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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책방 Mar 20. 2024

명상은 나를 더 선명하게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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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Q51aSKghoq4?feature=shared

《수도원에서 어른이 되었습니다》저자 김선호 작가 인터뷰 3부


오후 : 저는 종교에 대해서 서로 종교 간의 어떤 벽을 세우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거에 대해서 좀 부정적이에요.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나? 그게 종교의 폐해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반면에 작가님의 구도 과정에서는 그런 벽을 전혀 못 느끼겠더라고요. 다른 종교 또는 다른 구도자들과 만났을 때 어떤 동지애를 느끼는 것 같고요. 원래 본래 하나 자리 되돌아가는, 찾아가는 친구들을 만난 그런 모습을 보았어요. 이게 작가님의 성향인지 아니면 프란치스칸의 정신인지 또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정신이 어떤 것인지 좀 곁들여서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선호 : 프란치스코라는 사람은 지극히 예수랑 똑같이 살고 싶었던 단순하게 설명하면 그냥 예수랑 똑같이 살고 싶어 했던 사람이에요.

지금 이제 '가톨릭'이라는 이름으로 있는데 가톨릭이라는 뜻 자체가 보편적이라는 뜻이잖아요. 물론 이전 역사 안에서 종교 재판이라든지 그런 안 좋은 역사도 있어요. 존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불교에서 '도반'이라고 하고 프란치스코의 작은형제회에서는 '형제'라고 불러요. 다 형제라고 부릅니다. 프란치스코가 한 기록이나 행적들을 보면 세상으로 많이 보내요, 형제들을! 거기서 하는 말이 머물러 있으라, 고 얘기해요. 뭔가를, 종교를 전파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가서 그 자리에서 머물러서 거기 있는 사람들과 같이 생활을, 그 방식대로 생활하게 하거든요. 그래서 형제들이 세상 곳곳으로 다 가는데 가서 여기가 무슨 종교단체 그런 이미지가 없어요. 그냥 거기 농사짓는 분들이 있으면 같이 농사짓는 젊은이들이 있는 거고, 청소년 쪽에 있으면 청소년들과... 그런 생활을 해요. 그러다가... 그냥 그 안에서 생활하다 거기서 머물다 가시기도 하고요. 그렇게 그냥 그 안에서 같이 생활하는 것을 많이 강조하는 부분이 있고 이걸 프란치스칸 영성이다 하면 이것도 하나의 좁은 문이 될 수도 있고 그냥 가톨릭 자체가 보편성을 띄어요. 저는 그렇게 확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프란치스코는 예수라는 사람을 따라서 살고 싶었고, 예수도 자기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거든요. 그때 하는 말들이, 뱀처럼 슬기롭고 이렇게 지혜롭게 어떻게 살아라,라고 얘기하지 가서 나의 이름을 전파하라는 게 아니거든요. 그 방식 그대로! 프란치스칸은 따랐던 걸로 기억이 나요.      

오후 : 현실에 살아가는 우리는 내가 할 수 없는 어떤 한계점에 부딪힐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너무나 무기력한 순간이 그래도 한 번씩 경험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게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 우리의 문제로 생각해 볼 때는 나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는데 뭐 빈부 격차라든가, 사회 구조라든가, 전염병이라든가, 자연재해라든가, 이런 세상 한가운데서 '좌관', 고요히 나와 머무는 시간... 이런 게 어떤 의미 또는 힘, 도움이 될까요?

      

김선호 : 그건 이런 질문이랑 똑같은 거 같아요. '세상에 이렇게 험악한데 앉아서 기도한다고 되냐?' 그런 질문과 비슷한 거 같고... 일단 명상이나 '좌관'이 저는 필요하다고 말씀드려요.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뭐냐면 우리가 보통 명상이라고 생각을 하면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평화로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게 명상이라고 생각하는데 보통 정확한 표현은 '좌관坐觀'이라고 표현합니다. 앉아 있는 채로 바라보는 거예요. '바라보는 것'이에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나를 날카롭게 만들어요. 평화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 바라보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먼지도 보이고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도 보이고, 다 보여요.

