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집을 나왔다. 차비가 없어서 걸었다. 방학 때면 엄마가 우리 자매를 데리고 떡볶이도 사주고 옷도 사주던 대학로를 향해 걸었다. 그곳은 내가 알고 있던 가장 번화된 곳이자 가는 길을 알고 있던 유일한 곳이었다. 꼬박 두 시간을 걸어서 도착했다. 대학로에는 한 집 걸러 카페가 있었고 그중 한 군데로 들어갔다. [직원 구함]이라는 A4용지가 붙어있던 카페였다.
“몇 살이야?” 카페 매니저는 팔짱을 끼고 나를 훑어봤다.
“17살이요.”
“학교는?”
“학교는 안 다녀요.”
“뭐야, 날라리야? 재수 없게.” 그는 빨리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다음 행선지도 카페였다. 그다음에는 식당, 그다음에는 옷가게였다. 레퍼토리는 같았다. 나이를 물어보고는 날라리, 문제아 등의 손가락질을 했고 왜 일을 하려는지, 뭘 잘할 수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날라리거나 부모 잘못 만나서 앵벌이나 하는 재수 없는 X이었다.
이미 어둠이 깔린 시각. 다시 집에 가려면 또 두 시간을 걸어야 하기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마지막,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대학로 거리에서 건물을 통째로 쓰던 버거킹에 들어갔다. 이렇게 큰 곳에서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겠지 싶어서 무작정 들어갔다.
“아르바이트 구하러 왔는데요…”
“알바? 몇 살인데?” [매니저]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키 큰 남자가 카운터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17살이요…”
“미성년자는 보호자 동의서가 있어야지 일할 수 있는데, 받아올 수 있어?”
“네…”
“우리는 오픈조만 구하는 중이야. 출근은 오전 6시, 퇴근은 2시. 시급은 3500원에 휴게시간 한 시간. 점심식대로 원하는 햄버거 세트 한 개. 내일까지 사인받아서 가져오면 합격.” 그는 내게 보호자 동의서 양식이 적힌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네…”
“그래 그럼 내일 봐.” 매니저는 카운터에서 뒤를 돌아가다가 나를 불러 세우더니 따뜻한 햄버거 하나를 건넸다.
“이거 먹고 가. 잘못 만든 거라 먹어도 돼.”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주머니 속 뜨겁고 말랑했던 햄버거는 점점 식어갔고 집에 다 와갈 때쯤 되니 차갑게 굳어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동생에게 햄버거를 건넸다. 동생은 얼마만의 햄버거냐며 호들갑을 떨더니 숨도 안 쉬고 먹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에게 동의서를 내밀었다.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사인을 해주며 잘 생각했다고, 너도 이제 한 명 몫은 해야 할 나이라고 했다. 그날 밤 뒤돌아 누운 엄마의 흐느낌을 듣지 못했더라면 그게 엄마의 진심이었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동의서를 들고 다시 두 시간을 걸어 대학로로 갔다.
“오늘 바로 일 배우고 갈래? 시급은 쳐줄게. 오픈 땐 내가 없어서.” 매니저는 동의서를 노란색 파일에 넣으며 말했다. 그렇게 나는 버거킹의 알바생이 됐다.
그 후로 매일 4시 반 기상, 5시 첫차를 탔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면 엄마는 항상 깨어계셨다. 일찍 일어나신 건지 아직 안 주무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내가 먹고 나갈 아침거리를 준비하고서야 몸을 뉘이셨다.
오픈조의 막내로서 가장 주된 업무는 매장관리와 재료 준비였다. 구석구석 떨어진 양상추 조각과 감자튀김 부스러기를 깨끗이 쓸어내고 테이블 위아래에 코딱지처럼 말라비틀어진 소스를 긁어내고 닦는 일. 그리고 냉장고와 냉동고 안에서 바쁜 시간대에 선배들이 필요한 재료를 쉽게 꺼낼 수 있도록 선입선출 순서대로 재료를 정리하는 일. 주방 뒤편에 서서 몇 백개의 동그란 토마토를 하나씩 슬라이서에 넣고 자르는 일 등.
햄버거 가게의 알바는 단 한순간도 앉아있지 못했다. 앉을 곳도 없거니와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나마 직원 휴게실이라고 부르는 계단 밑 창고에 의자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 마저도 오래된 유니폼이 켜켜이 쌓여있어 엉덩이로 옷더미를 밀어내야 겨우 걸터앉을 수 있었다. 쟁반을 놓고 햄버거를 먹을 공간도 없어서 무릎 위에 올리고 먹는 게 제일 나은 선택이었고.
한 달을 만근을 하고 첫 월급을 받던 날에 우리 가족은 동네 치킨집으로 갔다. 내가 번 돈은 고작 몇십만 원뿐이었지만 이제 이 돈으로 무언가 시작할 수 있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