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입장에 충실하게 판단하고 분노하기
작년 연말에 이 텍스트를 접하고 난 후로 어떤 느낌이 계속해서 머리 속을 배회하고 있었다. 별로 재밌거나 밝거나 하는 느낌이 아니었기 때문에 휘발되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 텍스트는 이렇다.
우남은 열세 살이 되던 1887년 과거시험에 응시한다. 관련 사료에 따르면 당시 응시생은 15만 8,578명이었고 그중 다섯 명이 합격했다.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머리 속에서 배회하던 느낌을 문자로 옮겨보면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지적으로 게으르고 비과학적인 표현이라 좋아하지 않는 표현인데 ‘종특’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현재까지 다양한 형태로 남아있는 이 기괴한 현상을 다른 말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가능성이 없는 것을 스스로 잘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들러리를 서고 병풍 역할을 했을 1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했다. 혹시 현대인이 알지 못하는 어떤 메리트나 속사정이 있었을까?
변변한 벼슬을 한 조상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다. 어른들의 말이 절대적이었던 시절을 갓 벗어났을 때에는 좀 실망스러웠었는데 나중에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고 158,578이란 숫자를 접하고는 너무도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3만대 1 이상의 경쟁률에서 승자가 되는 경우는, 정자와 난자가 만났던 그 결정적 순간을 제외하고는 상상하기 어렵지 아니한가.)
대략 이승만의 첫 과거시험 얘기는 이런 느낌과 궁금증을 남겼다가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이슈 때 다시 소환되었다. 정규직 전환의 공정성에 문제 제기를 한 많은 사람들이 1887년에 들러리를 섰던 15만 명이 넘는 바보들의 후손들로 보였다. 그 안타까운 분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자본을 그렇게 물로 보지 마라; 당신들이 분노했던, 그런 환상적인 정규직 전환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기만적 정규직 전환’이란 검색어를 구글 검색창에 입력해 보라. 또는 톨게이트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관련 투쟁을 다룬 르포 '우리가 옳다'를 읽어보라.)
자기 입장(계급)에 충실하게 흥분하고 비판하라; 흥분하고 분노했던 당신들은 누구에 더 가까울 것 같은가? 인국공 정규직 입사 시험의 승자?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된 비정규직? 절대 다수는 후자에 훨씬 더 가깝다. 당신들은 정규직 전환 소식에 일단 박수를 보내고 (정부/공사를) 감시하고 (비정규직과) 연대해야 했다.
나는 그들이 선동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선동이 잘 먹히는 대상, 소재, 상태가 있는 것 같다. 우효의 '토끼탈'이란 노래의 가사를 인용해 본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소리치며 불러보아도
손에 잡히지 않아요 나는 잡을 수 없어요
기억 속을 다시 걸어도 상상 속을 다시 헤매도
내겐 잡히지 않아요 주어지지 않아
행운 행운이란 없어 내 인생에 행운 같은 건 없어요
너무 큰 기대를 했나요 또다시
내 앞엔 토끼탈이 있어요 나한테 주어진 삶이
오늘도 이 탈을 쓰고 웃어요 (후략)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채용 면접을 연이어 하고 있었다. 딱 한 명만 뽑아야 했기에 계속해서 떨어트릴 수 밖에 없었다. 괜찮은 친구로 보였는데, 기회만 주어지면 잘할 것 같아 보였는데 딱 한 명만 뽑아야 했다. 많은 청년들의 상태가 '입사 지원자'에서 '탈락자'로 변경되었다. 그때 들었던 이 노래가 불합격 통보를 접한 친구들의 절규가 아닐까 싶어서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지고 답답해졌다. 이 간절함, 아픔, 좌절감은 선동이 잘 먹히는 상태, 대상, 소재가 된다. (일단 선동하는 놈들이 나쁜 놈들이긴 한데) 선동을 당해서 엉뚱하게 자기 입지를 좁혀버리는 ‘바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 계급에 충실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