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빵 만들며 운동하는 내맘대로 라이프
친구들을 집에 불러 몇년 만에 낮술을 마셨다.
스무살 이후로 가장 긴 시간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고, 여행한 친구들이다.
- 나 말야, 실은 운동하는걸 좋아하는 것 같아.
말하는 나도 쑥쓰러웠지만 듣는 녀석도 만만치 않게 그랬나보다.
- 아니, 무슨, 그런 말이, 다 있어.
라는 듯 어깨로 한 번 웃고 끝.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함께 하던 연극 동아리의 공동노트에 사용하던 내 필명은 필명조차 아닌 가로로 누운 사람의 모습이었다. 글의 내용에 따라 어느 날은 휘어져 누웠고, 어느 날은 젖은 신문지처럼 구겨져 누웠다. 언제나 누워있었다.
학기초, 수강신청 인원이 넘치자 리포트를 이메일에 첨부해서 받겠다는 교수의 계략에 실제로 대규모 수강취소 사태가 일어나던 아날로그 소통의 90년대 말, 그 노트는 그 시절의 SNS였다. 무슨 글을 쓰던, 혹은 안 쓰던, 글로 주사를 부리던, 욕지거리를 하던 자유였다. 나는 종종 글을 썼고 다행히도 무슨 내용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글의 끝에는 늘 누워 있었다.
‘나는 정신이 나른하고, 움직이기 싫고, 대체로 허무주의자야, 나는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줘.’
20대 초의 나는 드러누운 모습으로 외쳐댄 것이다. 사진으로 대외 정체성이 적립되기를 기대하는 지금의 SNS처럼.
하지만 늘 누워 게으름을 피우고, 술 마시고 뒹구르면서 지낸 것만은 아니었다. 되짚어 보면, 나를 포함하여 우리는 오히려 당시의 다른 대학생에 비해 제법 운동을 했다. 봄가을 연극 공연에서 배우를 맡으면 내리 두 달 이상 매일 2시간 이상 고강도 근육 스트레칭과 유산소운동을 했다. 운동장 구보를 했고, 20년이 지나 명칭을 알게 된 버피테스트를 비롯해 신병 훈련소에서나 할 법한 체조를 했다. 한 때 인기였던 군대체험 예능 <진짜 사나이>를 보면서 낯설지 않음에 놀랐던 기억.
어쨌든 우리는 운동을 하면서도 운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연기를 위한 신체훈련이었고, 동아리 용어로는 ‘릴랙스(relax)’라고 불렀다. 자기 몸뚱이를 위해 '운동'을 하고, 심지어 건강같은 단어를 들썩이는 것은 노쇠한 생각이며 보신주의자의 행태였다. 실제로 연극반 선후배 동기로 제한하지 않아도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연극 연습기간이 아닌 평소의 나는 대체로 동아리방의 낡은 소파나 잔디에 누워 책을 읽었고, 의식한듯이 어깨와 목을 어느 방향으로든 비스듬히 한 채 느리게 걸었다. 애써 선별이라도 한듯이 몸에 나쁜 음식을 골라 먹었고 하루의 마지막 끼니의 주연은 누구나 그랬듯이 술이었다.
그런데 마흔 넘어 '난 운동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다니. Political movement도 아니고 허벅지에 힘주고 바들바들 떨며 진땀을 흘리는 그 운동이라니. 심지어 영양 밸런스를 계산해서 먹고 있다니.
- 그리고 제빵은 무슨 소리야. 네가 빵을 좋아했나.
맞다, 운동만큼 빵 역시 내 세계에 없는 단어다. 단언컨대 나는 빵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일생동안 먹은 빵의 총 개수가 얼마 되지도 않을 것이다. 거절하기 어려운 누군가가 건넨 빵이라거나, 햄버거나 샌드위치처럼 다른 재료들과 결합형으로 먹는 경우를 빼면, 굳이 빵이 입에 당겨서 돈을 주고 사들고 맛있게 얌얌 하는 일은 아직 없었던 것 같다. 어물쩍 먹게된 경우에도 단맛이 강하면 입맛이 달아나 끝까지 먹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빵 싫어, 안 먹어!까지는 아니더라도 빵을 안 좋아하는 사람은 맞다.
관심이 없으니 빵 이름도 잘 모른다. 동네맘카페에서 한창 유행중인 ‘잠봉’은 당연히 짬뽕의 된소리를 걷어낸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무슨, 짬뽕에 치즈랑 햄을 넣어서 먹는담.'
하지만 빵만 먹고 살았던 기간도 있다. 홧김에 첫 회사를 그만둔 후, 코스트코에서 베개 길이만큼 포장된 호밀식빵을 얼려놓고 끼니에 한두장씩 먹었는데 가장 싼 값으로 활동 칼로리를 보충하는 목적이었으니 ‘맛있게 얌얌’과는 상극이었다. 식빵과 함께 한 약 40일이 끝난 이후에는 한참동안 식빵은 쳐다보지도 않고 지냈다.
그런 내가 왕복 3시간의 이동이 필요한 제빵학원에 등록하고 지난주에는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왔다. 새하얀 수련생 유니폼도 준비했고, 45회차에 거쳐 배우게 될 빵 리스트에 적힌 뺑드상테, 좁프 같은 낯선 이름의 빵 사진을 찾아보고 있다. 천연발효빵에 관심이 생긴 것이 계기라서 도서관에서 발효빵의 원리에 대한 책도 빌려와 읽고 있다. 관심이 생기니 빵의 역사도 재미있고, 효모의 화학구조를 공부하는 것도 즐겁다. 한동안 당류 섭취량이 높아질테니 기존에 하던 운동량을 어떻게 손 볼 할지, 하루 영양 밸런스는 어떻게 짜야 할지 궁리하는 것도 즐겁다.
마지막 퇴사를 앞두고 한 결심, 회사원은 이제 그만 하겠다는 결심은 다행히 아직 잘 유지되고 있다. 제자리 걸음하는 시지프스같은 월급쟁이로 돌아가지 않겠지만 돈은 다시 벌 생각이다. 잠자고 일어나면 입금되어 있다는 꿈같은 금융소득이 없고, 자기 노동소득을 나에게 떼어줄 경제공동체의 일원이 없으니 스스로 벌지 않고 생존할 도리가 없다. 그리고 돈으로 하고 싶은 것들도 많다.
다행히 이 생각(다시 돈을 벌거라는 생각, 물론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만으로도 바윗돌을 빼앗길 때까지 몇 년 더 밀어볼까 하는 습관화된 미련과 이제 기승전 거지가 되는 것인가! 하는 공포감이 잘 차단되고 있다.
마지막 퇴사 후 4개월차에 접어들었다. 17년간 함께 한 광고, 마케팅 용어들이 나의 유니버스에서 슬금 자리를 빼고, 근육과 빵의 단어들이 쭈뼛쭈뼛 어색한 모양새로 자리를 채우고 있다. 몸은 여전히 물컹하고, 당류 그 자체인 빵까지 합세해서 더 물컹해질 수 있는 하이 리스크 상황이지만 분명한 한 가지가 느껴진다.
마음이 단단해지고 있다.
2021.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