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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Jan 07. 2018

낫투데이 20180107

집에 돌아오다


신년인사 글이 있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2018 숫자를 단 낫투데이는 오늘이 처음이군요. 1월 7일이 되어서야 새해 첫 글을 올리게 되다니..

 
연재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좀 더 노력을 해 봐야겠습니다. 병에 걸렸다고 해서 무조건 천천히, 쉬면서, 여유 있게 이러는 게 좋지만은 않습니다. 일정 부분 책임감을 가지고 뭔가 해 나가는 것, 체력에 무리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 이런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게 오히려 생명력을 더 강화시켜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지금도 "위루", 우리말로 "뱃줄"을 통해 유동식을 공급받으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할만합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세계죠.

 
입을 통하지 않고 식품 영양을 공급받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콧줄과 뱃줄이죠. 모종의 이유로 구강의 기능이 잘못된 환자의 경우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영양을 구강을 통하지 않고, 바이패스 시켜서 공급할 필요가 생깁니다. 그때 제일 간편한 방법은 콧줄입니다. 부드러운 플라스틱 튜브를 코로 넣어서 식도로 바로 내려 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그 튜브에 유동식을 공급하면 바로 위로 들어가겠죠.


문제는 콧줄이 계속 기도를 자극해서 가래가 많이 나오고 환자 입장에서 상당히 불편하다는 점입니다. 오래 사용하기도 힘들죠. 장점은 시술이 간편하고 신체에 손상이 없는 방법이라는 점이죠. 근데 사실 시술이 간편하지는 않아요. 자꾸 넣어서 익숙해지면 몰라도 처음에는 굉장히 자극이 심하고 힘듭니다. 저도 위루 시술 과정에서 콧줄을 넣어 봤는데, 으어~~ 다시 하라면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힘듭니다.


그리고 이번 입원 과정에서 옆 침대에 콧줄을 한 환자분이 두 분이나 계셨는데 시도 때도 없이 간호사들이 와서 가래 제거 작업을 해 주는데, 듣기에도 참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죠. 썩션이라고 다른 튜브에 펌프로 음압을 걸어서 콧줄 주변, 기도 주변에 생긴 가래를 빨아내는 작업입니다. 그 소리도 아주 기분 나쁘고, 환자 본인도 가래를 밀어 내기 위해 그 와중에 의도적으로 기침을 해서 가래를 뱉어 내야 되는 노력이 필요하고 가족들은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요. 그걸 막 새벽에도 합니다. 잠 자기는 다 틀린 거죠. 이래서 수십만 원 내고 1인실을 쓰기도 하나 봅니다.


뱃줄은 제가 선택한 방법인데 콧줄처럼 단기간 사용할 목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입니다. 배꼽 옆으로 위까지 구멍을 뚫어서 튜브를 고정시키는 거죠. 그 튜브로 위에 직접 유동식을 넣게 되는 방식입니다. 튜브는 몸에 고정되고 6개월에 한 번 정도 교체하게 된다고 합니다.


관리하기 편하고 환자 본인도 사실 이 쪽이 훨씬 편합니다. 하지만 위장에 구멍을 뚫고 배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는 점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커서 이상하게 꺼리게 되는 경향이 있죠. 실제로 환자들이 그 문제로 꺼리기 때문에 의사들도 잘 안 권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단기적으로 필요할 때에는 굳이 그렇게까지 시술을 해야 하는가 하는 점도 있는 거고요.


그런데 일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고 퇴원해서도 급식이 가능하며 뜻밖에 감염의 우려도 거의 없어서 괜찮은 방식인 것 같습니다. 특히 저같이 뭐 별다른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구강 기능만 망가져 버린 상황에서는 다른 부작용도 거의 없어서 잘 맞는 것 같더군요.


하여간 그렇게 위루 시술을 받고 또 한 편으로는 시도 때도 없이 치고 올라오는 통증을 관리하기 위해 입원하게 된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두 가지 목적 모두 성공적으로 잘 달성했습니다.


