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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Oct 04. 2022

30. 나의 영웅들

또 하나의 가족

엄마는 부득불 한국인 홈스테이를 고집했다. 아마 끝까지 아이를 통제 레이더망에 두고 싶었던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끝내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게 겪고도, 그렇게 당하고도 자국민이 호주 사람보다 나을 것이라고 믿었다. 어느 나라 출신인 게 중요한 게 아닌데…


“If Mrs Choi is particularly looking for a Korean home, we certainly have some Korean families that I can match you with. I already have a family awaiting to take your sister right away. Although I had hoped not to call them today…” (만약 엄마가 한국인 가정만 찾고 있으신 거라면 내가 소개해줄 한국인 집들도 있어. 오늘 바로 동생을 받아줄 한국인 가정도 있고. 물론 오늘 그 집에 연락하지 않아도 되길 바랬지만…)


그렇게 마시선생님, 엘렌, 동생과 나를 태운 차는 어떤 으리으리한 저택 앞에 섰다. 족히 3층은 되어 보이고 해외 리조트처럼 로만 스타일의 기둥이 세워져 있는 드라이브웨이가 갖춰진 맨션이었다. 그 집의 아주머니는 우리를 환대해주셨고 각종 티와 간식을 준비해주셨다. 엘렌과 마시선생님 모두 집의 컨디션, 아주머니의 첫인상 등이 마음에 드셨는지 안도하는 듯했고 엄마의 최종 결정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아유 어머님~~!! 멀리서 아이들 뒷바라지하시느라 힘드시죠~~~ 제가 잘 케어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아주머니는 얼굴도 보지 못한 엄마에게 전화기 너머로 세상 살갑게 대했다.


“저기 그런데, 저희는 아이들 모두 한국음식으로만 해먹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식비가 더 많이 나와요. 아시죠 한국 마트가 더 비싼 거~~ 그래서 매주 50달러씩 추가로 송금해주시면 좋겠는데. 네네 월 200달러요. 학교에는 안 알리고 그냥 저희끼리요~~ 아뇨 아뇨 학교에서 수수료를 떼는 건 아닌데 추가로 더 받는 건 규정상 안되는 거라서~~”


통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내 표정이 일그러지자 유심히 관찰하던 엘렌이 호들갑 떨며 물어봤다.


“What, what’s going on? What is she saying??” (뭐야, 무슨 일이야?? 뭐라고 하는 거야??”)


“She wants extra charge for cooking Korean food…” (한국음식을 요리하는 걸로 추가 비용을 원하시네요…)


“Oh for god sake!!!! Marcy!!” (참나 미치겠네!!!!! 마시 선생님!!!!)


마시 선생님과 엘렌이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엘렌은 내게 동생을 데리고 자신의 차로 가있으라고 키를 줬다. 그 후에는 엄마와 통화를 끝낸 아주머니까지 대화에 참여하여 세 어른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르지만, 엘렌은 굳은 표정으로 차에 타더니 침묵 속에 나와 내 동생을 태우고 집으로 갔다. 마시 선생님의 차도 우리를 따라왔다.


집에 도착하자 엘렌은 우리 모두를 이층 거실로 불러 소파에 앉으라고 했다.


“Ashley, as you know, we have no more rooms to take your sister and the school doesn’t allow teenagers to share a room.” (애슐리,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에는 네 동생을 받아 줄 방이 없고 학교에서는 청소년들끼리 방을 같이 쓰는 것은 허락하지 않아.)


“So what would happen?”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나는 걱정스레 물었다.


“Here’s the deal. It would take about three weeks for us to finish the renovation downstairs, which will give us two more rooms. If your sister is OK to stay in the living room for three weeks, she will have her room by then.” (자, 이렇게 하는 거야. 우리가 아래층 공사를 하는데 약 3주 정도 걸릴 것 같고 공사가 끝나면 방 두 개가 더 생길 거야. 만약 동생이 3주 동안 거실에서 생활하는 게 괜찮으면 그때쯤이면 방이 생길 것 같아.)


“But you don’t take younger kids. You told me that I would be the youngest you’d ever take but is it OK for you to take my sister?” (그런데 어린아이들은 안 받으신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어린 학생일 거라고 하셨는데, 제 동생을 받으셔도 괜찮나요?)


“Well, I don’t know. But it seems that this is the most ideal plan. I honestly don’t know if it will work… but what else can we do? We can’t just send your sister away to some crook.” (글쎄,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그게 제일 좋은 계획인 것 같아. 솔직히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뭐 어쩌겠어? 이상한 사기꾼한테 동생을 보낼 수도 없잖아.)


그렇게 우리 둘은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엘렌과 찰리는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은 동생을 기꺼이 받아주었고, 엄마는 울며 겨자 먹기로 동의했다. 물론 그들은 돈을 받고 있었지만, 같은 돈을 내고도 거지처럼 사는 유학생들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것이 동양인, 남의 집 아이라는 차별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돈벌이 수단이어서 그랬는지, 명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한국인, 호주인 홈스테이를 불문하고 많은 유학생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안락함을 누리지 못했다.


매일 청소되는 집과 깨끗하게 세탁된 옷, 매주 교체되는 다림질까지 완벽한 침구, 매 끼니 직접 요리된 음식은 모두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다. 주말이면 드라이브를 나가고, 바다, 숲, 농장으로 체험도 다니는 것은 호사 중에 호사였다. 피도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들을 자기 자식과 다름없이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는 감히 상상해보지도 않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새삼 깨닫는다. 부모 없는 타지에서 누군가로부터 가족으로 품어진 다는 것은 ‘감사함’으로는 충분히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들은 나의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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