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부엌을 채우던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주말이라 깨우지 않나?' 아무 소리도 달큰한 밥냄새도 없었어요. 아버지는 오늘도 논에 나갔을 테고, 새벽에 엄마가 일어나는 소릴 들은 것 같은데…. 불안이 잠을 깨웠어요. 마루에 아버지가 앉아 있었어요. 형은 벽에 기대 아버지를 치켜보고 있었어요.
“아부지, 엄마는예?”
내가 물었어요. 형은 아무 말 말라는 듯 눈치를 주었어요.
“아침은 너그가 알아서 챙기 무라.”
아버진 뭔가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나 구겨진 구두에 뒤꿈치를 끼워 넣고 뛰쳐나갔어요.
“니 배고프나?”
형이 물었어요. 배가 고팠어요.
“아니, 괜찮다.”
나도 눈치가 있어요.
“그라믄, 나중에 아부지 들어오면, 라면이나 끓이 묵자.”
점심때가 다가오는데도 아버진 돌아오지 않았어요.
"형아, 아부지 엄마 왜 안 오지?"
“엄마, 안 올끼다. 아부지는 엄마 찾는다고 안 들어오는 기다.”
형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침, 아버지가 들어왔어요.
“밥 뭇나?”, 아버지가 부엌에 들어갔어요. 어제 먹다 남은 된장찌개에 물을 조금 더 넣고 불에 올렸어요. 너구리 라면을 두 봉지 뜯어 수프는 하나만 넣고, 된장이 끓자 라면을 집어넣었어요. 아버지가 요리를 하다니, 처음 보는 모습이 무척 이상했어요. 심지어 라면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요. 어색하고 불편한 데 종종 해줬으면 좋겠어요.
“다 먹고, 아부지랑 나가자.”
아버지는 택시를 불렀어요.
“기사님, 동촌 유원지로 갑시더.”
아버지는 가는 내내 택시 아저씨랑 이야길 주고받았어요. 한 번도 우리랑 밖을 나간 적이 없던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오늘 낯선 일들이 너무 많아요.
유원지에는 작은 배를 태워주는 곳이 있었어요. 갈매기 그림이 그려진 파란색 작은 배였어요. 노 젓는 아저씨가 끄트머리에 앉아 균형을 잡고, 아버지와 우리가 차례로 탔어요. 물은 검고 깊이를 알 수 없었어요. 비가 오려나? 하늘엔 온통 먹구름이었어요. 물도 하늘도 모두 검고 그 속을 알 수 없었어요. 배가 뒤집히면 어떡하지? 나는 물속에서 숨을 못 쉬는데, 배의 양쪽을 꽉 붙잡았어요. 노 젓는 아저씨가 말했어요.
“아가, 무서운 갑네. 가만히 있으면 괜찮데이. 무섭다고 이리저리 움직이면 더 위험하데이.”
작은 배가 서서히 강 한가운데로 들어갔어요. 우리가 조금만 더 무거웠다면 검은 물이 넘쳐 흘러들어올 것만 같았어요. 엄마가 있었다면 함께 탈 수 있었을까?
“너그, 이제 아부지하고만 살아야 한다. 인자 엄마 없데이. 알았제?”
아버지가 말했어요. 형은 대답하지 않았어요.
“지완아, 알겠제?”
낯선 이 모든 것들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라면, 난생처음 나온 아버지와의 나들이, 불편했지만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예….”
비늘 같은 물결이 자꾸만 배에 부딪혔어요. 조금만 흔들려도 깜짝 놀라 배를 꼭 쥐었어요.
“자! 그만 돌아갑니데이. 야가 무서운 갑네. 손 봐라, 바들바들 떨고 있네.”
노 젓는 아저씨가 배를 돌렸어요. 배에서 내리니 그제야 큰 숨이 쉬어졌어요. 형도 나도, 아버지도 돌아오는 내내 아무런 말이 없었어요. 택시 아저씨가 말을 걸어도, 아버진 짧게 대답만 할 뿐이었어요.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어요. 난 도롯가에 있는 상상을 했어요. 엄마가 사라지지만 않았다면 난 지금쯤 검은 아스팔트 위에 서 있겠죠. 아버지는 마루 한쪽에 놓인 전화기 옆에 내내 앉아 있었어요. 아까부터 아버지를 치켜보고 있던 형이 불쑥 말했어요.
