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정말 사다리를 오를 수 있었나
요즘은 해외여행이나 유학이 비교적 흔해졌고 유학생이라고 색안경 끼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내가 유학했을 당시에만 해도 유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특히 IMF 직후라서 외화 반출하는 매국노, 사회&학교 부적응 문제아 등의 이미지가 분명히 존재했고 특히나 초등학생 딸이 유학 중이라고 하면 엄마 주변에서는 미쳤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물론 요즘도 초등학생 혼자 떠나는 조기유학은 드물긴 하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소리로 섣부른 일반화를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한 내가 보는 유학생은 딱 두 부류다.
유학 ‘온’ 자와 유학 ‘보내진’ 자.
가장 첫째로 유학 ‘온’ 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이들의 유학 목적은 기본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더 나은 교육(a.k.a 영어라도 잘하자)이다. 뛰어난 아이들이 바글바글 끓어 넘치는 한국이라는 냄비를 떠나 덜 치열한 우회도로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인터 시절 내 공부를 도와주었던 7형제(?)는 유학생들 중에서는 착실한 편이었고, 나름 부모님의 노고를 감사히 생각하는, 유학 ‘온’ 자들이었다. 각자 유학을 오게 된 계기가 다 다르지만 목표는 모두 같았다. 성공.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더 우위에 있고 싶은 (부모의) 열망.
이들은 인터와 본교를 갈라놓는 넓디넓은 럭비장을 바라보며 대학, 직업, 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마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의 모습이었을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호주에서는 고민이라는 것 자체를 할 여유가 있었다는 것. 물론 그때는 빨리 본교로 진학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목표였다.
본교에 넘어와서는 전교생이 참여하는 조회시간에 무대에 올라 상을 받는 것이 목표였다. 중학교 / 고등학교 별로 열리던 조회뿐만 아니라 1-12학년 전체가 참석하던 Annual Assembly (연례 조회) 때에도 어떤 학생은 수학경시대회, 어떤 학생은 전체 학년 수석, 어떤 학생은 전국 피아노 콩쿠르 대상, 어떤 학생은 퀸즐랜드 축구 챔피언 자격으로 무대에 오르곤 했다. 각자의 노선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도, 부모도 만족하는 결과를 냈다. 외국인으로서 언어라는 핸디캡이 있음에도 고군분투한 결과였다.
그렇게 쌓은 결과물로 호주, 미국, 한국 대학에 진학하고 그 끄트머리에서 누군가는 사업가, 누군가는 국가대표, 누군가는 의사, 누군가는 VC(벤처캐피털리스트), 누군가는 호텔리어, 누군가는 아티스트, 누군가는 셰프가 되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연 유학생활이 정말 우리를 위한 사다리를 높이높이 늘어트려주었던 걸까? 우리 각자의 성공은 유학생활이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일까?
이들은 아마 한국에서 살았다고 해도 성공을 위해 열심히 달렸을 것이라고 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status(신분, 지위) 욕구를 채우기 위해. 부모의 열망이 곧 자신의 열망이 되기도 했으니까.
한 번은 호주에서 서울대 건축학과로 진학 예정이었던 선배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럴 거면 유학은 왜 온 거야? 한국에서도 죽어라 공부해서 서울대 갔을 거면 뭐하러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고생하냐고.”
“적어도 고민해볼 기회가 있잖아.”
“뭘 고민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뭐 해 먹고살지 고민하는 거.”
물론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수많은 기회를 열어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유학생활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을 얻었던 것 같다. 수능에 매달리지 않고, 내신에 매달리지 않고, 스펙을 쌓기 위한 특활이 아닌 진짜 관심 있는 활동을 경험했고 이는 결국 나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게 해 주었다. 대입 준비는 딱 고3(12학년)만 해도 충분했기 때문에. 12년 내내 대입을 위해 공든 탑을 쌓지 않아도 되었다.
한참 후에 그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만약 한국에서 살았다면 재수를 해서라도 건축학과가 아닌 의대를 갔을(보내졌을) 것이라고. 그러고 나서 주 6일 주야 없이 일하며 사명감 하나로 버티는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도 의사 못지않게 벌어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엄마는 항상 유학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맞다. 더 넓은 세상에 던져져 봐야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똑같은 것을 치열하게 공부하고 그렇게 줄 세운 아이들을 학과로, 직업으로 성공의 여부를 평가하는 우물 속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선후배들은 결국엔 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깨달았다. 어쩌면 유학생활은 사다리를 누가누가 높이 오르나 겨루는 게 아니라,
각자 다른 방향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함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