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스터디 OT
이제 차 안에 초콜릿이나 젤리를 놓아두면 안 되는 날씨가 되었다. 가방에 초콜릿을 넣어둔 채로 차에 놓고 내렸는데 몇 시간 뒤에 오니 초콜릿이 흐물흐물 녹아있었다. 벌써 여름이 다가왔고 24년의 반이 지나갔다. 매번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한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교회 동생들과 어쩌다 보니 디자인 스터디를 하게 되었다. 어제는 첫날, 나름 OT로 파스타집을 운영하는 동생의 가게에서 세 명의 디자이너가 모였다. 스터디의 시작을 끊은 책은 ‘시각디자인’이라는 책으로 ‘리카르도 팔치넬리’라는 이탈리아의 디자이너가 쓴 책이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 난 디자인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 그것은 바로 시각디자인이다!!‘라고 외치고 있는 표지가 큰 몫을 하였고 디자이너로 일하며 가장 숙제로 느끼고 있는 ‘디자인은 무엇인가?’, ‘시각 디자이너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물음에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판화가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드! 감옥에 투옥돼, 죄명은 ‘디자인’
책의 첫 부분인 프롤로그 부분은 ‘1524년의 어느 날’이라는 흥미를 끄는 글귀로 시작된다.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드라는 판화가가 바티칸 감옥에 투옥이 된 스토리인데 작가는 그의 죄목을 ‘디자인’이라고 명명했다. 당시에 그런 죄목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 일화를 보고 리카르도 팔치넬리가 죄목을 디자인으로 정한 것이다. 작가는 왜 죄명을 디자인이라고 했을까?
판화가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드가 감옥에 투옥된 이유와 책에서 디자인에 대한 작가의 정의들을 알아가면서 왜 이 사건의 죄목을 디자인이라고 명명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미술, 수공업과 전적으로 구별되는 디자인의 가장 독특한 특성 중에 하나는, 디자인의 예술적인 측면이 하나의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라 그것의 복사본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p.11
책의 목차들마다 디자인이 순수 미술과 구별되는 부분들이 드러나는데 작가가 가장 큰 차이점을 두는 것은 대량생산을 위한 공정의 과정이 고안되었는가?라는 것이었다. 디자인은 미술작품과 달리 원본이라는 개념이 뚜렷하지 않다. 위에 언급한 내용과 같이 디자인의 예술성은 복사본들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해진다. 예시로 포스터 디자인을 했을 때 ‘원본파일’이라는 개념은 있지만 처음으로 프린팅 된 포스터를 원본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포스터를 소장하는 대중이 ‘가장 처음에 인쇄된 프린트를 소장하고 싶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포스터를 디자인할 때 디자이너는 결과물이 나오기 전에 이런 과정을 거친다. 포스터 제작 단가를 얼마로 측정할 것인지? 포스터의 레이아웃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인쇄를 고려하여 블랙은 K100으로 사용할 것인지, 인쇄가 될 때 잘릴 부분을 고려하여 사방 여백을 조정한다던지 종이는 몇 g 할 것인지. 작가가 말하는 디자인이란 이런 모든 공정의 과정을 포함한 것이다.
산업디자인 파트에서 ‘시리즈’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스터디를 하면서 이 시리즈라는 부분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우리가 이해하는 ’ 시리즈‘는 연속극이나 영화의 개념이 더 친근했다. 예를 들어 ‘해리포터 시리즈’, ‘마블 시리즈’, ‘지붕 뚫고 하이킥 시리즈’처럼 연속 기획물의 개념이 시리즈라고 생각했는데 책에서 정의하는 시리즈는 산업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작업물이었다. 그래서 시리즈 파트를 읽고 설명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나마 54p의 고대 로마인의 의자 예시와 교회 동생의 가게에 비치되어 있는 의자를 비교하며 시리즈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책과 우리의 토론을 통해 이해한 시리즈라는 개념은 이렇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의자는 대대로 물려받거나 앉을 수 있는 기능을 하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똑같은 의자를 많은 대중들이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그때에는 공장에서 의자를 제작하는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똑같은 퀄리티의 의자를 다수의 대중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대중들이 어떤 브랜드에서 의자를 사고 만족했다면 그 브랜드의 의자가 다음 시리즈를 출시했을 때 또 구매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욕구를 느끼는 대중이 많다면 브랜드는 다른 시리즈들을 출시하여 대중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고 이를 통해 자본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산업디자인에서 시리즈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다뤄졌다고 생각했다.
죄목이 디자인이었던 이유
처음 프롤로그에서 언급했던 판화가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드는 줄리오 로마노라는 화가가 그린 포르노 그림을 판화로 제작해 복사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복사본을 다수의 사람들에게 보급했다. 그는 포르노 그림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급하려는 목적을 가지고서 화가의 그림을 판화로 다량으로 찍을 수 있도록 재가공하였다. 리카르도 팔치넬리가 그의 죄명이 디자인이라고 한 이유가 이해가 된다. 작가는 디자인의 윤곽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추적한다는 것은 힘들다고 했지만 책을 통해 어느 정도 또렷하게 그가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이제 앞으로 책을 더 읽어나가야겠지만 디자인을 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개념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새로운 자극을 얻을 수 있었음에 즐거웠던 스터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