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회기역에서의 첫 헌혈,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기간의 헌혈
작지만 늘 친절했던 '고려대 앞 헌혈의 집'(안암)이 문을 닫았다. 학교 바로 앞도 아니고 접근성이 좀 떨어지기는 했어도 서울 신설동에 근무할 때는 종종 갔던 곳이다. 그리고 '성신여대 입구역 돈암 헌혈의 집'이 생겼다. 새로 생긴 이곳을 가려다가 회기역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오후에 시간을 내서 다녀왔다. 처음 가보는 헌혈의 집은 늘 나도 약간의 긴장을 한다. 물론 호기심도 있다. 회기는 근처의 경희대와 외대 학생들이 자주 오는 곳일 터다.
회기역에서 내렸는데 너무 가까운 곳이었다. 왜 이런 가까운 곳을 한 번도 여태 안 와봤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역시나 학생들이 헌혈을 하고 있었는데 여분의 자리가 있어서 바로 혈장 헌혈을 할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선입견을 가지면 많은 정보의 외곡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역에서도 가까운 이런 곳을 아직까지 모르고 이었다니....
지하철 역에서 또 대학교에서 가까워서 정말 접근성이 좋았다. 나중에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다. 특히 헌혈을 무사히 마치고 기분 좋게 나오는데 4개 천원 붕어빵 집이 있어서 놀랐다. 당연히 붕어빵을 사서 맛있게 먹었다. 내가 장사했던 26년 전에도 5개 천 원에 팔았는데 아직도 이런 착한 가격이 있어서 놀랐다. 감사하고 고마웠다.
회기역은 또 어떤 곳인가. 예전 걷기 모임 때 갔던 파전 거리도 생각나고 <종로에서>라는 노래에서 '회기로행 향하던 쓸쓸한 플랫폼에서...'란 노래 가사도 생각나는 곳이 아니던가.
회기역에서의 첫 헌혈은 붕어빵의 추억과 파전의 추억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여건이 돼서 서울에서 헌혈을 한다면 이곳을 자주 찾고 싶다. 근처의 시장이나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싶다.
피곤한 오전시간...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간밤에 일본이 덴마크를 3 :1로 완파하고
2승 1패로 16강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원한 라이벌 일본이.. 그것도 축구가 우리보다
좋은 성적으로 16강에 진출했다고 하니
기분이 뭐 별로 좋지 않았다.
져서 떨어졌어야 샘통인데... 흠. 흠.
주유를 마치고 바로 평택역 헌혈의 집에 갔다.
근처 주공아파트 주차장을 공영 주차장으로 이용해 차를 거기에 대고 바삐 걸어갔다.
한 시간 안에 모든 걸 마치고 학교에 늦어도 12시 전에는 들어가야 한다.
교수 면접이 있어서 이동을 안 하니 그나마 마음의 여유를 좀 가졌다.
3분이 근무하는 평택역 헌혈의 집, 새로 지은 백화점 건물과 같이
이용하는 평택역의 웅장함 달리
평택역 헌혈의 집은 작은 상가 1층의 좀 초라한 행색이다.
언젠가 저기 평택역 안에 좋은 시설로 확장 이전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주삿바늘을 오른 팔뚝에 꽂는데 무지하게 아팠다.
하도 습관이 돼서 이런 일이 없는데 왜 그렇지?
좀 압박감이 왔다. 다행히 피는 쑥쑥 잘 빠진다.
분리기에 들어갔다가 노란 혈장 성분만 따로 팔이
압력이 풀리면서 투명한 비닐팩에 쪼르르 흘러들었갔다.
요새는 어느 곳에서든 지문으로 신원을 확인하니 참 좋다.
예전에 신분증 안 가지고 가서 몇 번 낭패를 본 적이 있어서... ^^;;
3천 원 도서문화 상품권을 기념품으로 받고 버터 코코넛 과자를
몇 개 들고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거리를 가로질러 다시 돌아왔다.
헌혈 300회를 언제 마치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제 300번 하고도 10회가 지나갔다.
횟수에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냥 한 달에
그저 2번 밀리지 않고 숙제- 내 평생의 정기 숙제-
를 잘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예전에 소아암재단에 기증했던 110여 장 헌혈증 이후
다시 헌혈증이 50장 넘게 모았는데
이것을 어디에다 기증할지 모르겠다.
좀 더 많이 모아서 기증을 해야 할 거 같다.
하여간 원래 어제가 헌혈하는 날이었는데 바빠서 못해서 좀
그랬는데 하루 만에 한 달 정량(?) 2번을 채워서 개운하다.
다시 한번 건강한 내 몸뚱이에 감사함을 전한다.
그러고 보니 6.25 전쟁 발발 60주년이다.
예전에 전쟁터에서 부족한 피는 어떻게 보충하고 수혈했을까...
그 포탄이 불바다였던 전쟁터에서 말이다.
나라를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바친 영혼들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보훈가족들에 대한 예우와 함께
아울러 참전 16개국의 참전용사들뿐만 아나리
그 나라의 가족들까지도 보듬어야 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