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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Jan 07. 2022

방백

동생이 이사를 갔다. 이사를 나갔다는 말이 더 정확할까. 아무튼 갔다. 헛헛하다. 지금 드는 이 기분에는 그 말이 정확하다. 서울에서 혼자 산 게 꼬박 6년이었고, 동생이랑 같이 지낸 건 이제 4년 차. 심지어 그 4년 간도 같이 산다고 말하기엔 얼굴을 맞댄 날이 많지 않다. 집을 공유하는 사이에 더 가까운 3년 플러스알파의 시간이었는데. 그럼에도 이 집으로 돌아올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종종 유용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주일에 겨우 두 번 정도만 얼굴을 보는 하우스 메이트일지라도 그 은은한 존재감만으로 혼자 살 때보다 마음 끝까지 외로워지는 일이 덜했으므로.


주인을 잃은 방에 들어선다. 아-. 늘이듯이 낸 목소리가 울림과 함께 퍼진다. 가구 좀 빠졌다고 목소리까지 울리는구나. 괜히 아- 했다가 울림이 주는 공간감만큼의 헛헛함이 더해졌다. 쓸쓸함에 지지 않으려고 머리를 굴려 본다. 빈 방에 책상을 두고 작업실로 쓸까, 그림을 그릴까, 우선 피아노를 옮길까. 그래, 그거부터 시작할까. 생각하다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밀려온다. 기다렸다는 듯 방의 쓰임새를 생각하는 것이 동생이 나가기를 기다린 사람처럼 보일까 싶기도 하고. 아직 방 주인이 바뀌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 그대로 두기로 한다. 천천히 하지 뭐. 저 방 채우려면 가구도 필요하고 돈만 들지.. 천천히 하자, 천천히.

 

사람 좋아하는 동생은 일주일에 겨우 하루나 이틀만 집에서 잤다. 그나마도 정말 잠만 잤다. 같이 밥을 먹는 일은 손에 꼽았고, 잘 자라는 인사말도 거의 나눈 적이 없었다. 우리는 생활 패턴이 완전히 달랐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오픈을 맡게 된 동생은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했고 세시에 퇴근했다. 낮잠을 자다 일반적인 퇴근 시간이 되면 친구 혹은 남자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새벽부터 일한 동생은 집에 돌아올 체력도 남기지 않고 열심히 놀고는 그들의 집에서 그대로 뻗었다가 다시 새벽같이 편의점으로 출근했다. 텐 투 세븐 업무시간을 가지고 자정 남짓한 시간에 들어오는 나와는 스치기도 어려운 생활 패턴이라 우리는 함께 살면서도 서로의 근황을 인스타그램으로 더 자주 접했다. 혼자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생활이었음에도 동생 몫의 방이 비어 버리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인가 보다. 솔직히 걔가 이사 간다고 해서 이만큼이나 허전할지 몰랐다. 도리 없이 쓸쓸하다. 


미안하다.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에는 언제나 미안함이 깔려 있다. 자기보다 힘도 세고 기도 센 언니를 둔 동생은 순하고 사교성 좋게 자랐다. 타고난 성격이기도 하겠으나 나는 유들유들한 그 성격이 우리 집 막내로 생존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본능이 아닌가 싶어 그게 좀 미안하다.


쌍둥이 소리를 듣고 자랄 정도로 닮은 우리 둘은 까놓고 보면 너무 달라 문제였다.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골목대장 행세를 하던 나를 쫓아다니느라 동생은 무릎에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까진 무릎을 호호 불어주지 않는 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건 꽤 서럽고 외로웠을 테지만 어쩔 수도 없었을 거다. 어릴 때부터 혼자서도 괜찮았던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천방지축이었고, 사람 좋아하는 동생은 그런 나라도 필요했다. 어린 날 우리가 자라던 시골집 근처에는 또래가 없었고 학교가 끝나면 놀 사람이라고는 서로 밖에 없었기 때문에.

동생은 책을 싫어했다.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10만 원을 주겠다는 엄마의 딜에도 흔들림 없이 절대 책을 읽지 않을 정도로 싫어했다. 책을 쥐어주면 세 페이지만에 좀이 쑤셔하며 이리 앉았다가 저리 앉았다가 결국 엎드리고는 잠에 들었다. 그에 반해 나는 그야말로 책벌레였다. 어른들 눈에 누가 더 바람직해 보였을지는 뻔하다. 어른들은 늘 그렇게 동생을 나무랐다. 너네 언니처럼 책 좀 읽어라, 하고. 그럼 착해빠진 동생은 투정도 없이 책을 집고 앉아 좀 쑤셔하다 잠드는 것이다. 책 좋아하는 게 착한 마음보다 중요한 덕목인지는 그때도 지금도 모르겠다.

