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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라면 가까운 곳을 가도 여행이 된다.

2025년 11월 30일 일요일

by 지우진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내와 함께 한다. 새벽에 출근해서 낮에 퇴근한 이후, 밤에 잠들기 전까지 아내와 붙어 있다. 작년부터 아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주3일은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그 외의 날들은 같다. 집 앞에 있는 커피점에 커피 사러 가는 것부터 마트에 장보기도, 빵집에 빵을 사러도, 가볍게 주변 산책을 가도, 그리고 아이들 하원 및 하교도 늘 함께다. 가끔 아내가 피곤해하는 날을 빼고는 말이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는 부모님께서 주말에 아이를 봐주셨다. 첫째가 다섯 살까지 통잠을 자지 않고 새벽에 자주 깨서, 우리도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부족한 잠은 부모님께서 첫째를 봐주시는 주말에 몰아서 잤다. 아이가 좀 더 잘 자준 주에는 토요일 낮에 아이를 부모님 집에 맡기고, 오후 느지막이 아내와 데이트를 했다. 데이트라고 특별히 다른 동네를 가지 않는다. 집 근처 10분 거리에 번화가가 있어서 그곳으로 간다. 초반에는 그 여유로운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게 아까워서 1차부터 3차까지 미리 맛집을 쫙 찾아놨다. 1분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샌가 그렇게 계획을 세우는 게 부담이 되었다. 가려고 했던 곳이 예상보다 웨이팅이 길어지면 마음이 다급해졌다. 계획했던 곳을 가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괜히 더 아쉬웠다. 즐기러 나왔는데 오히려 불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올까 말까한 시간인데, 이렇게 보내는 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반대로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정하는 건 딱 하나였다. 그날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은지만 고민했다. 구운 고기가 먹고 싶은지, 아니면 가볍게 탕에 소주 한 잔 하고 싶은지 또는 분위기 있는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나 스테이크가 먹고 싶은지 정했다. 그리고는 손잡고 산책하듯 거리를 거닐었다. 새로 생긴 팝업스토어가 있으면 들어가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하며 걷다가 괜찮아 보이는 집이 눈에 띄면 들어간다. 사전 정보없이 갔는데 우리 입맛에 딱 맞는 집이면 희열을 느낀다. 아쉬운 집이어도 괜찮다. 기대 없이 갔기에 그럴 수 있다고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한두 번 실패했을 뿐, 대부분 만족했다. 탐험하듯 동네를 구석구석 다니며 새로운 집을 여럿 찾았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아내와 데이트는 어려워졌다. 특히 야간 데이트는 꿈도 꾸지 못했다. 둘째가 세 살쯤 되었을 때, 장모님과 장인어른께서 봐주셔서 오랜만에 한 번 나갔다가 왔다. 그런데 아이들이 우리를 찾아서 급하게 다시 돌아왔다. 그즈음에 코로나가 겹쳐서 나가지 않았고, 이후로도 한동안 그랬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있는 낮에 가끔 간단히 점심 먹으러 나갔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렇게 잠시 둘이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아내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밥먹으며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아이들 하원 시간이었다.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아쉬움을 삼키고, 우리의 귀염둥이들을 맞이하러 기쁘게 유치원 차량이 도착하는 곳으로 갔다.




지난주 주말, 장모님 찬스로 아내와 둘이서 야간 데이트를 했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목적지는 이미 정해놓았다. 아내가 몇 개월 전에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오는 길에 눈여겨봤던 고등어횟집이었다. 웨이팅을 예상하기는 했지만, 대기하는 인원이 생각보다 더 많았다. 우리는 대기 등록을 해놓고 예전처럼 거리를 거닐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꾸며놓은 가게들이 꽤 있었다. 이 주변은 아내와 연애할 때부터 종종 왔던 곳이었다. 계절도 딱 이맘때였다. 아내와 11월에 사귀었는데 그때 생각이 났다. 처음 손잡을 때의 설렘이 떠올랐다. 아무 말없이 아내의 손을 잡았다. 아내의 손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드러웠다.


손잡고 걸으며 거리를 감상했다. 처음 보는 가게들이 많았다. 일본풍의 가게들이 많아졌고, 아기자기한 카페들도 늘어났다. 익숙한 동네지만 새로운 느낌이었다. 혼자 나왔다면 놓쳤을 곳들인데, 아내 덕분에 멈춰서서 같이 구경할 수 있었다. 굽이굽이 골목들을 걸었다. 그러다가 아내의 발걸음이 멈춘 가게에 들어갔다. 아직 고등어횟집의 대기 순번이 넉넉히 남아 있어서 괜찮았다. 아내의 이끌림에 들어간 곳은 오뎅과 야키토리를 파는 가게였다. 벽면에 일본어로 적힌 포스터와 메뉴판이 붙어 있었고, 일본 노래가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아내와 후쿠오카에 여행 갔을 때 방문했던 이자카야가 떠올랐다. 익숙한 우리 동네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기분이었다. 입가심으로 주문한 오뎅과 닭꼬치와 오리온 생맥주도 맛있었다.

기분 좋게 먹고 나와서 고등어횟집으로 갔다. 대기 등록을 한 지 2시간 만이었다. 고등어회는 기다려서 먹을 만큼 맛있었다. 추가해서 더 먹었다. 제주도에 와서 먹는 기분이었다. 이 동네에 이런 맛집이 있었는데 이제서야 왔다니. 아내가 아니었으면 오지 못했다.




아내와 같이 걸으면서, 연애 시절 결혼 계획을 세웠던 카페를 우연히 발견했다. 나는 순간 지나칠 뻔 했는데 아내가 놓치지 않았다. 그 주변의 가게는 다 바뀌어서 헷갈렸다. 그 카페만 그대로였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아내 덕분에 일본과 제주도를 동시에 다녀왔고 추억 여행도 했던 데이트였다. 아내와 함께라면 가까운 곳을 가도 여행이 된다.

20251122_181913.jpg 아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이자카야. 또 가고 싶다.
20251122_215117.jpg 이제껏 먹어본 고등어회 중 가장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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