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moMistakes Apr 08. 2022

미음 먹기 좋은 날

대장 내시경 비망록

대장내시경이 포함된 건강검진을 앞두고 있었기에 어제 아침엔 아몬드 브리지를 먹고 회사에 갔다. 이어진 점심 시간에도 아몬드 브리지를 먹고 버텼다. 점심과 저녁 사이에도 아몬드 브리즈를 먹었다. 그렇게 세 개의 아몬드 브리지를 연속해서 먹게되니까 흰 쌀만 넣어서 끓여 만든 미음을 자연스럽게 갈망하게 되었다.

혹시 '아몬드브리즈'를 찍어놓은 사진은 없을까? 내 구글 포토에 들어가 검색창에 아몬드라고 치니까 이 사진이 떴다. (이 사진은 이 글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


마음 속에 오직 미음만 가득했던 업무 시간이 끝났다.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기여할 부분이 있으나 이성적으로(또는 미음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관여할 부분이 거의 없는 회의가 있었는데 눈을 질끈 감고 집으로 향했다. '기름값은 엄청 올랐고 코로나 확진자는 엄청 늘어나서 요즘 길은 뻥뻥 잘 뚫리는구나… 부자들은 기름값이 더 오르는 것을 원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순식간에 집에 도착했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약간의 온기가 남아보이는, 잘 튀겨진, 매우 맛있어 보이는 돈가스가 식탁에 있었다. '음… 난 미음을 먹을 거야.  밥솥에 있는 쌀밥을 덜어서 냄비에 물을 붓고 살살 저으면서 안빈낙도의 미음을 만들어 먹을 거야.'하며 밥솥을 열어봤다. 이런, 오 마이 갓, 잡곡밥이다. 잠시 갈등을 했지만 평소 의사의 말을 잘 듣는 나는 쌀통에서 쌀을 꺼내고 쌀을 씻고 다시 물을 붓고 약 15분간 나무주걱으로 냄비 바닥을 성실하게 쓸고 닦으면서 난생 처음 미음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아무런 반찬도 없이 조금씩 미음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아몬드 브리즈 3개와 12시간 정도만 있으면 -누구라도- 흰 쌀과 물만으로도 엄청나게 훌륭한 식사를 만들 수 있구나. 


그리고 약 한 시간 후 엄청난 양의, 공포의 물약을 들이키기 위해 검진센터의 안내문을 정독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금식 시작 시간대가 한참 경과한 후에 미음을 먹었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결국 나는 건강 검진이 끝났어야 할 시간에 건강 검진을 시작도 못하고 이런 반성문을 적고 있다. 


---

지난달 3월 17일 건강검진 실패 후 적었던 글이다. (3월 17일 검진센터에 예약했던 시간은 오전 8시였다.) 검진 재수를 3월 31일에 했고 그날 떼어낸 4개의 용종이 '과형성 용종'으로 확인되었다는 문자를 어제 받았다. 가족력이 있어서 앞으로도 30번 정도는 더 받아야 할 것 같아 기록에서 그치지 않고 포스팅까지 한다. 30번을 다 채우기 전에 훨씬 더 수검자 친화적인 대장 내시경 사전 준비 방법이 나오길 희망한다. 

작가의 이전글 믿어지지 않는 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