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랗게 멍든 시간들. 47
요즘은 뒤돌아 보는 일이 많이 없어졌다기보다는 과거의 나에게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일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헤어진 연인에게 떼지 못한 정을 질질 끌어가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잘못했던 일을 떠올리고서는 그랬구나 하고 보내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다시 같은 실수나 행동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또 동시에 나이 먹을수록 어떤 관계에서 오는 멀어짐이나 헤어짐이 익숙해지기는 하는데 이상하게 익숙함과는 별개로 너무 쓸쓸하다. 나이 드는 일은 쓸쓸한 일인가 보다. 한 살을 먹을수록, 일 년이 지날수록 쓸쓸하다. 재작년보다는 작년이,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 쓸쓸하다. 쓸쓸함이라는 단어를 스물 때는 알아도 몰랐던 것 같은데. 나이 먹는 일은 참 슬프고 묘하다. 지금 이 스물여섯이 너무 쓸쓸하다. 스물일곱은, 스물여덟은, 아홉은, 그렇게 서른은. 내 나이가 많아질수록 나는 익숙한 성장 속에서 쓸쓸함을 견뎌야 하나.
둘이 살던 집을 떠나 이제 각자의 집을 갖기로 한다. 2주 뒤면 떠나야 할 이 집에서 나는 천천히 내 것을 정리한다. 내 짐을, 내 기억을. 내가 서울 살이를 다시금 시작하게 해 주었던, 그리고 그 시간과 기회를 주었던 내 룸메에게 감사한다. 차마 정이 남아 쉽게 갈라서지 못하던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그저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내 룸메는 여기 남고, 나는 그곳으로 가겠지. 허할 거고, 어색하겠지. 외롭고 또 슬퍼지는 시간들이 오겠지.
쓸쓸함이나 외로움 같은 것들은 쉽게 떼어 둘 수 없는 것들이라 따라오는 게 당연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두통을 동반할 정도로 머리가 아픈 문제로 인식하는 게 나의 문제지만. 가방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타이레놀은 지금 복용하는 신경안정제가 줄어드는 속도를 보면서 내 상태를 가늠하게 된다는 게 정말이지 싫다. 그럼에도 그런 생활의 반복 속에서 익숙해지고, 혼자 있으면서 운다는 행위에서 위로받게 된다는 사실이 어쩌면 마약처럼 작용해서 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자꾸만 울고 있는 것 같다.
익숙한 성장 속에서 견뎌야 하는 쓸쓸함이라는 말. 이렇게 쓰다가 다시 돌아보니 너무 잔인한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쓸쓸함을 느끼는 일이 익숙해져야 한다면, 그게 성장이라면 나는 여기서 멈추면 안 되는 걸까. 일종의 푸념 같은 글이 되어버린 오늘의 문장 속에서 나는 또 위로를 받고 쓸쓸한 노래 속에서 울고 있겠지. 그런 나를 아는지 이석원의 목소리가 가장 보통의 존재를 읊조리고 있다. 모두 그런 거니까. 나 또한 모두와 같은 보통의 존재니까.
이런 이런 큰일이다.
글 :김태현
그림 : 윤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