그래서 좌관을 하다 보면, 어느 과정 안에서 너무 힘들어요. 왜냐면 다 보이니까, 나의 수치스러운 부분들 그리고 막 화가 나요. 세상이 다 보이니까! 어떻게 저렇게... 막 이렇게 분노도 올라오고 힘든 과정이 있단 말이에요. 그 과정이 왜 생기느냐면, 다시 돌아가 보면 '보이니까' 생기는 거잖아요. 일단 봐야 거기서부터 시작이 되는 거예요. 내가 어느 길을 갈지 그리고 봐야 그걸 도려낼지, 곪은 데를 파낼지 명확하게 해주는 거죠. 그러한 시선을 명상을 통해서 얻을 수가 있어요. '좌관'이라는 것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심리 쪽에서는 직관력을 높인다고 표현하는데 실제로 뇌파 검사를 해도 직관력에 좋은 'α파'가 명상할 때 쏟아져 나와요. 현실을 더욱 직시하려면 가만히 앉아서 나의 직관력을 갈고닦아야 돼요. 그래야 순간순간 다가오는 수많은 감정의 전이라든가, 어떤 욕망이라든가, 아니면 덮어씌운 가짜 외연의 모습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직관적으로 바로바로 알아차릴 수가 있어요. 그럼 내가 피하기도 하고 맞서기도 하고...... 실제로 어떤 위대한 업적을, 세상을 바꿨던 사람들을 보면, 항상 혼자 있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냥 멀리 안 가고, 예수라는 사람도 혼자 광야에 가 있는 시간을 가졌잖아요.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서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라고 할게요. 그래서 나를 날카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해야 제대로 보이고 아프더라도 도려낼 걸 도려낼 수 있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후 : 더더욱 필요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좀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이번엔 좀 다른 질문인데요. 사모님에 대한 질문입니다(네, 나올 줄 알았어요.) 한 챕터에서 동지를 만난 이야기라고 하면서 사모님을 소개하는데 사실 저는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이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읽었어요. 근데 말을 많이 아끼시는구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번 책을 내시고, (10년 전에 물론 나온 책이긴 하지만) 사모님께서 이 책을 보시고 소감을 나눈 게 있다면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선호 : 우선 저는 제 안사람을 '동지'라고 불러요. 책에서도 동지라고 부른다고 했고. 안사람도 수녀원에서 수녀로 오랜 시간 생활을 했고 부부지만 또 같은 한 곳을...... 그런데 가는 방식은 달라요. 많이 다르고.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안사람은 제 책을 잘 안 읽어요.  수준이 많이 낮다고 생각하니까... 이제 그 부분은 '내가 이제 이런 것도 썼어.'라고 자기 이야기에 '나를 어떻게 적은 거야.' 하면서 그 부분은 봤다고 하더라고요. 음.... 비겁하다 그랬어요. 저 보고! 있는 그대로 다 안 보여 주는 것, 감춘다는 느낌! 안사람은 날카로운 사람이에요. 정신분석을 지금 하는 분이고, 저는 정제된 표현으로 '감춰 준다'라고 표현을 했어요. 소중한 것은 항상 좀 감춰야 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쉽게 표현하면 그냥 단편만 보여 준 거죠. 안사람과의 나눴던 대화라든가 또 어떤 같이 공유했던 경험들은 사실 책으로 또 한 부분 나올 부분만큼 양이 큰 부분이에요. 엄청난 부분, 근데 그걸 쓰자면 동의도 얻어야 되고 그리고 아직 제가 제 안사람을 잘 몰라요. (아! 저도요.) 앞으로도 모를 것 같아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나중에 따로 책을 쓴다면! 안사람도 수도원에 관련된 책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안사람이 딱 잘라 얘기했어요. 내 얘기는 하나도 안 들어갈 거라고! 저는 그나마 많이 넣은 거예요. 수도 생활이 포커스죠. 수도원 생활 그 내용 안에서 형제들 간의 관계만으로도 내용이 많아요. 사실 그중에서 정제해서 이 책 안에 들어갔죠. 그래서 '동지(아내)'에 관련된 이야기는 이 정도만 해도 어떤 사람인지는 충분히 알 것 같아요.


