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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Sep 20. 2022

28.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 것

재채기, 사랑, 그리고…

나는 일 년에 한 번씩 가장 긴 여름방학(12월-2월)에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처음 유학을 떠날 때는 큰 이층 집이었다가 이후에는 같은 동네 투룸 빌라로 옮겨진 적이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방을 각자 쓰고 계셨고 나와 내 동생이 방문할 때면 엄마가 쓰던 안방을 우리가 쓰고 엄마는 거실에서 주무셨다.


그 무렵 아빠가 던진 술병에 문이 쪼개지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두 분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으나 더 깊이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사건 후로도 똑같이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 아빠와 전화 통화를 했고 방학 때 집에 오면 두 분이 한 집에 계셨으니까.


그러다가 호주에서 학생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었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많았는데 그중 한국에서 보내와야 하는 것들도 많아서 우선 팩스로 받아서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팩스기에서 한 장씩 인쇄되어 나오는 종이를 멍하니 보고 있던 찰나, 내 눈에 갑자기 한 단어가 확대되어 보였다. ‘Divorced’ (이혼한 상태)


그랬구나. 이혼했구나. 아빠가 술병을 던져서였을까? 엄마가 진짜 바람이라도 폈나? 아니면 내가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집이 가난해진 탓인가? 수십 장의 서류가 모두 인쇄될 때까지 오만가지 생각이 빠르게 스쳤다.


그 해 여름(한국은 겨울), 한국에 갔을 때도 두 분은 똑같은 투룸 빌라에서 각방을 쓰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니 이혼이란 게 뭔지 아리송하기도 했다. 왠지 이혼이란 게 별게 아닌 것 같았고 나에게는 전혀 영향이 없는 일 같았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애초에 난 그들과 따로 사니까.


그렇게 또 일 년이 지나고 방학을 맞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엄마는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해서 한 아파트로 데려갔다. 진짜 헤어지셨는지, 그 아파트에는 엄마 혼자였다. 나는 이미 15살, 동생은 아직 11살이었다.


“왜 엄마 혼자 사냐고 안 물어봐?” 어느 날 저녁 엄마가 내게 물었다.


“…알고 있었어. 이혼한 거…”


“어떻게? 아빠가 얘기했을 리가 없는데?”


“비자 갱신할 때 서류에 적혀있더라고…”


“…하하… 그것도 모르고 그동안 그렇게 노력을 했네…”


아빠는 엄마가 자신보다 돈을 많이 벌고 능력이 있는 것에 자격지심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회사를 때려치우고 사업을 몇 번 시작했다가 사기당하고, 망하고를 반복하며 자존감은 더 떨어졌고, 이윽고 엄마의 바깥 활동도 제한하고 감시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놀라운 건 이 모든 일이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그러니까 유학을 떠나기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문이 쪼개지던 날 전으로는 단 한 번도 두 분이 다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그토록 유학을 보내달라고 떼쓰던 때, 엄마가 쉽게 허락을 해줬던 이유도 바로 이혼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없는 상황에서 빠르고 깔끔하게 관계 정리를 하고 싶었던 것. 이혼하면 아빠가 학비, 엄마가 생활비를 맡아서 유학 뒷바라지를 하기로 합의했었고 엄마 말에 따르면 아빠는 끝까지 아빠로 남고 싶어 했다고 했다. 그래서 아빠는 친권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했고 엄마는 양육권만 받았다고 했다. 아빠가 내건 조건도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절대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떠나보낸 아이들에게는 이혼 사실을 알릴 수 없었기에 부부 동반으로 뉴질랜드 여행도 왔었고, 쇼윈도 부부처럼 한 집에서 생활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혼자야? 나 아직 스무 살 아닌데.”


“우리는 이혼한 상태였고 이미 서류상 남남이었는데 아빠가 갈 곳이 없기도 했고, 너희들을 위해서 한 집에 있었는데, 그 후에도 엄마가 자신의 여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간섭은 계속됐고 엄마는 아빠를 벗어나고 싶었는데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어. 그래서 따로 사는 게 맞다고 했더니 같이 죽자며 집에 불을 질렀어.”


뉴스에 나올만한 이야기가 우리 집 이야기였다. 뜨거운 열기와 뿌연 연기로 가득한 집에 갇힌 엄마는 같은 동네에 살던 이모에게 다급히 전화했고 119 신고와 동시에 고등학생이었던 사촌오빠가 소방대보다 먼저 뛰어와서 화염 속에 엄마를 구해냈다고 했다. 그 후로는 도망치듯 이 집으로 왔다고.


“아빠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안 좋은 남편이었지만 나쁜 아빠는 아니니까.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모든 게 조심스러워. 그래도 이미 네가 알고 있듯이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니까… 동생은 아직 어려도 너는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성인 때까지 이야기 안 하기로 한 조건은….”


“글쎄, 그게 애초에 가능하기나 했던 걸까? 그리고 아빠도 우리가 합의한 대로 한 번도 학비를 보낸 적이 없어. 엄마 혼자 벌어서 모든 비용을 감당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점점 집도 줄였던 거고… 아빠한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아. 차라리 아무런 지원을 안 받아야 나중에 친권 소송을 할 명분이라도 생긴다더라… 아무튼 그런 상황이니까, 너도 진짜 아껴 써야 돼…”


남들은 청소년기의 부모의 이혼이 가슴 아프고 방황을 낳고 인생에 변곡점이 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했다. 여전히 부모와 따로 살았고, 여전히 토요일마다 통화를 했으며 엄마는 힘들었을지언정 나는 외국에서 잘 먹고 잘 살았기에.


우리 때문에 참느라 고생 많았어, 엄마.
진작 이혼했어도 나는 괜찮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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