“언제까지 이래 앉아 있을 겁니꺼?”
“뭐라노, 이 노무 자슥이.”
내가 놀라서 그렇게 느낀 걸까, 아버지도 형의 태도에 놀란 것 같았어요.
“나갈 거면 아부지나 나가지, 와 어무이가 나가야 하는데요. 아부지 때문에 어무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는 하는교?”
핏대 선 눈이 아버지와 닮았어요. 난 너무 무서웠어요.
“형아야, 그라지 마라. 제발.”
아버지의 오른손이 채찍처럼 날아갔어요. ‘철썩’, 마루에 있던 형이 마당에 나가떨어졌어요. 난 형에게도 아버지에게도 가지 못했어요. 형은 핏대 선 눈으로 아버지를 노려보았어요.
“와, 말로는 도저히 안 됩니꺼? 내가 언제까지 아부지한테 이래 맞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교?”
뺨이 점점 벌겋게 부어올랐지만, 형은 아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았어요. 어금니를 악물고, 칼을 든 그날처럼 점점 숨소리가 거칠어졌어요.
“넘들이 그라데요. 내가 아부지 닮았다고. 피는 못 속인다고. 내는요, 그 말이 죽기보다 싫심더. 내가 아부지랑 살믄, 보고 배우는 게 그것밖에 더 있겠는교. 내는 차라리 아부지가…”
아버지의 얼굴이 꼬꾸랑할매 나무의 썩은 밑동처럼 검게 일그러졌어요.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차라리 술병이라도 걸리가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이…, 이눔의 시끼가….”
아버지의 손이 다시 높이 올라갔어요. 형은 얼굴을 감싸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어요. 나도 모르게 마당으로 뛰쳐나갔어요. 나도 모르게 형을 감싸안았어요. 눈을 감았어요. 아무런 통증도, 천둥소리도 없었어요. 대신 마르고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어요.
“지완이 니도…, 같은 생각이가?”
무서워 눈을 뜰 수 없었어요.
“예….”
형은 붉게 젖은 눈으로 아버지의 등을 노려보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사라지자 형의 단단했던 어깨가 물러지고 무너져 갔어요. 난 형을 꼭 안았어요. 아버지를 닮은 형의 몸에서 악다구니가 다 빠져나가면 좋겠다,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꺼져버렸으면 좋겠다고요.
밤이 깊어지는데 아버진 돌아오지 않았어요. 불안해서 왕버드나무 아래에 나가 보았어요. 꼬꾸랑할매 나무의 크고 긴 두 팔이 안아주듯 벌리고 있었어요. 가지 끝에 걸린 초저녁 보름달은 어쩐지 훨씬 더 커 보였어요. 이런 날은 누구도 밤길을 헤매진 않을 거예요.
“이게 누고, 완이가? 밤늦게 와 혼자 나와 있노?”
상일이 아제였어요. 아버지랑 가장 친한 친구예요.
“아부지가 아직 안 들어와서예.”
엄마 이야기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안다, 엄마 집 나갔다매. 아까 아부지랑 어디 갔다 왔노?”
난 동촌 유원지에 다녀온 이야길 했어요. 노 젓는 아저씨가 가만있으면 괜찮다고 했지만, 너무 무서웠다고.
“동촌 유원지? 허, 거길 갔다고. 거는 엄마아빠가 첨 데이트한 곳인데. 니 아나? 너그 아부지 엄마 중신해준 사람이 바로 아제데이. 근데 인마 여테까이 내한테 양복 한 벌 안 해주네. 허! 구두쇠다, 진짜 구두쇠.”
상일이 아제는 말만 그렇게 할 뿐, 실상 아버지랑 제일 친해요. 아버지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사람 같아요.
“완아, 니 아부지 마이 밉제?”
“아니요. 안 미운데요.”
그게 사실이었으니까요. 같이 있으면 무섭고 불편해도 미운 건 아니었어요.
“그래? 허, 요놈 착하네. 나 같으면 대가리 굵어지면 아부지한테 그냥 팍 씨, 덤비불낀데.”
