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록 Sep 15. 2022

27. 돈 많은 놈팽이

나라고 뭐 달랐을까

“유학하는데 돈 얼마나 들었어?”


유학생이었다고 말하면 나와 친하던 친하지 않던 궁금해했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 실제로 얼마가 드는지. 진짜 돈이 많이 드는지.


유학생활을 할 때 비용은 크게 학비, 홈스테이 비용(하숙), 생활비로 나뉘었다.


약 20년 전의 시세를 기억해보면 아래와 같다. 학비는 공립, 사립이냐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고 사립학교끼리도 학비는 천차만별이었는데 우리 학교는 외국인 학생에게 연간 약 3000만 원의 학비를 청구했다. 호주 홈스테이 시세는 주당 200달러, 한국 홈스테이는 주당 250달러가 들었다. 1년이면 약 1만~1만 3천 달러가 들고 원화로 환산하면 약 700만 원에서 천만 원 정도였을 것이다. 더불어 생활비도 일 년에 천만 원 정도 드는 것을 고려하면 일 년에 약 5000만 원의 비용이 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최저시급이 2000원을 겨우 웃돌던 때의 이야기다.


우리 자매는 두 명이 다 유학 중이었으니 엄마는 일 년에 1억씩 썼던 셈이었다. 물가가 치솟는 요즘 같은 세상에도 일 년에 1억 벌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20년 전에 그 돈을 쓴다는 것은 지금으로 따지면 상상할 수 없이 큰 금액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당시에 엄마가 자주 하던 말 중에 “너희는 일 년에 외제차 한 대씩 씹어먹는 거야”라는 말이 있었는데, 과연 틀린 말이 아니었다.


홈스테이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필요한 생필품까지 챙겨주는데 생활비가 왜 필요할까 싶지만 사회생활을 하려니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다. 고작 열댓 살 된 아이들은 돈의 가치도 알지 못한 채 시간당 몇만 원이 드는 한인 노래방, 당구장, 오락실 등에서 하루 종일을 보냈고 배가 고프면 나와서 70-100달러짜리 초밥을 사 먹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셨다. 시티에 나간 김에 한인마트에 들러 한국 먹거리를 잔뜩 사들고 집으로 가기도 했다. 주말마다 시티에 나가서 쓰는 돈은 꽤 컸고, 그것은 모두 유형의 무언가를 사기보다 향유를 위한 것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전화하면 며칠 만에 통장에 돈이 들어와 있었다.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엄마는 “돈 좀 아껴 써라”라고 말했지만 그건 “공부 열심히 해라”, “일찍 일찍 다녀라” 등과 같은 엄마들이 항상 하는 그런 형식적인 잔소리들 중 하나로 여겨졌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 수록 먹고 즐기는 것 외로 꾸미는 것도 중요해졌다. 현지 아이들과 쇼핑센터에 가서 쇼핑을 하며 500-600달러씩 썼는데 지금은 어이가 없을 정도의 금액이지만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썼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았던 게 아니라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다.


“네가 뭐 재벌집 딸인 줄 알아!!!!”


계속 돈을 부쳐달라는 딸에게 엄마는 전화기 너머로 수차례 소리를 질렀지만 그래도 화풀이 한번 당하고 나면 매번 통장에 꽂히는 돈이 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춘기 아이들이 그렇듯 나도 어디엔가 소속되고 싶었고 그러려면 그들만큼은 써야 했다.


“Who gave it to you this time?” (누가 준거야 이번엔?) 향수의 포장지를 뜯고 있는 나에게 찰리가 물었다.


“Just some guy from school.” (그냥 학교 남자애요.)


“You know that those guys don’t just give out gifts, right?” (그 남자애들이 그냥 주는 선물은 아닌 거 알지?) 찰리는 걱정스레 말했다.


“Nah, they’re just like big brothers.” (아니에요 그냥 오빠들 같은 사람들이에요.)


생각해보면 나는 오히려 덜 쓰는 편이었다. 오빠들은 내가 여자이고 막내랍시고 돌아가면서 밥을 사주고 선물도 사줬다. 당시에 내가 썼던 명품 화장품, 향수 등은 다 선물 받은 것들이었고 뭘 몰랐던 나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썼던 것 같다. 그들도 부모님으로부터 똑같은 잔소리를 듣고 있었을 텐데…


어떤 학생들은 주말에 필드로 골프 라운딩을 다니기도 했고, 어떤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골드코스트, 선샤인 코스트, 바이런베이 등으로 주말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단언컨대 나는 결코 돈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일 년에 드는 돈은 어마어마했다. (그때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돈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알아?!?!?! 내가 너 이거 사주려고 그렇게 뼈 빠지게 돈 벌어서 보내준 줄 아냐고!!!!”


한 번은 엄마가 호주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진짜 세게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그럴 만도 하지. 선글라스 6개를 포함하여 각종 액세서리와 옷, 엄마도 써보지 못한 비싼 화장품 등이 쌓여있는 방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데 그 후로도 내 씀씀이는 줄지 않았다. 엄마 없는 외국 땅에서 혹시라도 자기 자식이 못 먹고 다닐까 봐 걱정하는 엄마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아는 영악한 나이가 되어버려서.


그때는 다들 그렇게 살아서 나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엄마가 대궐만 한 집에서, 빌라로, 원룸으로 옮겨간지도 모르고. 정말 아무나 가는 게 아니었다 유학은. 그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 


엄마, 내가 평생 미안해.
이전 10화 26. 유학생 스캔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