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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략가K Jun 14. 2020

#18. 굿바이 비슈누

비슈누는 멀리 있지 않았다.

  조금 걷기로 했다. 우다이뿌르의  Daiji Bridge 근처에서 시티팰리리 중심으로 하여 키 하벨리까지 오늘의 투어를 마칠 예정이었다. 언제나 여행할 때는 거리르 걷는 것이 예기치 않은 에피소드를 보는 것이 소소한 재미를 주었다. 

첫번째로는 거리에 종종 결혼식을 진행하는 광경도 호기심 있게 볼 수 있었다. 속으로는 매일같이 결혼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면서도 인구가 12억이 넘는 이 나라에 커플은 6억이 있어야 하고, 3억 커플이 결혼을 안했다고 치고, 이중 50분의 1이 내가 여행하는 해의 결혼을 하고 매일 2만 커플정도가 결혼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매일 인도의 커플은 어디선가 2만 커플 정도가 결혼하고 있었고 2만분의 1의 확률로 그 광경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길을 가다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결혼식을 진행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이런 행렬의 특징은 악단이 제일 먼저 큰 소리를 내면서 화차 같은 것에 스피커를 실어 선발대로 나선다. 그 뒤로는 북을 치는 사람들과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하객들이 춤을 추면서 행진한다. 말에서 가장 높게 긴장하는건지 Marrige Blue 를 심각하게 격는 것처럼 보이는 사내가 우아하게 앉아있었다. 인도의 전통적인 왕자처럼 모자도 쓰고 의상도 서구식 정장에 꽂과 전통적 의상으로 치장하였다. 굉장히 큰 소리를 내면서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나는 부럽지 않았다.

  

  또 한켠으로는 재미를 넘어선 황당한 광고판들도 있었다.

  길을 가다가 너무 크게 웃어서 주위 사람들이 모두다 쳐다봤다. 그림만 봐서는 요가를 권장하거나 학원같아 보이는데 이마에서 레이저가 나온다니! 물론 요가를 배우고 나서의 자신의 영혼들의 확장이나 소울들이 이마에서 레이저가 나올 만큼의 효과를 보여주고 싶어서 저런 표현을 섰었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이마에서 레이저가 나올까 두려워 굳이 배우지는 않기로 했다.


29. 비슈누의 빅뱅이론


  비슈누는 사실 유지(보호)의 신으로서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화신으로 재탄생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연달하고 귀감을 전달하고 희망의 힘을 불러일으켰다고 알려진다. 사실 비슈누란 말은 '확장시키면서 모든 곳에 스며들어간다'라는 뜻이다. 어쩌면 이말 뜻이 빅뱅이론의 기본 형태를 표현한 말과 비슷하다. 빅뱅이론에서도 순간의 폭발로 인해 생긴 우주가 서서히 팽창하고 있고, 물을 엎질렀을 때 처럼 서서히 확장해 나가는 모습 처럼 비슈누는 그런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런의미에서 비슈누는 현재를 이야기 하는 듯했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도 같았다.


  작뒤시 만디르에 도착하여 들어설때는 비슈누의 우주에 들어 가듯 발을 내딛었으며, 시내 중심에 위치한 사원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조각상을 바라보면서 비슈누의 우주안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작뒤쉬 만디르에는 자그나트라는 신이 모셔져 있는데, 이 신이야 말로 우주의 창조주로서 비슈누를 의미한다. 비슈누의 이름은 나라야나, "한계 없는 모든 존재의 바다 위에 누워 있다"라는 뜻이다. 불교에서 나라야나는 금강역사가 되어 브라흐마, 인드라 등과 함께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라 알려져 있었고, 같이 가져갔던 책에 의하면 종교학들에 의해 인도 대력의 선주민인 드라비언들의 토착 신이었다고 한다. 아리아인들이 인도로 진출하며 토속 신들의 일부를 흡수, 힌두교의 세게관에 포함시켰다고 하고 한다.  대부분의 흰두 신들의 세계에는 흰 피부는 선, 검은 피두악으로 대표되기 때문에 검은 얼굴의 신이 정통적인 아리아인의 신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힌두 내부의 신이 아닌 외부의 신이라고 묘사 되고 있었다.


 30. 평화의 왕궁 시티팰리스


    비슈누의 우주에서 나와 코너를 돌기만 하면 시티팰리스의 입구가 나온다. 우다이 싱2세라는 분이 처음 지은 뒤 역대 마하자라들에 의해 계속 중건되고 증측되었다고 하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그 외에 내가 못들어가는 지역들은 호텔과 왕실 가족이 거주하는 구역으로 나뉜다.