아제는 주먹을 휘두르더니 크게 웃었어요. 순간 형이 했던 일을 말하려다 겨우 참았어요.
“완아, 니 가만히 있그래이. 뭘 하려고 하지 마래이. 너그 아부지 불쌍한 사람이다.”
상일이 아제는 꿍쳐둔 쌈짓돈을 꺼내듯 아버지 이야기를 풀어놓았어요.
“정태 말이다. 어릴 적에 머슴살이 해가면서 병든 아부지 약수발을 드는데…, 허! 나쁜 놈이 새끼들. 어린 애가 잘 모른다고 가짜 약을 팔았다. 정태가 명절 때마다 지랄하는 거는 그 때문인 기라. 아부지 죽인 죄인이라고.”
그 길로 13살에 고향을 떠난 아버지가 처음 일을 배운 곳이 이발관이었다고 해요.
“쪼끄만 게 어른들 등에 올라타서 머리 감기고 바닥 쓸며 일했는데, 애한테는 큰돈 맡기면 안 된다믄서 월급 한 푼 안 주더란다. 또 같이 일하는 놈들한테는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정태가 키운 거는 독기밖에 더 있겠나. 완아, 세상이 그렇데이. 너그 아부지가 혼자서 얼마나 섪었겠노.”
아제가 내 등에 손을 올렸어요. 흙덩이처럼 무거웠어요.
“지금 이렇게 이발관도 차리고 논도 사고 한 거, 다 느그 아부지가 독하게 산 덕분이데이.”
“인마, 니 지금 아한테 뭔 소리 하노?”
아버지가 나무 아래로 걸어왔어요. 꼬꾸랑할매 나무 아래에 서 있는 아버지가 유독 작게 보였어요.
“니 야들 두고, 어디 갔다 오는 기고?”
“가기는 어델, 이발소에 있었제.”
“하이고, 빙신아. 하기는 니가…, 갈 데가 있딨겠노.”
상일이 아제가 혀를 찼어요.
“제수씨 만났나? 니 남희한테 그라면 안된데이. 그 얼마나 착한 사람이고. 니 하나 믿고 시집 온 사람한테. 가서 무조건 무릎 꿇고 빌어라.”
“넘에 가정사에 뭔 관심이 그리 많노, 신경 끊으라. 내 알아서 할 기다.”
아버지는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어요.
“뭔 소리하노. 니 아들, 엄마 없이 키울 기가?”
그 말에 아버지는 상일이 아제 멱살을 잡았어요.
“이 새끼, 간신히 참고 있는 사람한테, 죽고 싶나?”
하지만 상일이 아제도 물러나지 않았어요. 아마 아버지랑 대거리 할 사람은 상일이 아제밖에 없을 거예요.
“친구야! 야 이놈의 정태야! 야들도 니처럼 살게 할 기가. 니 아나? 지완이가 죽을라고 도롯가에 서성이는 거, 트럭에 받혀 죽을라고 했던 거 니는 알고 있냐고, 새끼야!”
아버지가 날 쳐다보았어요.
나는 상일이 아제를 쳐다보았어요.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니 어디서 뭔 소리 들었노?”
“용식이가 카더라, 니 아들이 죽을라고 했다고. 그냥 냅뒀다가는 초상 치르겠다고. 이 세상에 니만 불쌍하제, 니만 억울하제? 니 때매 고생하는 남희는, 너그 아들은? 니 눈에는 니 밖에 안 보이제?”
아버지는 움켜쥔 멱살을 스륵 풀고 바닥에 주저앉았어요.
어깨가 일렁이고, 가슴이 울렁이고, 숙인 고개 아래로 땅바닥에 빗방울 자욱이 뚝뚝 생겨났어요. 그러고는 막힌 숨이 터지듯 울음이 터져 나왔어요.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어요.
“지완아, 니는 먼저 집에 들어가 있그라.”
상일이 아저씨가 얼른 가라는 듯 손짓했어요.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어요.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다시 택시를 불렀어요.
“성완아, 니는 집 보고 있거라, 지완이는 니는 아부지랑 외할부지한테 가자.”
형이 더듬더듬 말을 꺼냈어요.
“아부지, 아까는…”
아버지가 형의 말을 끊었어요.