오후 : 마지막 질문도 '수도원에서든 수도원 밖에서든 나는 진리를 찾는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로 다시 질문드립니다. 저는 아까 잠깐 말씀드렸지만, 책의 느낌? 책을 읽다가 받은 느낌에 따라서 이렇게 (라벨) 색깔을 좀 달렸는데요. 녹색 부분이 '선생님께서는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겠다'라는 인상을 받은 부분이에요. 아니면 저의 제 선입견일 수도 있는데,      


김선호 : 네 선입견이 맞습니다. 좀 명확해야 될 것이 뭐냐면, 제가 수도원을 나온 이유는 안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 나온 거예요. 세상에 뭔가 전파하고 싶어서 나온 게 아니에요. 왜냐면 저는 수도원에 남아있을 수도 있었고 그냥 세상으로 나올 수도 있었어요. 선택을 한 거죠.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에 의한 결정이에요. 왜냐하면 그 안에서도 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고, 요청하면 얼마든지 기회가 주어지는 활동 수도회였기 때문에. 다만 저는 이제 선택을 한 거죠. 결혼을 할 것이냐 아니면 수도원에 남아 있을 것이냐.  수도원에 있는 건 형제들이랑 같이 사는 거예요. 결혼생활을 하는 건 제 아내와 같이 사는 거죠. 동지를 누굴 선택하느냐의 몫이었어요. 그래서 먼저 있던 동지들한테는 배신을 하고 나온 거죠. 평생 같이 살겠다고 약속해 놓고 결혼 서약 다 찍어 놓고 미안해! 나 이혼해야 될 것 같아, 하고 나오고 이제 아내를 만난 거죠. 그래서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는 마치 제가 세상에 나와서 구도자적인 어떤 것, 그런 걸 세상 속에서 (펼치려는) 그런 건 아니에요. 그건 그 안에 있어도 충분히 가능했고 한편으로는 그 형제들한테도 미안하지만 또 고마운 건 다들 축복을 해줬어요. 저는 그런 프란치스칸이 너무 좋아요. 이걸 하나의 실패한 사람이나 인생으로 보지 않고 본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래서 결혼할 때 프란치스칸 성당에서 결혼하고 저를 지도해 주셨던 총원장 신부님 아시는 용어로 표현하자면, '관구봉사자'라고 표현하는데 직접 결혼식 주례도 서 주시고, 축복받으면서 결혼을 했죠. 나오게 된 계기는 명확하게 말씀드리는 거고요.           

오후 : 책의 목차가 수도 생활의 단계에 맞춰서 구성을 하셨는데 거기에는 처음에는 헤맴의 시간, 두 번째는 마주침 바라봄 그리고 존재의 시간으로 마무리되거든요. 수도원 밖으로 나오는 그 순간이 여태까지 내가 갖고 있었던 걸 모두 내려놓는 게 아닐까라는 구절이 있어요. 작가님께서는 지금 그렇다면 어떤 시간대를 거치고 계신 지 궁금합니다.


