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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Mar 21. 2017

손석희의 저널리즘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사임했다.

그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사람들의 촉각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리는 분위기다. "진짜로 대선에 출마하려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삼성 그룹의 지배권을 둘러싼 내분으로 인해 "이재용에 의해 잘렸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쪽.

어느 쪽인지는 조만간 홍석현 전 회장이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고, 그 문제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신 홍석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지자 갑자기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방향, 바로 JTBC의 보도부문 손석희 사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홍석현 전 회장이 실제로 대권에 도전한다면, 과연 태블릿 PC 건으로 포문을 열어 결국 박근혜 씨를 탄핵에 이르게 한 일등공신 손석희의 행동은 홍석현의 앞길을 열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단 말인가 하는 의혹이 대두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속단할 근거는 전혀 없으며 이런 의혹은 지나치게 앞서가는 의혹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삼성 측에조차 불편한 이야기를 날카롭게 찔러 대는 손석희 사장의 보도를 삼성으로부터 막아주던 홍석현 회장이 사임함으로써 손석희 사장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걱정 정도는 그렇게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어찌 되었거나 그간 종편이라는 편향된 플랫폼 상에서 모두의 걱정을 뒤집어엎으면서 가장 앞서고 가장 정의로운 보도 태도를 보여 수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던 손석희 사장의 저널리즘이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중이다.

손석희 사장 본인도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의식했는지, 뉴스룸 앵커 브리핑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직접 진지하게 풀어놓기도 했다. 사뭇 비장한 어조로 말이다.

문제는 저널리즘이라는 것이다.

저널리즘은 이상적인 이야기다. 언론은 자신의 임무가 있고 역할이 있고, 그걸 사회적으로 보호해 줘야 한다는 이상적인 명제가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명제는 지켜지지 않는다.

저널리즘도 현실세계에 구현되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고 인력이 필요하다. 그 모든 것을 합쳐 취재와 보도가 가능한 플랫폼이 있어야 하는데 그 플랫폼은 언제나 대규모의 자본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 자본의 소유자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된다.

과연 소유주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정의로운 저널리즘"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있는가?

그 문제에 대해 손석희 사장은 직접 뉴스룸 앵커 브리핑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저널리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비장하게 설명을 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저널리즘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존재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문장으로 자신의 각오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 말인즉, 외압으로 인해 본인이 생각하는 저널리즘을 구현하지 못하게 되면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나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우리는, 우리 사회는 손석희라는 걸출한 저널리스트를 잃어버리게 되며 이는 용납하기 힘든 일이다.

저널리스트를 지켜주는 힘, 저널리스트가 제대로 된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힘은 언론 소비자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물론 그의 고용주나 광고주도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언론인도 직장인이고 언제든지 기업의 오너의 파워에 의해 해고당할 수도 있다. 그런 언론인을 누가 지켜주는가? 제대로 된 민주사회의 언론 소비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손석희 사장이 그간 우리 사회에 보여준 고집스러운 저널리즘,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로 박근혜 정권의 치부를 들추어낸 그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마도 추정컨데 세월호 사건 첫날, 울음을 씹어 삼키며 뉴스를 보도하던 손석희의 태도에서 읽히던 바로 그 속 깊은 분노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대중은 더욱더 그의 보도에 공감했고, 박근혜 정권은 결국 임기를 못 채우고 종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런 손석희가 만약 자신의 자리에서 쫓겨난다면 손석희의 저널리즘은 끝이 나야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언론소비자들은 손석희의 저널리즘을 보호할 힘이 있다. 그가 꼭 JTBC라는 플랫폼 위에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어디로 가건 그의 이야기를 대중이 들어준다면 그의 저널리즘은 살아남을 수 있다.

손석희 사장의 저널리즘이 사라지지 않고 이 사회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해 보인다. 그가 어디에 서 있건, 우리들 모두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준다면 그는 우리에게 제대로 된 저널리즘을 선물하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저널리스트를 살리고 제대로 된 저널리즘이 이 사회에 넘쳐나게 만드는 것, 그것은 바로 대중의 관심에서 시작된다.


뱀발 :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이런 잔소리도 가능하다. 저널리즘을 지키고자 한다면, 그 저널리스트가 우리 편에 유리한 얘기를 할 때에만 열광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비록 우리 편에는 불리한 내용이지만 그래도 사실에 입각한 보도를 하고 있다면 진지하게 들어줄 줄 아는 대중이 되어야 한다.


입에 단 소리만 받아들이는 대중이라면 제대로 된 저널리즘, 저널리스트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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