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바다 Nov 28. 2022

언어는 은유다

오세웅, 『영어는 붕어빵이다』, 넥서스(2005)

어째서인지 최근 들어 언어학(?) 쪽 책을 집중적으로 파고 있다. 한국어 문법과 어원에 관한 관심은 못해도 최소 10년 이상은 된 것 같은데, 요즘엔 그 방향이 영어까지 확장됐다. 학창 시절에, 아니 적어도 대학 시절부터라도 영어에 이 정도로 깊은 관심이 있었더라면 지금쯤 영어를 엄청 잘하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대학을 졸업한 지도 꽤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말이다. 만일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관심의 수준이 지금 정도였다면 언어학과를 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내가 언어 쪽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봐야 어려운 언어학 학술서를 읽는 건 아니라서 너무 나간 것일 수도 있다. (대학 때랑 대학원 때 전공인 역사는 고딩 때 이미 혼자서 학술서를 읽을 정도였거든.) 그렇지만 인생은 모르는 거다. 영어를 다뤘지만 수험서가 아닌 책을 내가 이렇게 많이 읽을 줄이야. 그거와는 상관없이 영어는 여전히 못한다.


(토익 공부를 안 하고 있긴 하지만) 토익 시험을 치면 한 200점대 나오지 않을까. 그래도 지금처럼 관심을 계속 두다 보면 언젠가는 잘하는 날이 오겠지. 아직은 짝사랑 중이다. 점수와 상관없이 사랑은 계속된다. 그 연장선에서 오늘 도서관에서 오세웅 교수의 『영어는 붕어빵이다』를 빌려왔다.


오세웅. 『영어는 붕어빵이다』, 넥서스(2005)


우리는 학창 시절에 직유와 은유를 다음과 같이 배운다. '사과 같은 내 얼굴'하면 얼굴을 사과에 빗댄 '직유'이고, '내 마음은 호수요' 라고 하면 마음을 호수에 비유한 '은유'라고. 처음엔 둘 다 분명 참신한 표현이었겠지만 너무 많이 듣다 보니 식상한 표현이 된 지도 오래됐다. 그걸 문학에서는 '죽은 비유'라고 말하지만, 어쨌든 이 두 표현은 거의 모든 한국 사람이 알고 있는 직유와 은유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비유는 문학에만 존재하는 것 같지만 실은 일상에 아주 흔하다.

  

"언어학자들은 모든 언어가 은유적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 주변의 사물들은 처음부터 부르는 이름이 있었던 게 아니고 인간들이 상황에 맞게 이름을 붙인 것이기 때문에 모든 표현은 빗대어 표현하는, 즉 비유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빅뱅 이후 원시인이 처음으로 주위 사물에 이름 짓는 과정을 상상해 보라. 사물은 인간이 명칭을 붙여주기 전까지 부르는 이름이 없었다. 확실한 것은 인간이 이름을 붙여줘야 그때부터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물의 이름은 인간의 감각에 가장 이해하기 쉽게 표현을 만들게 마련이다. 골치 아픈 언어이론을 굳이 들먹거리지 않아도 생활 속에 들어 있는 비유적인 표현은 너무 많고 대부분 우리의 감각으로 이해하기 쉽다. '내 가슴이 탄다.' '서울은 지금 한증막 더위' '너는 우물 안 개구리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해치우자.' '정국 급랭' 등,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5쪽)



더 나아가 저자는 언어학자들의 권위를 빌려 모든 언어가 은유적이라고 말한다. (『언어는 붕어빵이다』가 일상 언어의 은유를 학술적 관점에서 논하는 책은 아니니까 이에 관해 좀 깊이 있게 알고 싶은 분은 학술저널 《새국어생활》제 29권 4호에 실린 아주대 국문학과 박재연 교수의 글 <일상 언어의 은유와 환유>를 읽어보면 좋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도 실려있어서 쉽게 찾아서 읽을 수 있다. 논문이지만 국어학과 언어학에 손방(문외한)인 나한테도 어렵지 않은 글이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크게 부담 가는 글은 아닐듯하다. 아래에 링크를 첨부한다.)


https://www.korean.go.kr/nkview/nklife/2019_4/29_0404.pdf


언어가 기본적으로 은유라는 점은 외국어 학습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비유는 그 나라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모르고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리뷰하는 책의 제목인 『영어는 붕어빵이다』에 나오는 '붕어빵'도 그렇다. 우린 서로 닮은 사람들을 보고 '붕어빵'이라고 부르는데, 붕어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외국인이 이걸 곧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붕어빵 = 얼굴? 붕어빵과 얼굴이 무슨 상관이야?' 하고 의아해할 거다.


혹시 사전에도 이 뜻이 나오나 궁금해서 '붕어빵'을 방금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두 번째 뜻으로 '서로 얼굴이 닮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있다. 이런 걸 보면 어쩌면 외국 학습자가 쓰는 한국어 사전에도 붕어빵에 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상에서 쓰는 모든 비유가 사전에 나오는 건 아니다. 또 사전에 나온다고 해도 문화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냥 생으로 외우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기계적으로 영단어를 외울 때 하는 것처럼.


"영어사전에 보면 중요한 단어들은 정의가 수십 개가 넘는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일일이 그 정의를 전부 외우려고 하는데, 그보다는 한두 가지 정의만 외우고 나머지는 대개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현명한 경우가 많다. 영어공부도 이제는 유동성을 갖고 탄력 있게 해야할 것이다. 예를 들어 embrace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정의가 나온다. '포옹하다, 기꺼이 받아들이다, (직업)을 잡다, 포함하다, (산들이) 둘러싸다, 깨닫다.' 이 중에 첫번째 의미만 직설적이고 나머지는 모두 비유적인 표현에 쓰인 것을 정의 속에 포함시킨 것이다. 즉 첫번째 의미만 안다면, 나머지는 비유적인 뜻으로 이해하면 굳이 외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 red라는 단어를 보면 '빨간, 피에 물든, 불타는 듯한, 과격한, (손해) 적자의'등의 뜻이 있다. 여기에서도 첫번째 '빨간'이라는 뜻만 알면 나머지는 모두 비유적인 표현을 정의 속에 포함시켰음을 알 수 있다."(6쪽)



그래서 저자 오세웅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사전을 찾아가며 단어를 외울 때는 사전에 나오는 정의를 모두 외우려고 하지 말고 직설적인 뜻 하나만 외우고, 나머진 그 단어가 어떻게 비유적으로 쓰이는지 파악하라고.


영어권 국가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전을 찾을 때마다 예문을 잘 살피는 거다. 그리고 시간이 충분하다면 영어로 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거다. 물론 그 나라에서 직접 살아보는 게 가장 좋겠지만 아무래도 쉬운 방법은 아니니까.


이제야 왜 영어를 공부할 때 예문을 암기하는 게 좋다고 하는지, 미드로 하는 공부가 왜 좋은지 진정으로 이해된다. 이 방법은 단지 영어만이 아니라 당연히 다른 모든 외국어에도 적용이 될 테다. 아직은 제1 외국어인 영어 하나만으로도 빌빌대지만, 바이링구얼(다국어 능력자)을 꿈꾸는 나는, 언젠가 다른 외국어들을 공부할 때도 이 방법을 채택해봐야겠다. 이런 종류의 책을 내가 학생 때 봤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참 아쉽다. 하지만 아직 살 날은 많다. 내 인생 끝난 거 아니니까 외국어 능력자라는 꿈을 향해, 더디지만 조금씩 가보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슬아 작가가 돌아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