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 조각이 아까워서
나 가을 타는 거 같아. 충동적으로 적은 여덟 자를 하마터면 보낼 뻔했다. 이런 말을 하기에 나는 매일 무언가를 탄다. 머쓱한 기분으로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지워버린다. 토도도독. 경험 상 감정에 취해 보낸 카톡은 숫자 1이 사라지는 순간부터 부끄럽다.
사실 가을 탄다는 말은 좀 낭만적이라 적절하지가 않다. 낙엽 하나 태울 정도의 바람만으로도 하루를 앓게 되는 이 계절은 오히려 감기에 가깝다. 철 되고 조건 되면 찾아와서 고생시키는. 그래서 갈이라는 말을 붙이기로 했다. 물이 맞지 않으면 배탈이 나는 것처럼 예고 없이 바뀌는 바람에 탈이 나는 것이니 갈이가 맞을 것 같다. 물갈이, 계절 갈이. 가을갈이.
날씨도 타고 사람도 타고 심지어 지나가다 맡은 서울 시민 1의 향수 냄새까지 타는 나는 사실 딱히 타는 게 없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무엇에라도 기분이 오락가락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종류의 사람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무언가를 탄다는 건 그 무언가가 아무튼간에 트리거가 되어 어떠한 감정을 유발한다는 거니까. 그럼에도 가을이라 특별히 실감하는 것들이 분명 있다. 인도 가장자리 부대낀 낙엽에 새삼 마음이 꽉 죄어들고 하늘이 파랗다는 이유로 눈물이 날 것 같고 올해가 이렇게 끝나간다는 생각에 조급해지고 내 기분만큼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적당한 옷을 고르지 못해 오들오들 떨다가 땀을 흘리다가를 반복하느라 매일이 피곤하고 지치는. 거의 서른 번을 겪은 가을에 적응을 못하고 첫눈 소식처럼 전할 뻔했다. 나 가을 타는 거 같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