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몹시 추웠던 어느 날 S가 내게 물었다.
"오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그 질문이, 우리의 밤 산책에 불쑥 끼어들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추운 겨울날 그녀의 손을 잡고, 밤거리를 걷다가 오토바이가 오면 내 쪽으로 당겨 안고, 자동차가 큰 소리를 내며 지나다니는 4차선 도로 옆 인도 위를 걸을 땐 그녀를 도로에서 먼 쪽으로 걷게 하는 것. 그게 사랑일까? 그녀가 웃으면 나도 웃고,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고개를 한번 갸우뚱, '왜'라는 질문을 하면 '그냥'이라는 답이 돌아오는 그것이 사랑일까?
여러 편의 글을 써오며 항상 사랑이라는 감정을 주제로 삼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S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즐겁고, 곁에 없으면 보고 싶고 그리운 게 사랑"이라 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을 말들로 주저리주저리 설명했다. 나는 '사랑이 뭘까?'라는 질문을 그녀에게 돌려주지 못했다.
S를 처음 만난 건 9월 어느 날 문래동에서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도림천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와의 헤어짐이 아쉬워 내일을 기약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도,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도 그녀를 생각했다. S의 손을 잡던 날, 그녀는 내게 환한 미소로 응해주었다.
그렇게 그녀와 인연이 된 지 5개월,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을 알아가고 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과 먹지 못하는 음식, 아끼는 물건과 행복했던 추억들을 알아가고 있다. 그녀의 공간에 들어가고, 나의 공간에 그녀를 허락하고, 그녀와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있다. 나의 서랍엔 그녀의 편지가 쌓여가고 나의 휴대폰엔 우리의 사진이 늘어난다. 나는 점점 그녀로 물들어가고 있다.
정현종 시인은 말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서로의 삶에 일부가 되는 것이다. 너와 내가 우리가 되고, 함께가 되는 것이다. 그녀와 함께하며 나는, 자주 웃고 두근거리는 설렘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먹지 않던 민트 초코를 먹고, 싫어하던 통화를 1시간 넘게 붙잡고 있는 날도 늘어나게 되었다. 내 삶의 순간들이 그녀로 인해 변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을 정의한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사랑을 한 단어로,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사랑의 정의는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물여덟, 12월의 나에게 사랑이란 'S'다. 내 삶의 순간순간에 떠오르는 그녀의 이름이 나에겐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