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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하는마케터 Feb 22. 2019

앞으로 여행을 위한 여행은 가지 않을 거야

나를 속이는 여행

하루는 친구가 내게 여행지를 추천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고 즐기는 걸 알고 있는 친구였다. 여행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일상의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든 해외든 장소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이 자주 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은 어렵다. 각 개인이 여행을 통해 추구하는 바, 여행 스타일이 전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의 추천으로 여행지에 갔다가 실망하고 돌아온다면 그건 또 누구 책임인가. 그래서 나는 그냥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떠오르는 곳을 추천해줬다. 그리고 마지막에 "근데 갑자기 왜 여행 가려는 거야?" 하는 질문에는 "그냥 가야 할 것 같아. 시간 있을 때 어디든 빨리 가야지."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사실 그렇다. 여행 에세이를 보면 새로운 여행지에서 느낀 생각과 감정을 적어놓은 글들이 많다. 대부분이 그 당시 상황을 재밌게 묘사하고 있어 같이 호흡하고 있는 착각까지 들게 한다. 다 읽고 나면 그곳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도 그런 막연한 호기심과 기대감에 이끌려 여행을 떠났고 만족스러운 기억이 많이 남아있다. 그렇게 나는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매년 방학에 맞춰 여행 계획을 세우고 돈을 모았다. 방학이기 때문에 시간과 일정에 큰 제약을 두지 않았다. 허락되는 조건 하에 가장 저렴하고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오래 머무를수록 재밌게 읽은 에세이처럼 좋은 단상들이 많이 떠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내 생각은 지난여름의 경험으로 큰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작년 여름, 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떠나기 직전 나는 전과 준비로 정신없는 한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지 못했다. '어디를 가고 싶은지', '그곳에 왜 가고 싶은지', '가서 뭘 하고 싶은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다가오는 방학과 통장에 남아있는 잔고를 보며 여행지를 검색했다. 그리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갔다 오면 뭐라도 남겠지'라고.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습기 높은 더위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여행지에 대한 공부, 적어도 가서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목적의식이 없었다. 물론 어떤 것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서 또는 여행지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사로잡혀 여행을 떠난 적은 없었다. 그저 익숙함에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목적에 떠났다. 새로운 것을 채워 넣고 싶은 마음이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에서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지난 여행에서 크게 두 개의 도시를 방문했다. 조용한 치앙마이는 주변에 카페가 많아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정신없는 방콕은 생각보다 실망적이었다. 돌이켜 보면 잠시 머물렀던 치앙마이가 매력적으로 느껴진 것은 한적한 분위기에 하루 일과가 그저 숙소 근처 카페가기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에게 작년 여름 방학은 여행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었다. 그 시기는 그간 내가 해온 것들을 정리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 시기였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채우기보다 멈춤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막연하게 '떠나야 한다'라는 생각에 이끌리듯이 떠났다. 내가 나를 여행으로 내몰았고, 내가 여행이 필요하다고 나를 속였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여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는 여행을 위한 여행은 떠나지 않을 거다. 남들과 비슷하게 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지도 않을 거다. 그저 내가 가고 싶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떠날 거다. 누구에게나 여행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시기는 본인만 알고 있으며 시간을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 여행을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떠나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맹목적인 여행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방학에 여행을 가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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