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斷腸)이라는 말이 있다. '끊을 단'에 '창자 장', 풀이하면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지는듯한 아픔'이라는 뜻이다. 이는 단지 그만큼 슬프다는 의미의 비유만은 아니다.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으나 예전에 어떤 나라에서 한 연구가 생각난다. 그 연구에 따르면 서로 심적으로 깊이 연결된 사람들은, 상대가 병이 들거나 어떠한 이유로 아프면 자신도 그와 거의 비슷한 육체적 고통을 실제로 느낀다고 한다. 그저 기분이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고 한다.
'단장'의 유래를 살펴보면 고대인들도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짤막하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자면 다음과 같다.
옛날 중국 동진의 군주 환온이 촉나라를 정벌하기 위해서 군선에 군사를 싣고 강을 건너던 중, 환온의 휘하 병사 하나가 새끼 원숭이를 잡아 배에 태웠다. 그러자 그 광경을 본 어미 원숭이가 슬피 울며 마침내 배에 올라탔지만 그대로 죽고 말았다.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다 끊어져 있었다. 이 사실에 화가 난 환온이 새끼 원숭이를 잡아온 병사에게 매질한 후 쫓아냈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동물도 슬픔을 느끼고 애도할 줄 안다는 것을. (나는 키운 적이 없지만) 또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느껴본 적이 있지 않나. 반려인이 슬픔에 잠겼을 때 인간의 언어를 하지 못하는 반려동물이 전하는 묵묵한 위로를. 하물며 식물들도 감정을 느낀다는데, 동물들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자연과학이 발전하면서 이전에는 몰랐거나 막연히 느낌으로만 짐작하던 많은 것들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자연에 관해 많이 알게 될수록 다른 생명에 관해 존중심이 더해진다.
이와 관련해서 '동물권'이라는 것이 떠오르고 있다. 동물도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반려동물과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함은 기본이고, 고기로 먹는 동물이라도 살아있는 동안은 최대한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하며, 죽을 때에도 최대한 고통받지 않게 하자는 취지로 알고 있다. 마트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동물복지 인증마크'도 이러한 관점의 산물이다.
그러나 녹록지 않다. 사람도 온전히 존중받지 못하는 세상이니 '동물권'은 갈 길이 더욱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동물, 심지어 고기로 먹는 가축도 존중받는다면 사람이 살기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