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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on Mar 01. 2022

가을밤의 그 남자.

나는 불나방처럼 그 남자에게로 날았다.



두 번의 섹스 후 매일 새벽마다 문자를 주고받았다. 야행성인 그와 내가 문자를 보내고 확인하는 시간은 1AM. 오늘 하루 어땠는지가 전부인 의미 없는 텍스트였다.


서로를 섹스파트너 카테고리에 집어넣고 의무적 관례처럼 보내는 문자. 그러나 이 문자라도 하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는 것이 자명했기에 우리는 끊어질 듯 얇은 선을 팽팽하지 않을 정도로 쥔 채 거리를 유지했다.


덥지 않은 선선함, 춥지 않은 포근한 가을밤. 그 사람이 내게 선사한 그 가을밤이 좋았다. 여자를 잘 알고 능수능란하게 다를 줄 아는 남자. 데이트 상대를 침대 위로 불러들이는 게 그에겐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닐 터. 이번 달에 나는 이 남자의 침대에 누운 몇 번째 여자일까.


깊지 않지만 무례하지도 않은 이 관계에서 우리 두 사람의 목적은 같았다. 우리는 정확하게 우리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호기심이 생겨버렸다.


매력적이지만 내게 독이 될 것 같은 이 남자.

다가가면 다칠 것을 알면서도 알고 싶고 들여다보고 싶어 졌다.


그가 제안한 밤을 나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나를 찾아준 그가 좋았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두 번의 섹스 모두 만취상태임을 감안한다면 이번 섹스를 통해서 나는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복합적인 감정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는 전력이 끊겨 다리 위에서 몇 번이고 멈춰 섰다. 버스가 달리고 서기를 반복할 때마다 그에게 가는 내 결정도 번복되었다.


불확실한 이 감정이 그와의 섹스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 나는 이미 내 마음을 알고있었다. 감정을 확인한다는 핑계로 나는 그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바흐의 음악이 듣고 싶어 졌다. 창 문 밖으로 버스기사가 하늘에 거미줄처럼 얽힌 전선을 올려다보며 원인을 찾고 있었다. 바흐의 선율은 언제 들어도 아름답다. 역동적이면서도 서정적이다.


눈을 감고 그와의 섹스를 다시 떠올렸다. 느리고 다급하지 않으면서도 격정적으로 서로를 탐하던 우리를.


그는 정열적으로 타오르는 멋진 장작 가마 같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눈이 아플 정도로 강한 색채를 내뿜지만, 그 속의 따듯한 노란 불씨는 넋을 놓게 만든다.


버스가 움직이는 느낌에 눈을 떴다. 나는 불나방이었구나. 활활 끓어오르는 가마를 보면서도 날아가는.


그의 집 문 앞에 서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 문이 열리면 나는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서로가 암묵적으로 지켜온 규율의 선을 넘게 되는 것이다.


감정이 생겨버린 지금, 그와의 섹스는 단순히 쾌락의 행위로만 끝나지 않을 터였다. 나는 준비가 되어야 했다. 곧이어 몰아닥칠 후회와 공허함으로 가득 찬 내면을 견딜 준비를 해야 했다.


문이 열렸다.


그는 젠틀한 미소를 보이며 나를 맞았다. 안녕, 이라고 말하는 나긋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프렌치키스를 하는 얇은 입술이 가을밤의 찬 기운을 담은 내 입술 위로 떨어졌을 때.


나는 불나방처럼 그 남자에게로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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