  물론 박물관 초입에는 강력한 군대를 만들 때 쓰였는지 수많은 무기들의 전시가 통로를 가득 매웠지만 사실 입구는 굉장히 개방적인 형태를 뛸 뿐만 아니라 평지에 지어진 것을 보면, 우다이뿌르는 주위의 침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주위의 강대국이 없다거나 리더의 외교능력에 따른 평화로운 도시와 국가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박물관 중 유일하게 촬영이 금지된 곳이기도 한 크리쉬나 빌라스라는 곳은 조드푸르와 자이푸르의 마하자라 모두에게서 총혼을 받은 크리쉬나 꾸라미 공주가 입장이 난처한 아버지를 위해 음독자살한 애틋한 장소라니, 그 만큼 주위 도시와의 친교를 우선시 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왕국의 리더가 각 도시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는 판단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사상은 자이푸르의 시티팰리스가 평지에 건설이 되어도 왜 평화로운 왕국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됐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시티팰리스의 내부는 내가 다녀갔던, 조드푸르/자이살메리의 어느 성보다도 낮은 곳에 있었으며 화려했다. Mor Chork의 공작 모자이크와 마낙 마할, 모티 마할의 거울 세공은 굉장히 유명하다고 여행가이드 책에는 써있었으나, 눈이 먼저 빼앗겨 여기가 거긴지도 모른체 시티안을 느끼고 있었다. 뒤덜아 보고서 사진으로 또는 뒤늦게 읽은 책의 문구가 내가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뿐이었다.

  평화를 중시한 왕국인 만큼 이성은 다른 지역의 성과는 여유가 넘쳐났다. 성 내부에 심어진 나무는 큰 성을 탐험하는 여행자들에게 오아시스를 제공하였고, 그 당시 왕족이 느꼈던 힐리의 과정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감성의 장치가 되어주었다. 성 내부의 실내 호수는 우다이뿌르 시티팰리스의 청결함과 부구의 허세를 뽐내고 있었다.

  궁정 한켠에 있는 정원에 도착했다. 정원안의 나무들이 바닥 돌 사이로 높이 솟아 오른 나무들이 한 겨울 인도의 따가운 햇볕을 가려주었고 나도 한숨을 깊게 들여 나무들에게서 나온 산소들을 한 모금 마셨다. 아침부터 무섭게 너무 걸어만 왔었떤 것을 위로와 격려를 받듯 나의 여행 에너지 게이지를 채울 수 있었다.


 확실히 태욱이와 같이 다니면서 가장 큰 하나의 장점은 서로의 사진을 찍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나가는 사람한테 얼마든지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여행자 및 인도의 현지인들이 내가 갖고 있는 DSLR의 사용과 기본 초점을 잡는 방법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구도와 위치등에 대한 요청을 하기에 염치가 없었다. 하지만 여행 메이트가 있다면 서로의 요청과 협의를 통해 얼마든지 멋진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해 볼 수가 있었다. 시티팰리스를 거의 마무리할 무렵 시티 팰리스의 앞 마당에서 여러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시도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인도 사람 처럼 여행을 하고 있는 나에게 화려한 옷을 입을 수도 없거니와 새벽 버스로 인한 꽤제제한 모습들을 커버하기 위해 인물을 최대한 멀리서 잡기 위해 구도를 잡았다.

  멋지고 잘나온 사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가 시티팰리스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 거처럼 나온 사진이었다. 인도에 녹아 들고 있는 내가 찍힌것이다. 그 사진을 봤었을 때 인도여행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음을 느꼈다. 


31. 비슈누와 작별 인사

   해가 뉘엿뉘엿 기울여 가고 저녁 전에 바고르 키 하벨리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역시나 도시가 있고 부유한 집은 있었다. 우다이뿌르에서 대표적인 하벨리가 바로 바고르라는 인물의 하벨리였다. 우다이뿌르 호수 근처에 자리잡은 이 하벨리는 호수를 직접 바라보면서 지어졌으며 물가에는 항상 가트가 있었고 가트가 있으면 거기에는 빨래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도시, 부자 그리고 하벨리 또는 물, 가트 그래고 빨래는 당연한 인도의 그림으로 여겨이게 되었다.

