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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Jan 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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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이 오지 않는다. 평생 잠을 잘 자본 적이 없지만 요샌 정말로 잠이 오지 않는다. 우울이든 수면장애든 일종의 바이오 리듬이다. 괜찮다 싶으면 찾아왔다가 죽겠다 싶으면 물러났다가. 그래도 요 몇 달 간은 세시를 넘기는 날이 줄었었는데. 다시 제자리다.

 생각을 말아야 한다. 잠이 안 온다는 생각만으로도 잠이 깨버린다. 눈을 감고 잠에 빠지기를 기다리는 순간은 아주 지루하고 피곤하다. 생각 없는 상태에 머무르기 위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 집중력이 잠깐이라도 흐트러지는 순간, ‘생각 없는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하는 압박이 생기면서 오히려 정신이 또랑또랑하니 개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그러나 잠의 비위를 거스르지는 않도록 노력해야만 잘 수 있다.

 등을 바르게 펴서 침대에 고르게 붙이고 팔과 다리를 뻗어 축 늘어뜨린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밤의 바다를 떠올릴 시간이다. 잠에 빠져드는 순간은 늘 물에 가라앉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 이 상상이 잘 먹히면 잠에 비교적 쉽게 빠질 수 있었다. 밤하늘을 녹여 채운 듯한 바다에 뗏목을 띄우고 표류하는 상상을 시작한다. 등을 맡긴 매트리스가 둔하게 넘실대는 파도처럼 느껴지면 반은 성공이다. 손끝, 발끝에 남은 힘까지 모조리 거두면 잠의 목전이다. 자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반 무아지경의 상태. 이곳에 머무르다 보면 잘 수 있다. 보통은.

 보통은 그렇게 잠에 들기 마련인데.

 잠이 들지 않는다. 잠이 들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잠이 저 멀리까지 도망쳐버렸다. 시간을 확인하니 고작 십 분 지났다. 삼십 분은 지났을 줄 알았는데. 직감적으로 오늘은 망했음을 예감한다. 오늘은 잘 자기는 글렀다. 내일 아주 피곤할 예정이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니 오히려 편하다. 될 대로 돼라. 배터리가 방전되면 잠이 들긴 하겠지.


-


 떠오르듯 잠에서 깼다. 알람 없이 잠에서 건져지는 순간은 늘 이렇다. 수면 아래 웅크리고 잠겨 있다 쑤욱 건져 올려지는 느낌. 얇은 눈꺼풀을 뚫고 비치는 어른한 빛에 눈을 뜨기 전부터 알겠다. 이미 해가 밝은 시간이구나. 불쑥 혼자 스위치가 켜진 정신과 달리 아직 몸은 잠을 자고 있는지 감은 눈을 뜨는 데는 약간의 억지가 필요하다. 자연스럽게는 떠지지 않는 눈에 부러 힘을 꽉 주어 감은 눈을 더 감았다가 봉오리를 터뜨리듯 뜬다. 조명 없이 음영진 천장이 낯설다. 여기가 어디지. 저 미색 벽지가 발린 이곳은 어디였더라. 갑자기 코앞까지 천장이 성큼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에 머리가 핑 돈다. 어지럽다. 모로 누워 다시 눈을 감는다. 어디지, 여기가. 분명 가만히 누워있는데 침대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 내가 어제 뭘 했더라. 퇴근을 했고, 집에 왔고, 아주 늦게 잠에 들었고. 마지막으로 본 시간이 일곱 시 몇 분쯤이었나. 지금은 몇 시지. 최소한의 틈만 벌린 눈꺼풀 사이로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굴려 핸드폰을 집는다. 10:13 Saturday. 세 시간 잤으니 더 자야 할 텐데. 간신히 벌렸던 눈꺼풀에 힘을 풀고 이불을 당겨 침대에 폭 안기듯 눕는다. 더 자야 한다. 자야 한다. 이러다 제 명에 못 죽지. 맞다. 오늘 출근해야 했는데. 어제 퇴근 전부터 토요일 출근을 각오했다. 한창 바쁜 때라 평일에 야근하는 것으로는 일이 도무지 처리가 되지 않아 주말까지 쏟아부을 셈이다. 다음 주까지 일을 이고 지고 가기는 싫어서. 지금 씻고 바로 나가면 회사 도착하면 세 시쯤.. 그냥 집에서 할까, 회사에서 하는 게 효율적일 텐데.


 아,

 집. 그래 여기 집이구나. 그제야 천장의 정체를 깨닫는다. 내 방 천장이 저랬었지. 깨닫고 나니 빙글거리던 침대가 바닥에 잘 붙어 고요해졌다. 이번 달에만 몇 번째더라 이게. 자꾸 눈을 뜬 순간 여기가 어딘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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