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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Aug 18. 2019

무제

요즈음 난 온전히 편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교류를 거의 끊고 지내고 있다.

아침 일곱 시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그렇게 눈만 껌뻑거리다가 출근하고. 퇴근 후에 집에 오면 여덟 시고. 집에 와서 쉬다가 약 먹고 잠에 들고.

하루에 한 끼를 제대로 챙기거나 대충 먹다 말거나. 그래도 속이 복잡하지 않으니 괜찮은 것 같다. 딱히 배가 고프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다. 회사에서 업무 중에 숨 막히고, 길거리에서 필름 아웃이 되고, 생전 모르는 타인이 날 부축 하고를 몇 번 반복하니 두렵기는 한 거 같다. 이따금 죽음을 그리는 나도 삶이 아직은 그립기는 한 거겠지.

작년 이후 접어두었던 정신계 검사를 다시 받았다. 어쩌면, 조금 더 빨리 받았어야 할 검사. 예상했던 것처럼 검사 결과는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안와전두엽의 활성 상태가 죽어있다.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대를 느낄 수 없다는 말은 사람으로서 한구석 망가진 듯하다. 온전히 나을 수 있는 방법도 없으면서 약에만 의지를 하는 것도, 그리고 그 약을 견디지 못하면 내 하루 패턴이 망가지는 것도. 약을 견디지 못하는 날이면 눈에 초점도 없이 아무런 힘을 못 쓰는 내가 너무 싫어진다. 나를 혐오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그 약속을 못 지키는 거 같아서 더 원망스럽고. 병원을 옮겨야겠다. 다시 검사를 받아야지. 가끔은 이러다 뇌가 멈춰버릴 거 같아서 무섭다. 정말 쓰러져서 죽으면 어쩌지. 나는 아직 살고 싶은 거 같은데.

외로움에 취약한 편인데, 점점 더 무뎌지는 거 같다. 7월부터 불구덩이에 빠져 살았다. 그게 아직까지 이어지느라 몸도 마음도 망가졌고. 생각해 보니 내 속을 들어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인 거 같다. 나라는 사람이 다 무너지고 있을 때, 정작 숨을 쉴 수 있던 곳은 없었으니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공감의 정서가 결여되면서 매뉴얼이 필요해지고, 상정된 상황 외의 것들이 나를 둘러싸기 시작하면 고장 난 로봇처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진다. 그러다가 내가 사람이 아니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인간 존속에 대한 의구심 같은 것들.

이렇게 되기까지 내가 어떠한 신호도 보내지 않았던 건 아닌데. 정말 많이 울고 처음으로 버티지 않았는데. 자신의 행복에 도취되어 타인의 슬픔은 보이지 않던 이, 위로하는 법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타인의 고통을 넘기던 이, 자신의 이야기만 뱉기 급급했던 이. 모두 내 곁에 남겨진 사람들. 그 속에서 외로움을 참아야만 했던 나. 정작 그들은 자기들만의 걱정과 위로의 방법을 내가 듣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더 닫게 된다. 언제까지 혼자 남게 될까. 외로움과 공허는 약으로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혼자 삼켜내는 법만 더 늘어간다.

연인과의 만남을 무서워하면서 일에 몰두하는 것도 다 저런 이유에서 비롯되는 거 같다. 내 존재의 의미를 찾고 싶어서. 내가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닿았던 곳이 없으니까. 차라리 증명할 수 있는 생명이 없는 업무가 나으니까. 그게 더 위안이 될 때가 많아진다.

다시 죽음을 구체적으로 혹은 희미하게 떠올린다. 예전보다 더욱 규칙적인 삶을 보내면서 공허는 더욱 심해진다. 혼자라는 걸 가장 두렵게 여기던 내가 이제는 혼자라는 걸 두렵게 여기지 않게 됐다는 걸 좋아해야 되는 걸까. 나는 그들과 천천히 멀어지고 있다. 감정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 곁에 있고 싶은 이들은 물리적으로 멀리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너진다. 울고 싶어 진다. 아무리 울고 싶어도 참아내는 일이 더 익숙하다는 게 먹먹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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