  자이살메르에서 봐왔던 다른 하벨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호수 바로 근처에 지어진 하벨리이기 때문에 창문 밖으로 빼꼼히 내밀고 호수를 감상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는 자연 하늘색 창을 쓰고 있었고 밖을 바라보면 물 반, 하늘 반이기 때문에 창문을 온통 하늘 색으로 칠해놓은 거처럼 물과 하늘의 경계는 찾기 어려웠다. 


  앞에 있는 호수는 가까이 가면 더럽게 느껴지고 이물질이 둥둥 떠다녀서 방금전 가트에서 볼때 느꼈던 아름다웠떤 감정은 느끼지 못하였으나, 2층 3층에서 호수를 바라봤을 때는 더럽긴 보다 하늘과 산 그리고 건문들의 운치가 어울려져 아름답게 느껴졌다. 같은 호수를 바라보는데에도 가까이서 보는 것과 보고 싶은 전망만 바라보는 것은 사람이 갖는 프레임에 따라서 크게 달라짐을 또 오늘 봤다. 나는 그럼 어디서 호수를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 위치에서 본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저녁 먹을 때가 되었다. 이제는 여행을 하다보면 이 시간이 제일 기다려진다. 사실 어제와 오늘 낮의 메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인도의 탄두리 치킨이며 가끔 난과 지방의 커리들을 맛보겠지만 그래도 지친 여행의 허기와 잠시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다. 처음에는 Natural View Rooftop Restaurant를 갔지만 호수를 바라보는 경관에 꼭대기 위치에 있는 이점을 이용하여 가격이 조금 비쌌다. 메뉴판을 보고 태욱이는 조금 비쌌는지 다른 레스토랑을 가자며 나를 설득했다. 학생인 그를 배려하여 기꺼이 응하였고 우리가 낮에 보았던 Peach Eye Restaurant에 갔다. 나는 물어볼것도 없이 탄두리를 시키고, 태욱이는 탈리를 시켰다. 탄두리가 나오는 긴 시간 동안 우리가 오늘 찍었던 사진들을 점검하고 갖고 싶었던 사진들을 하나하나 점검했다.

  맛을 판단할 수는 없다 내게 항상 맛있어 보인다. 탈리는 어딜가나 그 지방색과 집안 내력이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맛이 어떻다 저렇다 할 수 없다. 더군다나 탈리의 커리 맛은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먹는 커리로도 설명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맛은 어디에도 없다.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코스요리를 선보여주듯이 짜이가 후식으로 나왔고, 태욱이는 짜이 만드는 방법을 알고 싶었는지 레스토랑 주인에게 하나하나 레시피를 물어보면서 적어 나갔다. 그런 태욱이의 태도의 거리낌 없이 인도의 문화를 탐구해 나가는 모습이 여행자로서 인도에 잘 녹아져 들어가 있는거 처럼 보였다. 인도인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한국에 돌아가 짜이를 마실이링 극히 드문일이 테지만 혹시나 뒤늦게 인도여행을 기억한다하면 짜이 한 모금으로 기억을 회상 시킬 수 있겠지, 그 짜이 한 모금으로 오늘을 다시 회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인도 여행중에 첫 여행 메이트와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 태욱이와 나는 서로를 배려하면서도 여행 중에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을 같이 해내었다. 굉장히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여행중에는 크게 느껴진다. 잠깐 손이 모자랐을 때는 내 물검을 잠시 들어주어 신발끈을 묶는 다던가, 줄을 서는 도중에 화장실 가고 싶을 때는 잠시 줄을 맡아 준다던가, 점심이나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다른 메뉴를 시켜서 서로의 음식을 맛을 본다던가, 각자의 다른 여행 스타일에서 여행에 대한 새로운 과점을 배울 때 등등 많은 점들에 대해서 이점이 있다. 


  태욱이는 내가 가는 인도여행의 비슈누였을지 모른다. 나의 인도여행을 유지해주기 위한 기폭제, 여행 철날의 설레임과는 다르게 아주 조금씩 꺼져가는 여행에 대한 열정의 불씨를 피워두고 지나간거였을지도 모른다. 여행의 큰 변혁을 가져온 것처럼 내 여행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비슈누의 부드러운 넘김과 자연스러운 세상 연출력처럼 태궁이는 나에게 그렇게 왔다가 갔다. 육체적인 쉼표 없이 난 또 1박을 하지 않고 밤 10시에 자이푸르로 가는 기차에 올라야 하지만 오늘 태욱이와 우다이 뿌르에서 보낸 시간은 여행의 쉼표 처럼 나의 여행의 앞과 뒤를 잘 연결해 주었다. 


굿바이 비슈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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