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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인 Jun 20. 2018

사자와 소통하기

<사자와 소통하기>


탄자니아의 셰링 게티 평원에는 들소,

검은 꼬리 누, 사바나 얼룩말, 코끼리 등의

대형 포유류들이 살고 있다.


한 과학자가 놀라운 발견을 했다.

말을 하는 사자를 만난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렇다는 건 아니고

셰링 게티 평원에서 대면한 사자가

한국어를 구사한다고 상상해보자

단어만 내뱉는 정도가 아니라

문법 구조에 따라 말을 하고 있다.

도대체 사자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어이 친구, 반갑네, 여기 약육강식의 질서를 따르고 있네만, 자신의 노력 여부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는 측면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합리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다네."


이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상상하긴 어렵지만 추측해본다면 우리는 그가 내뱉는 소리들이 익숙한 단어와 문장 배열이라는 것은 느끼더라도 그가 하는  말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채 사장이 쓴 <지적 대화를 위한 얕고 넓은 지식>이라는 책에서 본 글이다.


"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

무슨 말인가? 우리는 같은 말을 한다고 해도, 서로의 공통분모가 없다면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타인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지만 갈등이 벌어지는 현상에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간극과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소통은 어렵다. 내가 알고 있는 시어머니, 며느리, 친구, 연인, 직장동료 등 이들과 하는 소통이 진정한 소통이 될까?

   

엄밀하게 말하면 소통이 될 수 없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인식은 나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뇌가 만들어준 그림자일 뿐이다. 즉 내 마음의 자아에 의해 재구성된 형태와 교류하면서 세계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현상을 보지만 다르게 해석하는데 문제가 발생된다. 따라서 우리는 관계를 맺고 있지만 관계를 맺지 못한다.

   

사람마다 세계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살아온 환경, 교육수준, 종교, 세계관 등등 삶의 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건 세계를 보는 인식 자체가 각자의 삶이라는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기 방식대로 세상을 해석하고 본다. 이러한 자기 해석의 차이가 갈등이 되고 불통이 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 관계를 어떻게 해야 서로 좁히면서 타자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먼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때는 언어라는 도구로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소통을 하는데 상대방이 던지는 언어가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는지 귀 기울여서 잘 들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대화이다. 여기서 말하는 귀 기울인다는 의미는 내가 아닌 타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타인이 무엇을 인식하고 있고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는 단어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즉 타인이 인식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 사람이 세계를 살아온 방식 즉 타자의 내면세계 속에 들어가려고 노력할 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고 대화가 가능하다. 이러한 행동을 할때 상대방을 존중한다.라고 말한다. 만약 타인과 대화 시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세계관 안에서 타인의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대화는 영원히 단절될 것이다. 그래서 대화는 쉽지만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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