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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on Feb 14. 2022

다자연애에 관한 J에 대한 단상.

폴리아모리(Polyamory)- 다양한 관계, 다양한 사랑.




우리는 모든 관계들을 정의 내린다. 친구, 가족, 연인, 직장동료, 아는 사람. 그 외에 또 어떤 관계들이 있을까?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관계들이 존재한다. 일반상식에서 벗어난 관계라고 해서 그것이 타락되어있거나 비이상적인 관계라 말할 수 없다.



나에겐 친구도 연인도 가족도 아니지만 이 세 가지 관계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그의 이름은 J. 제이와 나는 1년의 연애 기간을 끝내고 3년 동안 연인도 친구도 아닌 관계로 한집에 살았다.


한 침대를 쓰며 몸을 섞고 커플 데이트에도 참석하지만 공식적으로 우린 헤어진 커플이었다. 사람들은 물었다. 헤어졌는데 어떻게 한집에 살 수 있었느냐고.


그것은 우리가 연인의 관계를 정리하고 나서도 친구로서 가족 같은 느낌으로서 혹은 여전히 연인의 감정을 조금 가진 상태로 함께 살아가는데 아무런 불편함과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거와 결혼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예쁘게 살아가겠다는 계획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타인과 몸을 부대끼며 산다는 건 평생 몸에 뵌 생활습관 때문에 사사건건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J는 사소한 생활습관의 문제로 싸운 기간이 1년 정도였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 1년은 정말 전쟁이었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에 맞춰 줄 것이라 믿었지만, 그건 내가 가진 오만한 생각이었다. 평생 반복되어온 습관이라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에 굴복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의 특정 습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J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을 싸웠다. 설거지를 왜 바로 하지 않았느냐, 변기 뚜껑은 왜 내리지 않았느냐, 퇴근하고 오면 가방은 도대체 왜 바닥에 내려놓는 것이냐, 제발 집안에서는 신발 신고 돌아다니지 말라는 등 진저리가 나도록 싸웠던 것 같다.



싸움을 해소해 나가는 과정조차 쉽지만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풀어야 하는 내 성격과, 하루 이틀 시간을 가지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가라앉히는 J.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얘기 좀 해!"라고 하면 제이는 딱 잘라 "지금은 대화하기 싫어."라고 말했고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J의 태도에 나는 본래의 논쟁도 잊어버리고 그의 태도를 지적하며 화를 더 키워나갔다.


다툼이 있을 때마다 J는 하루 정도의 유예기간을 가짐으로써 냉정하게 이성을 찾아나갔고, 하루의 시간 동안 내 안의 화는 더 크게 증폭되었다.




우리가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파악하고, 그 점을 보안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J가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하루를 기다렸고, J는 내가 미쳐 돌아버리지 않도록 하루 안에 되도록 빠르게 감정을 추슬렀다.


그렇게 지랄맞도록 다투고 울고 사과하고 화해하고, 우리는 한 집에서 잘 살기 위해 노력했고 고쳐지지 않는 부분은 포기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주변의 지인들은 단언했다.
결국 너네 둘이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우리 헤어짐의 이유가 J의 프러포즈였다는 것을 지인들은 몰랐다. 나는 아직 결혼 생각이 없었고, J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결혼을 거절하자 J는 단호하게 말했다. 결혼 생각이 없다면 더 이상 자신의 시간을 뺏지 말라고. 그렇게 J와 나는 이별했다.



1년의 연애가 끝났다고 해서 바로 짐을 싸 들고 뛰쳐나올 수 없었다. J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별이 평생 다시 안 볼 사람처럼 남남이 된다는 단어가 아니라는 말에 우리는 공감했다.


우리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멀어지기로 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렇게 시간을 갖고 천천히 멀이지 자는 핑계로 우리 두 사람은 3년을 함께 살았던 것 같다. 4년이라는 시간 속에 J와 함께 살며 나는 J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처음 J가 다른 여자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을 알고 나서는 화가 나서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나와 한 침대를 쓰면서 어떻게 내 뒤통수를 이렇게 칠 수 있는지 분에 못 이겨 울고 소리를 질렀다.




"헤어지자고 말한 건 네 쪽이었어."


"그렇다고 이렇게 바람을 피워?"


"우리가 사귀는 사이가 아닌데 어떻게 이게 바람이 돼?"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어느 순간부터 잘못된 것일까를 생각하며 눈물을 쏟았다. 나는 J를 바람피운 못돼 먹은 남자로 정의 내릴 권리가 없었다.


J의 말처럼 우리는 더 이상 연인 사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J가 나를 두고 바람피운 것처럼 참담한 심정이었고, 소박맞은 여인네처럼 처량하게 울어댔다.




"켈리, 너는 곧 이 나라를 떠날 사람이야. 너는 그냥 이곳에서 아름다운 추억 하나 남기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내 인생은 이곳에 있어. 나는 결혼을 하고 내 가정을 갖길 원해. 당연히 너를 아끼고 사랑해. 하지만 난 나와 함께 가정을 꾸릴 여자를 만나고 싶어. 반대로 지금 네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 해도 나는 너를 막을 권리가 없어."







절친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자 언니는 딱 잘라 말했다.

"네가 못된 년이네. 남 주긴 싫고 지 갖긴 싫다 이거잖아?"


정확하게 짚었다. J 만큼 나를 깊게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게다가 결혼에 완벽한 조건을 가진 이 사람. 이런 사람이 평생 나만 보며 살기를 나는 원했던 걸까? 그가 원하는 것을 나는 줄 수 없음에도?


결국 나는 J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J가 불행한 인생을 살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그가 행복했으면 했다. 그가 원하는 행복을 나는 줄 수 없으니 그가 그의 행복을 찾아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을 나는 응원해 줘야 했다. 나는 J가 만나는 여자에 대해 자주 묻곤 했다. J는 지금은 그냥 알아가는 단계라 잘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J가 여자와 데이트를 나가는 날, 그 여자와 단둘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날엔 나 혼자 집에 덩그러니 남겨져 외롭기도 했고 불현 화가 치솟기도 했다.


그것은 J에 대한 배신감보다는 나는 왜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처량하게 집에서 고양이나 끌어안고 티비나 보고 있는 것일까에서 오는 자존감의 문제이기도 했다.





J가 살고 있는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온 지 벌써 2년 반이 되어간다. 우리는 여전히 화상 통화를 즐겨 하고 문자를 자주 하고 내 가족보다 내 친한 친구보다도 더 많은 대화를 하는 존재가 되었다.


J와의 관계에서 가장 좋은 점은 서로가 어떤 모습의 남자 친구이고 여자 친구인지 또는 어떤 섹스를 좋아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깊은 대화가 가능했다.


지금 내게 J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분명 J를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먼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는 J와 섹스를 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은 J에게 파트너가 있고 내게 파트너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서로를 끌어안고 체온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 인사를 묻게 될 것 같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그렇다면 나와 J의 관계는 도대체 무엇인 걸까? 이 정의 내릴 수 없는 관계를 폴리아모리의 일부로 바라봐도 되는 것일까?


J가 다른 여자를 만날 때 내가 받았던 배신감과 질투심. 나는 이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해소시켰는가? 그것은 어쩌면 부정적인 감정들보다 내가 J를 아끼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가능한 건 아니었을까.


나는 J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가 데이트를 나갈 때 구두를 닦아주고, 구깃 해진 옷을 다려주며 어디 하나 모난 곳은 없는지 체크를 해줬고, 데이트 잘 하고 오라며 문 앞까지 마중 나가 키스해줬다.


J가 다른 누군가를 통해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나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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