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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Sep 30. 2022

29. 한국사람은 믿으면 안 돼 2

평범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내가 내 발로 전도사님 댁을 박차고 나왔을 때, 내 동생은 엄마의 선택으로 그 지옥 같은 곳에 남겨졌었다. 그러다가 피아노 레슨을 받던 한국인 선생님이 상황을 아시고는 자기도 또래 남매를 키우는 중이니 자기가 데려가겠다고 해서 동생은 그곳으로 홈스테이를 옮기게 되었다.


피아노 선생님도 기러기 부부로 남편은 한국에 있고 아이들 둘과 호주에서 생활하는 상황이었기에 금전적으로도 여유롭지 않았던 것 같고 그래서 전공 살려 레슨도 다니셨던 것 같다. 누가 봐도 푸근하고 선한 인상이셨고 무엇보다 집에 또래 아이들이 있으니 동생이 훨씬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와 동생이 따로 살게 된 후로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이 되면 동생을 쇼핑센터나 시티에서 만나 외식도 시켜주고 생필품도 사주곤 했는데, 단 한 번도 그 집에는 방문해본 적은 없다. 호주라는 나라 특성상 운전을 하지 못하면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았고 특히 주말에는 동네에 따라 버스가 거의 없는 경우도 있어서 번화가에서 만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방문을 굉장히 싫어하셨다.


그렇게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던 몇 개월. 외국인 유학생 담당 선생님인 마시 선생님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그녀는 우리가 어떤 경로로 홈스테이를 구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상황을 설명하니 마시선생님이 무거운 입을 어렵게 떼시길…


동생의 담임선생님 말씀이, 동생이 몇 주째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오는 것 같고, 떡진 머리에 물어뜯긴 손톱, 숙제나 보호자 동의서 등이 돌아오지 않는 것 등을 보아 가정방문을 통해 보육환경 점검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마시선생님은 피아노 선생님이 학교에서 연계해준 홈스테이가 아니다 보니 강제로 가정방문을 시행할 수 없는 입장이었고 연락도 잘 받지 않을뿐더러 전화통화가 되더라도 항상 바쁘다는 변명으로 시간 약속을 잡지 않는 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피아노 선생님께 직접 연락드려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연락드려도 방문을 원치 않으셨던 피아노 선생님. 결국 동생을 앞세워 마시선생님과 나, 그리고 우리의 상황을 걱정해마지 않는 엘렌까지 그 집으로 찾아갔다. 아니 예고도 없이 쳐들어간 게 맞는 것 같다.


동생이 가진 열쇠로 문을 열자마자 눈앞이 휘둥그레지는 광경이 펼쳐졌다. 복도에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쏟아질 듯하게 쌓인 쓰레기 더미 그리고 정체를 모를 악취, 회색빛으로 변해버린 한때는 크림색이었던 카펫, 계단 칸칸이 뭉쳐있는 머리카락 덩어리, 뿌옇다 못해 하얗게 변한 샤워부스, 각종 곰팡이가 벽화처럼 그려진 욕실 타일… 그리고 동생의 방 구석구석에서 발견된 곰팡이 덩이가 되어버린 먹다만 음식물과 방바닥에 널브러진 옷걸이가 무색하게 구석에 켜켜이 뒤엉켜있는 옷더미…


정말 말로만 듣던 돼지우리가 따로 없는 곳이었고, 흡사 폐허같이 그 누구의 손길도 닿아있지 않은 듯한 곳에 내 동생이 살고 있었다. 마시 선생님은 바로 동생에게 짐을 싸라고 했고 앞으로는 학교를 통하지 않은 홈스테이는 구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당장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하라고 했다.


엄마에게 통보 아닌 통보를 하고는 동생과 짐을 같이 싸려고 보니, 사실상 다 버려야 할 것들 뿐이었다. 너무 오염되어 구겨진 채로 굳어버린 옷들은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닌 것 같았다. 가방 속에 들어있던 썩은 귤은 얼마나 오래됐는지, 왜 거기에 그토록 방치해놓았는지 알 수도 없었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결국 짐 싸는 것을 포기했다.


한 손에는 동생의 손, 한 손에는 동생의 책가방만을 들고 그 집을 나왔다. 동생도 지옥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지옥을 떠나 쓰레기 더미로 밀어 넣었던 거라니.


끝내 여긴 또 다른 지옥이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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