나 때문에 자주 다치고 주눅 드는 동생에 대한 미안함은 내 몫이었다. 나보다 두 살 어릴 뿐인 동생에게 어른들은 주의만 줬다. 으이구, 조심해야지. 으이구, 너도 책 좀 읽어야지. 으이구, 으이구. 그 말에 마치 동생이 훌륭하게 어른으로 자라는 데 필요한 양분을 꾹꾹 심어둔 것처럼 조심성 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나는 그런 어른을 참아내질 못했다. 어린애한테 말 한마디를 따뜻하게 하지 못하는 꼴을 보면 가슴에서 불이 솟았다. 동생을 나무라는 말에 내가 열이 뻗쳐 반항심을 잔뜩 묻힌 몸짓으로 동생 팔을 낚아채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럼 또 순순히 딸려 나오는 동생은 속상한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는지 애착 베개를 꼭 안고 웅크렸다. 함께 슬퍼진 나는 애착 이불을 덮고 꽁꽁 숨었다. 우리를 해칠 말이 없는 솜과 면의 세계로.


우리가 달라 생기는 미안함은 아빠가 애정을 공평하게 나누지 않을 때 가장 심했다. 자식이라고는 딱 딸 둘 뿐인 우리 집에서 아빠는 티 나게 나를 편애했다. 주변에 내놓고 자랑하는 예쁜 딸은 언제나 첫째였으며 집에서도 끼고 사는 딸은 나였다. 편애만 하면 다행이지. 심지어 동생에겐 박했다. 내가 원한 적 없는 편애로 나는 늘 동생에게 가해자였고 엄마와 나 사이에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나 역시 편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러니 엄마는 겉으로라도 동생을 편애하겠다는. 내게 쏠린 애정을 어떤 형태로든 동생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합의가. 나는 언제나 동생보다 두 살 큰 어른이었고, 어른은 양보하는 사람이라 배웠고, 내가 동생에게 양보할 것은 엄마의 애정이었다.

결국 엄마와 나는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엄마, 아빠가 이혼한다면 그래서 우리가 각자의 엄마, 아빠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아빠를 따라가겠노라. '누구 따라갈 거야?' 의도 섞인 엄마의 질문에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이엔 동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으니까. 엄마도 아빠도 잃고 싶지 않았지만 언제든 엄마를 잃을 준비를 해야 했다. 엄마와 아빠의 싸움이 밤새 길어지는 날이면 엄마와 동생에게 의젓한 목소리로 안녕을 말하는 상상을 했다. 마땅히 내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듯이. 그러다 감당할 수 없이 슬퍼지면 다시 이불속으로 숨었다. 텁텁한 공기가 고여 숨 쉬기 답답하고 어둑한 그 안온한 곳으로.


사실 우리끼리는 달라서 좋았다. 식성까지 정반대로 태어나 먹을 걸로 싸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선과 고기, 식빵과 도넛, 아몬드 후레이크와 후르츠 링, 심지어 계란마저 나는 노른자 걔는 흰자만 먹었다. 반찬으로 자기 몫의 계란 프라이가 놓인 날이면 입 짧고 편식 심한 동생은 흰자만 야금야금 긁어먹다 날 향해 도르르 눈을 굴렸고, 나는 노랗게 익은 노른자를 한입에 얌 삼켰다. 그럼 동생은 젓가락으로 내 그릇을 스르륵 끌어다 노른자 없이 지도 모양으로 남은 흰자를 야금야금 긁어먹었다. 우리는 계란 프라이 하나도 평화롭게 나눠 먹을 수 있는 콤비였는데.


-


여느 때와 같은 늦은 퇴근, 사람 없는 집, 캄캄한 거실. 자정 즈음 퇴근하면 늘 혼자 맞던 풍경인데 오늘따라 거실에 들지 못하고 현관에 오도카니 섰다. 거실이 너무 캄캄하다. 이상하리만치 캄캄하다. 원래 이렇게까지 캄캄했던가. 그러고 보니 지난 일주일 내내 캄캄했다. 네가 이사를 나간 이후로 쭉. 네가 없기 때문에. 우리 집에 나 말고는 불을 켜 둘 사람이 없어서. 생각해보니 네가 들어오는 날이면 희미한 불이라도 켜져 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에 지나지 않더라도 나 들어왔어 티 내는 불빛이 꼭 희미하게 있었다. 잔뜩 지쳐 집에 돌아온 날 내가 마주하는 게 캄캄한 거실이 아니라 네가 집에 있다는 흔적을,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하는 것. 그 희미한 불빛이 네 사랑이었을까. 밤이면 곧잘 외로워지는 나를 위해 대비해둔 네 사랑이 아니었을까.

조금 울고 싶은 마음이 되어 가만가만 조용히 발을 옮겨 거실 불을 켠다. 하루 종일 앉아 있느라 무겁게 부은 다리를 옮겨 침대에 앉는다. 침대까지 새어 들어오는 거실 불을 지켜보다 모로 누워 생각한다. 불을 켜 두는 게 네 사랑이었구나. 너는 날 사랑했구나.


역시나, 너를 생각하니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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