“됐다. 그라고 니는…, 내 닮지말그라. 니한테 내가 많이….”
아버지는 말을 삼켰어요.
아버지는 섬돌 아래 무릎을 꿇었어요. 외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어요. 멀뚱히 서 있는 내게 외할아버지가 말했어요.
“우리 손주 마이 컸구나. 완아 니는 여기서 기다리거래이.”
외할머니가 술상을 가져왔어요. 왜 또 술이지, 아버지 술 먹으면 정신 나갈 텐데.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아버지는 조용했어요.
“세상천지 처자한테 손찌검하는 놈보다 못난 사내가 없는 기라.”
외할아버지가 한번 크게 말씀하시는 듯하다가, 내내 조용히 말하셔서 잘 들리지 않았어요. 소리를 치지 않고 화를 낼 수 있나요? 아버지는 늘 고함치고, 빗자루나 먼지떨이나 뭐든 잡히는 대로 때렸는데.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심더. 지는 어데도 보고 배울 데가 없십니더.”
아버지는 고개를 떨구고 혼잣말처럼 말했어요. 외할아버지는 긴 숨을 내쉬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에게 두어 번 접힌 종이를 내밀었어요.
“남희가 오늘 이걸 갖고 왔더라.”
한 면에 동글동글하게 연습장을 뜯은 티가 나는, 낯익은 그건, 분명 내가 아버지 이발관에 넣어두려고 했던 편지였어요. 어떻게 저게 여기에…. 아버지는 편지에 머리를 파묻었어요.
“부모가 땅이라면 자네가 참 모진 땅에서 자란 거 내 안다. 그래도 인자 자네가 바로 그 땅 아닌가베. 자네는 어떤 땅이 될 기고?”
아버지는 대청마루에 그대로 잠이 들었어요. 술기운을 못 버티고 쓰러졌나 봐요. 외삼촌이 춥다며 방에 들어가자고 했어요.
“아니요. 아부지 옆에 있을게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는 듯, 웃는 듯 바라보던 외삼촌은 풀색 모포를 가져다주었어요.
마루엔 아버지와 나, 단둘이 남았어요. 산 중턱에 있는 외할아버지 집은, 해가 지면 금방 찬 공기가 산기슭을 타고 내려와요. 아버지가 웅크리는 바람에 무릎께까지 모포가 흘러 내렸어요. 모포를 끌어 올리려는데, 아버지의 손이 스륵 미끄러지듯 내 손목을 잡았어요. 움찔 손을 빼려 했지만, ‘완아.’ 아버진 눈을 감은 채 나를 불렀어요.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형에게 한 말일까요, 내게 한 말일까요.
“니는 내 버리면 안 된데이. 니만큼은 날 떠나면 안 된데이.”
두 팔을 펼치면 웅크린 아버지를 모두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문득 내가 죽으면 정말 아빠가 바뀔까, 의심이 들었어요. 아빠는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아요. 살아도 살아있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어요.
아빠 곁에 있다 잠들었나 봐요. 방안은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차 있어요. 아빠도 지금은 어느 방에서 자고 있겠죠, 이렇게 따뜻한 방이라면 아빠도 웅크리지 않을 거예요. 잠결인지, 꿈결인지 말소리가 들려요.
“아부지, 난 이제 어디에 기대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예.”
“남희야, 니가 도저히 안되겠다면 내는 안 보낸다. 그런데 완이 봐라. 완이가 누구 씨앗이겠노. 완이 보고 살그래이.”
우우 찬 바람 소리가 들리지만, 방안을 채운 호롱불 빛이 찬바람을 밀어내고 있어요. 노란 불빛에 빨려 들어가요. 노을 지는 길에 서 있어요. 발아래를 보아요. 아스팔트가 노을빛에 일렁여요. 비늘 같은 물결이 되어요. 더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아빠를 떠나서도, 엄마를 떠나서도 안 되겠다 생각해요. 난 작은 배를 타고 있어요. 엄마와 아빠가 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아요. 형인지 나인지, 원래 나인지 모르겠어요. 봄날 하늘에 비친 강물이 푸르게 찰랑여요. 노 젓는 아저씨가 말해요.
‘흔들려도 겁내지 마래이. 가만히 있으면 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