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의 윤슬 Feb 29. 2024

파묘

장재현 2024


마이너한 문화를 좋아하는 국내 팬들에겐 애증의 단어가 있습니다. 양해라도 구하듯 콘츠 앞에 붙여두는 말 '한국형'.

장재 감독은 엑소시즘을 다룬 첫 장편연출작 <검은 사제들>을 통해 오컬트 소재 영화가 한국에서도 잘 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두 번째 연출작 <사바하>에선 오컬트 소재로도 깊은 주제의식을 이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흥미로운 은 강동원이나 박소담, 이정재, 박정민처럼 오컬트에 어울리지 않을 듯한 젊고 유명한 배우들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오컬트나 공포영화에 생소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이유는 그런 영화를 만드는 환경이 저예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잘 알려진 배우들로는 기괴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배우들이 전면에 나서기 때문에 저 두 영화는 소재나 화면에 비해 무서운 분위기가 덜합니다. 사실 없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장재 감독이 오컬트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공포가 아닌듯합니다. 


장재감독은 <검은 사제들>로 엑소시즘, <사바하>로 불교와 밀교를 다루는 동안에도 두 영화 곳곳에 한국 토속 신앙과 미신등 비중 있게 다루었었죠. 한국 오컬트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표현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 <파묘>는 풍수와 토속 문화 나아가 역사도 녹여낸, '한국형' 아니라 한국이어야 하는 오컬트 영화로 등장했습니다.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한다.

“전부 잘 알 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되고….

- 포탈에 소개된 파묘 줄거리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왔다

대살굿을 연기하는 김고은 배우는 압도적입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파묘>를 영화관에서 감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유해진 배우는 나무처럼 매끄럽고도 단단한 선을 유지하고 이도현 배우는 작두를 탑니다. 과감한 시도가 이뤄졌던 후반부에선 일관적인 톤을 유지한 최민식 배우의 연기가 묵직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주연배우뿐 아니라 조연과 단역들 하나하나가 모두 매력적이고 낭비되는 배역도 없습니다. 커다란 변곡점이 있는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도 배우와 줄거리는 튀지도 뒤쳐지지도 않는 호흡을 유지합니다. 감독이 가진 역량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르가 바뀌었다고 평가받는 후반부에 대해 저는 별로 불만이 없습니다. 사실 장르가 바뀌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검은 사제들>에 장하는 '소머리를 짊어진 굿판' 장면처럼 장재 감독 영화 안에서 오컬트란 혼령과 귀신, 크리쳐, 미신과 토속문화를 모두 아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 영화에서 두 가지 장르를 다루는 게 아니라 영화 자체가 오컬트 팬을 위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랄까요. 호불호가 갈리는 후반부의 주요 설정도 굉장히 만족했습니다. 드디어 이런 장면을, 이런 때깔로, 이런 배우들이 연기하는 영화에서 보는구나, 하면서 말이죠.  

오컬트 영화에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보는 내내 들뜬 마음으로 신나게 즐긴 영화였습니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파묘>는 마침내 한국에 나타난 '장재' 장르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탑건 : 매버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