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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d Enabler May 23. 2022

아이가 리더가 되기를 바라시나요?(1)

나는 병아리가 되고 싶어요.

숙제를 하던 아이가 검색 중 발견한 글을 읽고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엄마! 에그 프라이와 병아리의 차이를 아세요?" "뭔데?"

"병아리는 스스로 깨고 나온 거고, 에그 프라이는 남이 깨서 나온 거래요."

"너는 그중 무엇이 되고 싶니?"

"저는 병아리가 되고 싶어요, 왜냐면 에그 프라이는 남에 의해 깨어져서 제 속으로 쏠딱! 하지만 병아리는 나 스스로 깨고 나오는 거잖아요."


질문을 받으면, 약속이나 한 듯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이의 물음에 지난주 코칭 리더십을 강의했던 기억이 실 잇듯 떠올랐다.

"리더가 얼마나 바쁜데 코칭까지 해야 하나요?",

"우리는 누가 코칭해주나요?"

나 역시 리더라는 포지션 안에서 맴돌고 있기에, 그 질문에 담긴 의미를, 마음을 영 모르지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코칭의 효과를 매번 체험하는 나였음에도, 아니 코칭을 받아보았기에 더욱더 '리더에게 코칭까지 하라는 것이 말이 되나?' 하며 취지에 대한 의심과 성공률에 대한 불확신을 대놓고 드러냈었다.


시간이 흘러, 그때보다 더 많은 변화의 물결과 함께 코칭 리더십이란 말이 점점 더 많은 회사에서 당연스레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시대의 흐름을 느낀다.

수평적 조직문화가 강조되면서 리더는 그 수평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숙제를 받고, 그것을 좀 더 도와줄 수 있는 소통기법, 관계 기법, 리더십 스킬이 동원되고 있다.


예전에는 회사에서 '올해 경제상황에 의한 긴축 재정으로 예산과 집행을 관리하겠다.'라는 공지를 듣고, '비용 쓰기가 빡빡하네. 올해 해외출장 가기가 너무 어렵겠다.' 라며 분위기 파악을 했다. 그러고 나면 그 해 '아!... 국가의 경제상황이 너무 안 좋았구나'라는 뒷북을 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집단지성, 표현의 자유, 정보의 공유 속에서 특별한 정보를 받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공부하자'라는 말은 비단 학생들만이 외치는 말이 더 이상 아니다.


우리 시대 부모들은 회사 다니는 것을 열심히만 해도 평생 살 수 있는 집 한 채는 마련할 수 있었다. 거기서 작게나마 어학공부라던가 지방에 집 한두채 사놓기라던가 등, 플러스알파의 무엇을 한 사람은 자산을 불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좀 더 전문가로 일할 수 있는 발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또한 지금은 다르다. 어학공부나 부동산 공부는 기본이고, 주식공부를 넘어서 경제공부, 전문성 확보에 오죽하면 N 잡러라는 말이 나왔을까... 지금 우리는 모두가 게을러지기를 거부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궁금한 키워드 하나만 치면, 필요한 정보는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 가만히 있어도 다양한 종류의 구독 서비스로 세상의 상황과 경제 흐름, 사건이 일어난 이유, 앞으로의 방향성까지 한 번에 정리되어 내 메일로 날라든다. 어떤 회사의 경영 철학이 무엇인지, 그 회사 다니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는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굳이 내가 비교하지 않아도 5-6개의 회사의 방향성을 비교한 리포트 역시 손가락을 몇 번 누르면 볼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정보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는다. 모두가 게으름을 거부하기에 너무나 많은 정보를 쉽고 얻을 수 있고, 습득하기에 사고하며, 사고하기에 연결하고, 끊임없이 창조한다. 정보가 무기인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시대가 향하고 있는 게을러지지 않기'의 관점으로 볼 때, 회사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아니 가장 게으를 수밖에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과제관리, 기술관리, 전략 관리, 관계부서 관리, 인력관리에 상사가 부르면 아침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시간에 구애 없이 나의 삶은 내 것이 아닌 듯 그렇게 낀 리더들은 사내 어떤 누구보다 바쁘게 열심히 살아간다.

출근과 동시 나를 불러대는 상사와 이슈를 들고 오는 관계부서와 부서원을 쫓아다니고 나면 하루는 훌쩍 가 있고, 피곤을 느낄 사이도 없이 다른 문제 될 이슈가 없는지, 다음에는 어떤 내용으로 보고를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나 역시 관리자를 하며, '난 관리만 하지 않아'라고 외치지만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서의 '나'이기에는 더 이상 쉽지 않았다. 

내 삶을 내가 관리하는 것인지, 삶이 나를 관리하는 것인지

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몰랐던 시간들이 흘렀고, 난 그 속에 있었다.  안에 나는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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