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를 동경하여 마침내 고요가 되다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한 뒤, 한동안 나는 마당에다 꽃이나 약초나 채소들을 심는 데 열중했다. 꽃도 꽃이지만 우리나라 채소들을 심어서 먹고 싶었다. 교포 아주머니에게서 얻은 미나리와 깻잎, 고추와 갓을 나는 마당 한 귀퉁이에다가 심었다. 기다렸다. 갓에서 싹이 나오고 깻잎이 자라고 고추에 작고 흰 꽃망울들이 달리기 시작할 무렾, 우박이 내렸다. 갓김치에다, 깻잎장아찌에다, 고춧잎무침을 먹어보리라고 기대에 잔뜩 부풀었던 나는 우박이 내리고 난 뒤 마당 귀퉁이에 서서 울었다. 울화가 치밀었다. 약이 올랐다. 모든 게 다 꿈이었다. 그렇게 그런 것들이 먹고 싶으면 그곳으로 가면 되지 않는가. 이곳에서 사는 게 다 꿈이었고, 그곳으로 가는 것도 다 꿈이었다. 붙잡힌 영혼이여, 몸이 무거운가, 왜 이곳에서 그곳으로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가. 1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