김선호 : 물론 존재라는 건 항상 가지고 가요. 실제로 통계상으로도 수도원에서 구도, 존재라는 걸 찾아가는 사람이나 일반 밖에서 뭐 철학이든 아니면 과학이든 일상 안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든, 그런 사람들 안에서 존재라는 걸 맛봤다고 하는 그런 통계가 있어요. 심리학적인 통계가 있는데, 퍼센트가 비슷해요. 둘 다 비슷하거든요. 존재라는 걸 항상 들고 가는, 쥐고 가는 어떤 하나! 아까 말씀드린 레이더처럼 들고 가는 하나의 부분이고 제가 요즘에 느껴지는 부분은 '만남'이라는 단어가 저한테 이제 좀 와닿아요.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제 성향 상, 저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타입이 아니에요. 내향성도 많이 강하고,  혼자 어릴 때부터 글을 쓰기를 좋아했던, 그런 문학소년 같은 분위기.  좋게 표현해서 문학 소년이고 안 좋게 표현하면 범생이 같은 재미없는... 친구도 한두 명 밖에 없고 요즘에는 '만남'이 저한테 소중하게 다가오고 글을 통해서 만났던 사람들이 저를 찾아오고 강연을 하게 되고. 강연 나가면 강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강연할 때보다 강연 끝나고 질의응답을 받는 시간이 기다려져요. 어떤 선생님들은 그래요. 질문들 들어오면 겁나지 않아? 어려운 질문을 하거나 막 그러면 어떻게 대답도 해줘야 될 것 같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고 있더라고요. 물론 많이 질문받다 보면 예상 질문도 있지만, 워낙 우리 어머님들이 나이가 지금 40대 정도고요. 초등학생 학부모님들. 그때 겪는 어떤 고민들이나 그런 것들이 개별적이고 묻어 나오는 것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이 이렇게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까 개별적으로 제가 해주고 싶은 말들... 물론 제 말이 정답은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이렇게 나오더라고요. 저도 좀 신기했어요. '아, 지금은 해답까진 아니어도 그동안 나한테 누적된 것들이 질문하고 답해 주면서 조금조금씩 펼쳐 놓는 시기가 됐구나.'라는 걸 느껴요. 그래서 지금 시기는 만남의 시기인 것 같아요. 그런데 예상되는 것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만난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걸 다 쏟아 준다는 것이잖아요. 다 쏟아내고 소진할 때쯤 되면 다시 또 동굴로 들어갈 때가 올 것 같아요. 지금은 내주는 시간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칼이 그렇게 날카로운 칼은 아닌 걸 제가 알아요. 정신분석가들의 표현을 빌리면 저는 정신 분석가를 흉내 내는 사람 정도? 아이들은 보여요. 원인이, 제가! 어른들은 잘 안 보여요! 오픈하는 정도가 다른 거 같아요. 아니면 제가 바라보는 칼날이 좀 아이들에게 가까울 수도 있고 상담하거나 질의응답을 받을 때는 제가 어떤 부분까지는 보이냐면 현재 힘든 상태는 있는 그대로 보여요. 그러면 공감해 주는 게 저절로 되죠. 공감해 주는 것도 상당한 감정이입이 들어가고 직접적인 공감은 그 아픔이... 아까 제가 빈 칠판을 보고 (존재) 들어왔다는 듯이 그 아픔이 직접 들어오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힘들어요. 근데 그 순간 그분들은 좀 위로를 얻고 가죠. 근데 공감의 한계라는 게 치유가 되진 않아요. 치유라는 건 결국은 자기가 직접 자기를 보고 아픈 부분을 도려내야 하는, 그 부분을 직면해야 되기 때문에, 그게 저의 한계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저는... 도려내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공감하는 부분, 그 부분을 아픔을 바라볼 수 있는 사실 그것도 힘들기 때문에! 그게 제 몫에 한계라면 솔직히 거기서 멈추고 싶어요. (공감 너머에까지) 바라보는 게 너무 무섭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라는 게 예상은 돼요. 그 과정으로 가기는 해야 돼요. 그러려면 일단 있는 걸 제가 다 쏟아내고 언젠가 그걸 마주하러 가야 되겠죠. 그리고 그냥 여기에 머물래요라고 하면 제 선택이 존중될 거예요. 그 상태, 머무른 상태로 갈 수도 있어요. 뭐, 나쁘지 않아요.      


오후 : 저는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에 대해서 조금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다 취소입니다. '편린片鱗'이라고 하나요? 사람을 아는 것에 대해서, 작은 점을 찍듯이 알아 가지고 이것이 이 사람의 전부의 모습이구나라고 생각했던 게 오늘 작가님과 얘기하면서 무참히 무너졌습니다. 작가님께서 수도원을 나왔기 때문에 저는 수도원에 나온 이유를 찾고 있지 않았었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만나서 직접 얘기할 수 있는 게 저의 고정관념, 편린을 무너뜨릴 수 있는 진짜 좋은 자리인 것 같아요. 그리고 작가님을 앞으로 또 계속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도 '만남의 시간'인가 봐요. 이제 마무리해야 될 시간인데요. 독자님들께 이런 마음으로 좀 읽어봐 주시길 바라는 게 있다면, 마무리하면서 이야기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선호 : 읽어 봐주세요! 그것뿐이에요! 느껴지는 부분은 각자 다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가재를 질문해 주셨듯이, (읽는 분들 각자에 따라) 어떤 부분은 여기서 나오는 아이가 등장할 수도 있고 노숙자를 만났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자기가 만나는,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히 자신의 삶과 뭔가가 연관성이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읽어보시고 만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오후 :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이야기가 많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란 말이 있는데요. 임제록에 있는 말입니다. '어디에 머물든지 주인이 되어라. 그러면 그곳이 곧 진리의 자리다' 저는 이 말이 '수도원 안이나 밖이나, 진리를 찾는 그 자리가 수도원'이라는 말씀이 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자 오늘 귀한 자리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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