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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웅 Sep 26. 2022

'될놈될'을 증명한 연구가 상을 받았다

재능 있는 사람 대신 운 좋은 인물이 성공하는 이유에 대한 수학적 설명

노벨상의 패러디 버전으로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는 진짜 노벨상 못지않게 유명해져 버린 통에 이미 잘 아시는 분도 상당히 많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간단하게나마 설명을 드리자면 ‘웃기거나 기발한 연구나 업적에 주는 상’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는데요.


이그노벨상을 수여하는 단체인 미국 하버드대의 격월 발간 과학잡지 ‘있을 것 같지 않은 연구 회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는 지난 15일 올해 경제학상 수상자로 이탈리아 카타니아대 연구팀을 선정했다 밝혔습니다.


이들이 상을 받은 논문은 2018년 7월 ‘Advances in Complex Systems’ 학술지에 등재된 ‘TALENT VERSUS LUCK: THE ROLE OF RANDOMNESS IN SUCCESS AND FAILURE’입니다. 주제는 “재능 있는 사람 대신 운 좋은 인물이 성공하는 이유에 대한 수학적 설명”이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될놈될’에 대한 수학적 분석이라고도 풀이할 수 있겠죠./동행복권 홈페이지


연구팀은 성공하기 위해선 재능이 어느 정도 필요는 하지만, 최고의 인재가 사회의 정점에 이르는 비율은 의외로 적다는 사실을 계량적으로 증명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이는 운 좋은 범재 일부가 유능한 사람 대다수를 추월해 버리며 발생하는 현상이었습니다.


심지어 지능을 상쇄하는 요소는 의지나 노력, 근면, 기술, 과단성 같은 ‘흔히 꼽히는 지능의 대체재들’도 아니었습니다. 연구팀은 이면에서 성공을 좌우하는 요소는 단지 ‘무작위’(randomness)일 뿐이라 지적했습니다. “사람들이 개인의 성공담에서 행운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는 인정해 주지만, 따지고 보면 그마저도 과소평가된 경우가 태반이다”는 살짝 과격한 멘트까지 곁들여서 말이죠.


/‘TALENT VERSUS LUCK: THE ROLE OF RANDOMNESS IN SUCCESS AND FAILURE’ 논문 中




이그노벨상이 세간에 ‘잉여롭거나 황당한 연구에 장난처럼 주는 상’이라 알려진 통에, 수상작 또한 평가절하를 당하는 상황은 흔한 편입니다. 그 탓에 카타니아대 연구진들의 이 논문 또한 할 일 없는 고학력자들의 기행 내지 심심풀이로 느껴질 여지가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일반인 시각으로 보기엔 다소 기괴한 이그노벨상 수상작이라도 각 학문 분과에선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이를테면 지난 2015년엔 호주 플린더스 대학의 콜린 래스턴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삶은 달걀을 날달걀로 되돌리는 회전 기법 연구로 이그노벨상 화학 부문 수상을 했는데요. 이는 기실 꼬이거나 변성된 단백질을 화학적 처리 없이 물리력만으로 원상복구하는 기술인 만큼 연구 가치가 높을뿐더러 향후 응용 가능한 분야도 무궁무진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최근엔 이 테크닉을 응용해 자궁암이나 폐암 치료에 쓰는 항암제 작용을 4배 이상 높이는 연구가 상당 수준까지 진척됐다 하고요.


콜린 래스터 교수./플린더스대


‘TALENT VERSUS LUCK: THE ROLE OF RANDOMNESS IN SUCCESS AND FAILURE’ 역시 이그노벨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폄하당하기엔 아까운 면이 다분한 논문입니다. 연구진의 의도는 ‘성공은 운빨일 따름이니 재능이건 노력이건 삶엔 무엇 하나 필요 없다’는 냉소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논문에서 ‘우연의 산물’일 수 있는 ‘성과’를 사회 전반에서 지나칠 정도로 높이 평가하고 있으니, ‘성과주의’에 기반한 보상 절차에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전개했습니다. 즉, 남보다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인 사람들에게 명예나 자원을 과도하게 분배하려는 발상은 불공정하고도 위험한 오판이라 말하고 싶었던 것이죠. 다만 그토록 의미 깊은 연구임에도 다른 상은 모조리 제쳐 두고선 결국 받은 것이 이그노벨상이니, 어떤 면에선 ‘성공엔 아무래도 재능보단 운이다’는 그들의 이론을 스스로 여실히 증명해 버린 꼴이 되기도 했지만요.


여담으로 이 연구팀이 이그노벨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라 합니다. 그들은 지난 2010년엔 직원들을 임의로 승진시키면 조직의 효율성이 오히려 높아진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경영 분야 수상자로 선정된 이력이 있습니다.


연구팀은 ‘피터의 법칙(조직 구성원은 자신의 무능이 드러날 때까지 승진하므로 상위 직급은 무능한 인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을 해소할 목적으로 당시 수상작인 ‘The Peter Principle Revisited: A Computational Study’ 논문을 작성했다 밝혔습니다. ‘유능해 보이는’ 인물만 골라 뽑는 것은 피터의 법칙을 가속할 뿐이라는 사실을 게임 이론에 의거해 밝힌 것이 해당 연구의 골자인데요. 그 결론은 상식이나 직관과 다소 어긋나 있었음에도 학자들이 보기엔 엄밀성과 설득력이 상당했는지, 데이터 분석 회사인 Altmetric이 2018년에 진행한 조사에선 소셜 미디어 저널에 기재된 논문 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더욱 많은 이야기가, '오늘도 출근중'에서 독자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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