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립선암 87%, 뇌암 80%, 폐암 67%, 간암 57%….
일본 지바현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가 1994~2006년 환자 1600명을 상대로 중입자 치료 효과를 분석해 도출한, 암 치료에서 완치율을 의미하는 ‘5년 생존율’ 값입니다. 같은 시기 한국 암 환자의 5년 생존율 평균은 30%대에 불과했습니다. 탄소처럼 무거운 입자를 고속으로 발사해 암세포를 정밀하게 파괴하는 의료 기기인 중입자 가속기를 ‘꿈의 암 치료기’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국내에서 실전 투입 중인 의료용 중입자 가속기는 두 대뿐입니다. 모두 세브란스병원에 있습니다. 2023년 6월 중입자치료센터가 문을 연 이래 지난해 말까지 이 장비로 치료를 받은 환자는 538명에 달합니다. 대략 하루에 한 명꼴로 치료를 받은 셈입니다. 환자 1인당 치료비는 5000만원 이상이지만, 인프라 구축비와 유지비를 고려하면 이 정도 속도론 막대한 수입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꿈의 암 치료기’를 둘러싼 비즈니스는 다른 곳에서 더 활발합니다. 바로 ‘보험 업계’입니다. 삼성생명, 한화생명, NH농협생명 등은 올해 초부터 ‘항암 중입자 방사선 치료’를 포함한 상품을 출시했습니다. 중입자 가속기 치료를 받으려면 못해도 4~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보험 영업 전화는 심하면 하루에도 2~3통씩 걸려오는 지경입니다.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도 비즈니스적인 교훈은 있습니다. 트렌디한 기술 산업 못지않게 그 기술에서 파생하는 업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뮌헨재보험이나 AXA XL 등이 내놓은 ‘AI 리스크 보험’도 그러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기업이 자체 개발한 자율 주행이나 의료 AI 모델이 사고를 일으켰을 때를 대비한 상품입니다. 딜로이트는 지난해 9월 발표한 ‘글로벌 금융 서비스 산업 트렌드’ 보고서에서 전 세계 AI 리스크 대비 보험료 총액이 연평균 80%씩 증가해 2032년엔 47억달러(약 6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메타버스’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SK텔레콤의 ‘이프랜드’, KT의 ‘메타라운지’, 서울시의 ‘메타버스 서울’ 등 메타버스 사업 태반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문을 닫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서 확인되는 메타버스 관련 자격증은 145개에 달합니다. 메타버스 서비스로 돈을 번 사람은 없고, 메타버스 강연이나 출판 및 자격증 발행으로 수익을 낸 전문가만 많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7월 대한상공회의소 제주 포럼 ‘AI 토크쇼’에서 AI 산업을 ‘골드러시’에 비유해, “골드러시 때엔 금을 캐려는 사람들에게 청바지나 곡괭이를 파는 기업이 돈을 벌었다”고 말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AI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AI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AI 시대에 돈을 벌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만 있다면 테크 전문가가 아닌 사람에게도 비즈니스 기회는 무궁무진할 겁니다.
원문은 2025년 9월 26일자 조선일보 지면에 기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