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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Aug 29. 2022

26. 유학생 스캔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다

(유학생 일부의 모습을 서술한 것으로 특정인들을 폄훼하기 위함이 아님을 밝힙니다)


사춘기. 다들 한 번씩은 거쳤을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부모가 부재하고 수중에 현금흐름이 좋은 아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인터 시절, 나와 가장 친하게 지내고 친오빠처럼 의지했던 크리스 오빠가 어느 날 학교를 결석했다. 나중에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나는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한국인 언니 한 명이 우연히 시티에서 만나 술을 마시게 된 25살 남자 워홀러(워킹홀리데이)의 숙소에 감금당해 한 달 동안 성폭행을 당했고 학교도 집에도 돌아가지 못했던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나이 고작 17세.


그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었는데, 이 언니가 그 기간에 임신이 되었고 그 워홀러는 이미 한국으로 돌아가버린 상황이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그의 제대로 된 한국 이름도 모른 채로.


호주에서는 낙태가 합법이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당시의 문제는 보호자(남자 친구, 남편, 부모 등)의 동의가 필요했는데 어디에도 말할 수 없고 도움도 청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언니는 크리스 오빠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크리스 오빠는 그렇게 그 언니와 병원에 동행해서 입원부터 퇴원까지 도와주었다고 했다. 그 후로 그는 내게 자주 상기시켜주었다.


“너 좋다고 한다고 아무나 만나지 마.”


본교 생활을 할 때에는 나도 본격적인 틴에이저가 되어서 그런지 사건사고를 주변에서 많이 접하게 됐다.

어느 날 우리 학교에 굉장히 잘생긴 한국인 만찢남이 전학 온 적이 있었다. 당시 인터넷 소설이 엄청 인기였을 때라서 그가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국인 여학생이라면 다 우러러(?) 보곤 했는데, 그가 학교에서 돌연 사라졌다. 갑작스레 귀국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미성년의 나이에 성인 여자 워홀러들(대학생)과 호텔방에서 술에 만취한 상태로 집단 성관계를 가졌고 다음날 호텔 측과 서비스 이용료 관련하여 분쟁이 일어났는데 미성년자, 음주, 집단 성관계, 약물 복용 등의 사실이 발각되어 이민국(출입국사무소)으로부터 귀국조치 취해진 것.


한 번은 학교에서 자주 마주치고 인사도 나눴던 한국인 오빠가 자취를 감춘 적이 있었다. 홈스테이, 학교에도 알리지 않고 자취를 감춘 그를 학교에서도, 이민국에서도 따로 실종사건으로 다루고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약 한 달 뒤에 그는 브리즈번이 아닌 시드니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는 끝내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않아 그 내막은 아무에게도 전해지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10년쯤 뒤에 그와 SNS를 통해 소통하게 되었는데, 당시에 시드니에서 여자 워홀러를 만나 아이가 생겼고 그 아이를 낳아서 이십 대 후반에 이미 10살인 아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부모님이 큰돈을 주셔서 투자이민으로 자신은 호주 시민권자가 되었고 아내와 함께 초밥집을 차려 잘 살고 있다고.


정말 비극적인 일도 있었다. 한국인은 아니고 우리 학교의 러시아 유학생이었는데, 주말에 러시아인 친구 두 명과 스포츠카를 렌트해서 골드코스트 인근을 폭주하다가 술에 취해 역주행을 했고 덤프트럭과 정면 추돌하여 운전자였던 자신만 즉사하지 않았고 나머지 친구 둘은 즉사했던 사건이 있었다. 운전자 유학생도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부모님이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이내 사망했다. 학교에서 동시에 세 명의 학생을 잃게 되어 전교생이 추모식을 하기도 했다.


부모가 없고 넉넉한 생활비가 주어진 우리는 어떻게 보면 시작부터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놓였던 것 같다. 그러니 평범한 중고등학생들이라면 마주하지 않았을 비상식적인 상황에서 매번 옳은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직 너무나도 미성숙한데 내 삶과 남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건 무시무시한 권리였다.


물론 유학=타락은 절대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성실하게 잘 지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유학 갔다 왔다고 하면 어릴 때부터 할 거 다 하고 발랑 까진 줄 아는 어른들의 시선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극히 일부의 사건이었을 뿐이지만 그 일부가 더 도드라져 보이긴 하니까.


유학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평범하게 살았을까? 남의 인생을 망가트리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죽음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 수 있었으려나. 


지금 그들은 모두 어디에서 뭘 하고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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