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윤아 Feb 10. 2021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거야

습작 1. 한밤의 부정교합

대화는 또 헛돈다. 눈에는 원망이 일렁인다. 그렇다. 우리는 또 싸우고 있다. 언제나 빠지던 그 구멍에 어김없이 또 빠져버렸다. 자유를 원하는 남자, 안정을 원하는 여자가 매번 빠지는 그 함정의 이름은 ‘귀가 시간’ 이다. 

“나는 네 소유물이 아니야. 그냥 배우자일 뿐이야. 내가 왜 매번 너한테 매번 술자리를 사전 승인 받고,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데?”

“결혼했으면 집에 있는 사람 생각도 해야지. 당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 거였으면 왜 나랑 결혼했어? 집에서 기다리면 얼마나 걱정되는지 알아?”

자유와 안정은 마치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서로를 마모시킨다. 어긋난 톱니바퀴는 한 바퀴 돌아갈 때마다 더 사나운 비명을 질러댄다. 

“내가 나이 마흔에 왜 이렇게 통제 당하고 살아야 하는데? 결혼이 나한테 뭘 해준다고? 진짜 지긋지긋하다.”

“그 말 내일 술 깨도 후회 안 할 자신 있지?”

어둠 속 그림자처럼 늘어진 남자를 노려보던 나는, 랩으로 입구를 막아둔 와인을 한 잔 따라 침실로 들어간다. 비명을 지른 후 목을 축일 때마다 마셨던 붉은 액체. 어느 새 와인 병은 절반이나 비어 있다. 

 서로가 있기에 세상이 움직이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그가 내 쪽에 있었기에 언제나 내 반대쪽으로만 기우는 것만 같던 야속한 세계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시간들이 있었다. 나의 돌출을 그의 파임이 꼭 안아주어 소리 없이 꽉 찼던 순간들.  

 그렇게 정교하게 맞았던 시간이 있었기에 이 부정교합은 더 파괴적이다. 너무 깊게 결합되었던 우리는 이 “맞지 않음”의 상태에서 상처 없이 두 사람을 빼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나를 부수거나, 상대를 부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를 모른다. 이 빈약한 선택지 중에 내가 집어 드는 건 언제나 전자다. 나는 왜 성숙하고 독립적인 인간이질 못해서 상대를 숨 막히게 하는가. 그가 옆에 있지 않은 상태를 잘 견디지 못할 정도로 나는 왜 이리 취약한가. 왜 매번 내 마음 편하자고 그를 매 시간 매 분 쫓기는 마음으로 만드는 걸까. 남자를 향해 쏟아냈던 원망은, 홀로 와인을 삼킬 때면 휙 방향을 돌려 난폭하게 나를 덮친다. 아직은 그를 미워하는 것보다 나를 미워하는 게 더 쉽다.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이 아닐 거야.” 카페를 채우는 백예린의 목소리. 유체이탈 화법의, 무책임한 가사라며 흘려들었던 노래다. 그러나 그와의 부정교합에 야금야금 마음이 갈려버린 지금, 이 연약하고 무책임한 동아줄을 덥석 잡아채고 싶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