카와에서 시작된 ‘너의 의자’는 히가시카와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어서 와. 네가 있을 곳은 이곳에 있단다’라는 의미를 담아서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기록된 의자를 선물한다. 아이가 태어난 지역의 나무로, 지역의 공방에서, 지역 사람들의 마음 ‘어서 와. 네가 있을 곳은 이곳에 있단다’을 담고 히가시카와의 정장이 직접 배달한다. 디자인은 해마다 바뀌고 ‘너의 의자'만을 모아서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의자에 재료가 되는 나무를 심는 ‘너의 의자 숲' 사업도 함께 하고 있다. 현재 ‘너의 의자’는 히가시카와를 넘어 7개의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고, 개인에게는 판매하지 않는다.

<히가시카와문화예술교류센터 전시되어 있는 ‘너의 의자’>



‘너의 의자'에서 자란 친구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에는 12만㎡ 부지를 자랑하는 히가시카와 초등학교가 아이들을 품는다. 12만㎡ 부지는 서울광장의 10배 크기로 천연잔디 야구장, 축구장, 과수원을 포함하고 있고, 4만㎡ 면적의 학교 건물은 전부 1층으로 학교 끝에서 끝에까지의 길이만 270미터다. 특별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과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 같이 활용할 수 있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교에는 400여 명의 학생들이 함께하고 있다.

‘너의 의자'에서 자라서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중학교를 가면 의자와 책상을 받는데, 졸업할 때는 3년간 사용하여 손때와 추억이 가득 묻은 의자를 졸업 기념 선물로 받는다. 이 의자의 이름은 ‘배움의 의자'이다.

마을의 매력을 갖추기 위해서 다른 노력도 하고 있다. 공립 일본어학교로서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히가시카와 일본어학교‘에는 일본어를 배우기 위한 외국인 학생들이 찾는다. 자연발생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에 숫자를 더할 수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인구의 증가 지표를 기준으로 주는 교부금을 받는데도 유학생들의 숫자가 도움을 준다. 마을에 문화교류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히가시카와 일본어학교‘는 예전 히가시카와 초등학교의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2016년 10월에 문을 열었는데, 2층에는 히가시카와 ‘히가시카와 일본어학교‘가 1층에는 다양한 공간에서 다채로운 문화예술 활동의 발신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로컬 식재료를 활용해 지산지소를 지향하는 커뮤니티 카페, 목공의 마을 히가시카와의 모습을 보여주는 가구 갤러리,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은 책을 읽기 위한 공간만이 아니라 편하게 쉬고, 음식까지 나누면서 그야말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다. 


히가시카와는 인생학교도 품고 있다.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시민학교 혹은 인생학교)를 경험한 도쿄 출신의 두 청년이 '내 작은 질문에서 사회가 바뀐다'를 모토로 School for Life Compath(이하 컴파스)인생학교 프로그램을 시작해서 24년 4월에 정식 개교를 앞두고 있다. 정식 개교란 컴파스만의 인생학교 공간을 조성해서 그곳에서 컴파스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다는 뜻이다. 

두 창업자는 사업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지역부흥협력대 제도의 지원을 받았다. 지역부흥협력대는 도시의 인재를 지방으로 유치하여 그들이 정주·정착할 수 있도록 인건비와 활동비 명목으로 최대 3년까지 1년에 인건비 400만 엔(약 4천만원)과 활동비 200만엔(약 2천만원)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학교 건물은 마을에서 잠자고 있었던 공간을 리노베이션 하는 형태로 리노베이션에 들어가는 비용 중에 일부는 고향납세(한국의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를 통해서 마련했다. 
   

우리만의 ‘다움', 히가시카와 스타일

<히가시카 스타일 책 표지> 


사람으로 넘쳐나는 ‘과밀(過密)’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이 너무 적은 ‘과소(過疎)’도 아닌 ‘적소(適疎)’를 택한 히가시카와는 인구를 늘리는데 목표를 두지 않고 있다. 넘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현재 약 8,500명의 주민들이 사람, 문화, 자연이 넉넉하게 어우러진 ‘적절하게 성근’ 마을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이다.

여러 가지 사업과 정책을 추진하는 데도 히가시카와만의 스타일이 있다.
히가시카와 주민센터에는 “세 가지 ‘없다'가 없다”라는 지침이 있는데, 1. 예산이 없다. 2. 전례가 없다. 3. 다른 데는 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를 이유로 들면서 할 수 없다고 하지 말고, 마을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된다면 그 일을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 가지 ‘없다'가 없다” 대신 체인지(Change), 챌린지(Challenge), 찬스(Chance)의 3C를 강조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일 중에 하나가 ‘히가시카와 주주'제도이다. 우리나라도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서 거주지를 제외한 지역에 기부 하고 세금 혜택과 리워드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지난해 부터 시도 되었지만 그 원조는 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여러 지자체가 다양한 지역의 특산품을 기부자에게 제공하면서 경쟁하고 있지만 히가시카와는 기부자를 넘어서 ‘주주'라는 개념을 활용하고 있다.

히가시카와에 기부하면 주주로 마을만들기에 참여할 수 있고, 특별주민증과 주주증이 주어진다. 이 주주증으로는 마을시설의 우대 이용이 가능하다. 또한, 매년 열리는 주주총회에 참석할 수 있고 마을 내 숙박시설을 연간 2박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주주에게 제공하는 공간과 주주증의 혜택은 이주를 생각하는 주주들이 한 번이라도 직접 살아보고 경험하면서 이주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숨은 역할도 하고 있다.   


글을 맺으며
 

히가시카와를 소개하고 싶은 내용은 더 많지만 독자들의 호기심으로 남겨두고, 히가시와를 소개하는 이유를 뒤늦게 밝히고,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수많은 선례가 사례들이 될 순 있겠지만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곧 ‘정체성'을 잃는 일이다. ‘철학'과 ‘서사’에 대한 이해 없이 ‘현상'을 쫓아가는 일은 피해야 한다. ‘철학'은 제대로 된 이해 없이는 ‘실천'하기 힘들고, ‘서사'는 하루아침에 미사여구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히가시카와는 없는 게 많지만, 그 안에서 히가시카와 만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꾸준하게 밀고 나가면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나가는것에 대한 ‘희망의 증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것은 우리가 스스로 가져야 하는 질문이다.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질문을 남기고 글을 맺음한다.

주어는 편의상 나와 우리로 하였지만 공동체로 바꾸어 생각해 봐도 좋겠다.

1. 나만의/우리만의 ‘다움’은 어떤것인가?
2. 이것이 나만의/우리만의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3. ‘나의 일, 모두의 일, 사회의 일’이라는 선순환을 창출할 수 있는가? 


[참고자료]  

히가시카와 홈페이지 : https://town.higashikawa.hokkaido.jp

히가시카와 스타일 -  다마무라 마사토시, 고지마 도시아키 민성원 옮김  2020년

히가시카와 고향납세(고향사랑기부) 가이드 북

소멸 위기의 지방도시는 어떻게 명품도시가 되었나? - 전영수, 김혜숙, 조인숙, 김미숙, 이은정 2022년

히가시카와 가치 창조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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