위루도 부작용 없이 잘 시술되었고, 급식도 잘 되고 있으며 그간 못 먹어서 발생한 빈혈도 치료가 되고 (사실은 수혈도 두 팩 정도 받았습니다. 그만큼 빈혈이 심했다는 얘기죠. ) 체력도 회복되고 있는 중입니다. 체중이 47Kg까지 내려갔다가 퇴원 시점에 52Kg을 넘었으니 성공한 셈이죠.


통증도 복잡한 과정을 거쳐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현대 의학이 아직 암을 맘대로 치료하는 수준에 도달하진 못했어도 통증 관리 같은 분야는 비약적으로 발전을 한 것 같습니다. 약도 먹는 약, 혈관 주사, 녹여 먹는 약, 패치 형태로 붙이는 약, 아주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환자의 편의 관점에서는 그것도 매우 중요한 점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어지간히 급한 불을 끄고 귀가를 했습니다. 물론 가장 핵심적인 암, 이 녀석의 문제는 어쩔 수가 없었죠. 지금도 성장 중인 종양을 어떻게 막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이번 입원 중에 찍어본 씨티에 의하면 생각보다는 별로 빠르게 헤집고 다니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결론이 나와서 그나마 안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문제는 그렇게 좀 접어두고 귀가를 했습니다.


귀가를 했더니 정말 좋더군요.


말 그대로 집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종의 이유로 집을 떠났다가 결국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했는지 아무도 모르겠죠. 그리고 그들이 숨을 거두면서 얼마나 집에 가고 싶어 했을지도 아무도 모를 겁니다.


집에 간다는, 집에 돌아온다는 그 느낌, 정말로 좋습니다. 전쟁에 이겼건 졌건 상관도 없어요. 성공했건 실패했건 별로 차이도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에 돌아간다는 것, 그게 어떤 감정인지 조용히 되새겨 보니, 집에 돌아간다는 것, 귀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힐링의 대표적 상징이라는 점이 저절로 느껴지더군요.


그냥 뭐 이것도 잘되고 저것도 잘된다고 얘기하다가 뜬금없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좀 생뚱맞긴 하겠지만, 저는 이번에 입원하면서 진짜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즉, 무사히 집에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겁니다. 뭔가를 먹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심각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힘든 과정을 다 거치고 나서 컨디션도 좋아진 판에 이제 집에 간다는 겁니다. 정말 좋았어요.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안도감, 당분간 더 삶을 영위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 등등이 다 합쳐져서 숨기지 못하고 겉으로 표시가 되었었나 봅니다.


마누라님께서 결국 한말씀 하시더군요.


“당신, 이번에는 퇴원을 유달리 좋아하는 것 같아.”


아, 당연하죠. 정말로 너무 좋았거든요.


덕분에 별 다른 이유도 없이 2018년 한 해가 갑자기 희망찬 한 해가 되어 버린 느낌까지 듭니다. 연말에 입원했다가 연초에 퇴원하는 거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데 그 퇴원과 귀가가 그렇게 희망찬 것이 되어 버렸다면 당연히 새로 시작한 한 해 역시 희망찬 것이 될 수밖에요.


아무 이유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저는 아직도 불치병 환자이고 언제 갑자기 쓰러져도 아무 이상한 점이 없는 그런 중증 암환자입니다. 구강 구조가 많이 변해서 이젠 보철도 안 맞아 잘 못 끼웁니다. 덕분에 말도 거의 못 하고, 가족들과도 텔레그램 메신저로 대화를 합니다. 고형 음식은 전혀 못 먹고, 유동식, 액체 음료나 몇 모금 겨우 입으로 먹을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입 안, 목 쪽으로 퍼진 종양은 안 보이기나 하지, 코 우측에 퍼진 종양은 겉으로 터져 나와 몰골이 아주 흉악해진 상태이기도 합니다. 국가에서도 인정해 주는 산정특례 환자예요. (이번에도 그 혜택을 톡톡히 봤죠. )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는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고 벅찬 심정으로 집에 돌아온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께 그 기분을 좀 더 생생하게 전해드리고 싶었는데..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글 솜씨의 한계일 겁니다.


여러분 모두 희망찬 새해 보내시기 바랍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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