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lly Yoon Jan 22. 2024

한 가을밤의 만남은 순간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날 밤, 나는 뜻하지 않은 만남이 주는 묘한 긴장감에 취해있었다.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밤은 깊고도 깊었다. 지인의 일행이라는 점에서 그와 나 사이의 경계는 쉽게 허물어졌다. 무리 속에서 우리는 틈틈이 눈이 마주쳤고, 일행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둘만 남았을 때 그가 기습적으로 입을 맞추었다. .


평소 강단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나로서 이런 직구를 날리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장난스러운 키스가 깊어져갈 무렵 자리를 비웠던 일행이 돌아옴과 동시에 우리의 입술은 떨어져 나갔다. 눈치 빠른 일행이 자러 간다며 자리를 비우자 그가 물었다.


"우리 집 여기서 멀지 않아. 갈래?"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늦가을의 날씨는 구름 한 점 없는 까만 하늘이었다. 창문을 내리면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 것 같았는데 내 두 볼은 취기 때문에 뜨거웠다.


그의 집에 도착하자 사랑스러운 고양이 두 마리가 내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따듯한 고양이를 안고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고 있자 그가 다가와 코트를 받아주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대충 바닥에 놓아도 된다고 했는데 그는 신사는 레이디의 옷을 바닥에 놓지 않는다며 농담을 던졌다. 그 말에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고양이는 내 품에서 골골 거리며 차가운 콧등을 손목에 비비적거렸다. 그가 품에서 고양이를 빼앗아가고 내 손을 잡아 방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침대에 앉기도 전에 서로의 옷을 벗기느냐 부산스러웠다. 야생동물처럼 그르릉 거리는 남자의 소리가 귀여우면서도 야해 실없이 웃음이났다.


호흡이 참 잘 맞았다. 어느 부위를 어느 정도의 강도로 애무해야하는지 그는 적확하게 알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제스처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자다가도 서로의 뒤척임에 눈을 떴고, 다시 가시덤불처럼 엉퀴어붙었다. 다음날에도 그는 여전히 내 몸을 탐색하느냐 정신을 못 차렸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나는 미쳤구나를 연발하며 다리사이에 머리를 묻고 있던 그를 불렀다.


"나 일 가야 해. 집에 좀 데려다줘."


차 안에서 그는 여전히 내 손을 꼭 붙잡고 물었다.


"우리 다음번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너랑 맨 정신으로 있고 싶어."


"그래. 그러지 뭐."


원나잇은 원나잇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내 개똥철학을 깬 건, '취하지 않은 모습이 보고 싶어'라는 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와 나는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철저하게 서로의 몸만을 원했다. 차 안에서 굿바이 키스를 하며 통성명을 하고 일주일 정도 문자가 오고 갔다.


그리고 몇 개월 동안 그의 연락에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지인의 일행을 다시 만났을 때였다. 지인은 그가 맘에 들지 않느냐며 왜 연락하지 않냐고 물었고, 나는 멋쩍게 웃어만 보였다.


나는 조만간 그와 다시 만나게 되고, 자겠구나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결국 3개월 만에 그와 나는 다시 재회했다.


술집에 자리를 잡고 서로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테이블 위의 내 손을 잡아 올리더니 손등 위로 가볍게 입을 맞추며 물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아니."


"인사와 존경의 의미."


나는 그래, 하고 웃어 보였다.


손을 빼내려고 하자 그가 조금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뭐야, 하는 눈으로 보았다. 그는 다시 손등에 입을 맞추는가 싶더니 울룩불룩한 손등 뼈 위로 이를 세워 지그시 물었다. 푸른빛과 회색이 절묘하게 섞인 그의 눈이 가늘게 떠지고 손등 위로 그의 혀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무슨 의미인지 알아?"


섹슈얼 어필. 지금 이 행위가 무엇을 연상시키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 부끄러워진 나는 되려 내 마음을 숨기려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웃었다.


"알고 있구나?"


나는 어떤식으로 대답해야 할까? 재치 있는 대답을 해야 할까? 오늘 그럴 일은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해야 할까? 테이블 위의 촛불이 살랑거릴 때마다 그의 얼굴 위로 반사된 빛 또한 일렁였다.


빛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바람처럼 내 마음이 동요하려 할 때 보드게임을 가지러 간 일행이 돌아와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다 클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와 춤을 추면서 나는 다시 한번 그의 매너에 혀를 내둘렀다. 카사노바가 있다면 정말 이런 사람일까? 여자인 나보다 여자를 더 잘 아는 남자도 드물었다.


클럽에서 춤을 출 때 가장 불편한 것이 다름 아닌 손가방이다. 그는 내가 맘껏 음악에 취해 놀 수 있도록 가방을 슬쩍슬쩍 들어주며 나를 리드했다. 그렇게 내 가방을 잡아당기며 자연스럽게 허리에 손을 휘감아 올리고, 진한 딥 키스.


클럽에서 빠져나오며 그는 물었다.


"갈래 말래? 네가 안 간다 해도 나는 괜찮아."


밑 작업 다 해놓고 이렇게 뻔뻔하게 말하는 남자. 선택권을 여자에게 돌리는 남자. 이 남자 위험하다. 머릿속에서는 수없는 경고음이 울렸다. 취기와 이성 그 사이 어디쯤에서 갈등하고 있을 때 눈 앞에는 어느새 택시에 올라탄 그가 있었다.


그의 고양이 두 마리는 여전히 사랑스러웠고, 우리는 첫 날밤 보다 더 황홀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여전히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와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다.


우리의 관계가 유지될수록 결론적으로 이 관계는 좋은 방향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 가을밤, 어쩌면 나는 그 밤을 순간으로 남겨두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웠던 추운 가을밤.


그 와의 짧은 만남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밤의 그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