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 전문성 시대, 물경력 직장인의 이직
early stage 스타트업이나 작은 조직에서 일하는 직장인의 가장 흔한 걱정은 '물경력'일 것이다. 나 역시 5인 이하의 스타트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꽤 오랜 시간을 '잡부'로 지냈다. 그 당시의 나, 그리고 같은 회사에서 일한 동료들 모두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약 6년이 지난 지금, 걱정이 실제가 되어 이직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물론 있다.
나는 브랜드 마케터로 커리어 방향성을 정하고 퇴사했는데, 회사의 규모를 떠나 내 전문성과 스페셜리티를 인정해 주는 회사를 여럿 만났다. 이것은 내가 브랜드 마케터로서 커리어를 꽉 채웠기 때문이 아니라, 6~7년 동안 쌓인 나의 히스토리를 적절하게 편집한 결과다.
이직을 준비하며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하나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면
커리어 필름을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
우리에겐 지난 몇 년간 쉬지 않고 촬영한 커리어 필름 원본이 있다. 이직은 이 필름을 적절하게 편집해 타깃에게 상영하는 일이다. 우리는 어떤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가? 그 다큐멘터리를 어떤 사람에게 보여줄 것인가?
물경력 직장인의 이직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같은 직무를 얼마나 오래 했는지를 기준으로 커리어를 잘 쌓았다, 아니다를 평가하곤 한다. 하지만 모든 회사의 마케터가 같은 일을 하는 게 아닌 것처럼, 직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있다.
내 주변에는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마다 불려 다닌 동기가 있다. 지나온 업무만 봐도 CX, 프로젝트 매니저, 프로덕트 매니저, 사업개발, 생산관리까지 다양하다. 직무만 놓고 보면 커리어를 잘 쌓아왔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를 관통하는 한 가지의 키워드가 있다. 바로 0 to 1, 신사업 개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업무를 직간접적으로 수행하고, 프로젝트를 리딩해 왔다는 것이다.
직무가 아니라 업의 본질을 보면 내가 그 일을 통해 무엇을 배웠고,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가닥을 잡을 수 있다.
내 동기와 같은 경우라면 시간 순서대로 해온 일을 (아주 작은 것이라도) 쭉 정리한 다음, 프로젝트 단위로 내가 수행한 일과 직무를 매칭시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원티드, 사람인 같은 채용 플랫폼에서 직무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확인하고 그 기준에 따라 매칭하는 것도 좋다. 특히 사람인은 직무 외에도 '전문 분야' 카테고리가 있어 비교적 MECE하게 구분할 수 있다.
창의성도 패턴이라는 말이 있다. 성과 역시 패턴이다. 내가 성과를 내는 환경과 업무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창의성과 혁신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시대이긴 하지만, 루틴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고도화하는 것이 잘 맞는 사람이 분명 있다. 브랜딩도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잘 맞는 사람이 있고, 다양한 채널과 디자인에 적용하는 것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 패턴을 파악하고 캐릭터와 연결하면 그것이 내 직무 강점이 된다. 지원서를 낼 때 '주요 업무'나 '자격요건', '우대사항'에 적힌 내용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면 서류 합격률을 높일 수 있다.
"제일 매력없는 캐릭터는 스토리 없이 소모되는 캐릭터다."
이 말을 듣고 조금 서글펐다. 커리어 방향성을 정할 주도권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이 나만의 스토리 없이 조직의 필요에 의해 소모되었던 걸까?
어쩌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큐멘터리 제작을 포기할 순 없다. 다큐멘터리 제작 자체를 포기하면 커리어 필름은 이전과 똑같이 편집점 없이 무한히 촬영될 것이다. 1시간 분량이었던 다큐멘터리가 45분 수준으로 줄어들 수도 있지만, 목표 없는 촬영의 굴레를 끊으려면 방향성부터 정해야 한다.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의 캐릭터는 무엇인가? 만약 나의 캐릭터가 명확하지 않다면 어떤 캐릭터로 보이고 싶은가?
일은 회사가 내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결국 회사도 어떤 퍼포먼스를 기대하고, 그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준다. 내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고,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안다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한 시도라도 할 수 있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 물경력이 될까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걸 어떻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편집할지 고민하고 시도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성을 가지고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그 자체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 본 게시물은 가인지캠퍼스의 <커리어 개발이 아니라 '캐릭터 빌드업', 퍼스널 전문성의 시대> 콘텐츠를 보고 작성했습니다. 일부 차용한 표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