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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Jan 02. 2021

'나'일까 '우리'일까

<말코비치 되기>가 던지는 자아에 대한 질문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내 의식이 나를 규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 육신이 나를 규정하는 것일까. 만약 내가 다른 사람의 의식 속에 들어간다면 그럼 난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된 것일까, 혹은 아직 난 나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내 의식 속에 들어온다면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닌 걸까?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이런 쓸데없지만 또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볼 수 있을까? 


크레이그 슈와츠가 존 말코비치 머릿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말코비치가 느끼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고, 심지어 그의 입을 빌려 말을 하기도 했으며 몸을 조종하기도 했다. 겉모습은 존 말코비치이지만 머릿속은 크레이그 슈와츠인 것인데, 이제 여기서 우리의 고민이 시작된다. 존 말코비치가 크레이그 슈와츠가 된 것일까?  아니면 크레이그 슈와츠가 존 말코비치가 된 것인가? <존 말코비치 되기>는 이 답이 없어 보이는 질문에 대해 간접적으로 그 해답을 알려준다. 

이 통로를 지나가면 말코비치 머릿속으로 들어간다

크레이그 슈와츠는 꼭두각시 인형 예술가다. 그는 말한다. 꼭두각시 인형을 통해 나는 나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 즉, 아무런 의미가 없는 꼭두각시에 자신의 자아를 투영한다는 것이다. 슈와츠가 말코비치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행위 역시 말코비치의 육신을 꼭두각시 삼아 새로운 경험을 갈구하는 행위이다. 그럼 여기서 우린 슈와츠가 말코비치의 몸 안에 들어간 순간부터 말코비치는 사라지고 슈와츠만 남았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육신은 그저 의미가 없는 껍데기일 뿐이니까. 

말코비치 머릿속으로 들어가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

결론적으로 말하면 크레이그 슈와츠가 존 말코비치의 머릿속으로 들어갔을 때, 슈와츠가 말코비치가 된 것도 아니고 말코비치가 슈와츠가 된 것도 아니다. 슈와츠가 말코비치 머릿속으로 들어간 순간 '말코비치'라는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슈와츠가 말코비치를 흡수해버린 것이라 보면 되겠다. 


나일까 우리일까

우리의 내면에는 수없이 많은 자아가 존재한다. 말코비치가 자신의 머릿속으로 들어갔을 때 다양한 모습의 말코비치들과 만났듯이 말이다. 남자라고 해도 여성스러운 자아가 존재할 것이며 늙었더라도 어린아이의 자아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자아들은 서로 흡수하기도 하며 모습을 바꿔간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 그렇게 여러개의 자아들이 우리안에 존재하는데 그럼 '나' 일까 '우리'일까.  


우린 말코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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