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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서울대 입학 전, 학교 폭력 12년의 기록

프롤로그|학교 내 괴롭힘, 최상위권 학생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by 문현웅

프롤로그




내겐 학교라는 공간이 즐거웠던 역사가 없다. 죽음의 트라이앵글 한복판에서 남들에 비해 나은 성적을 거두고 또 거둔 끝에 서울대 현역 정시 입성이라는 그럴듯한 성취를 손에 넣었음에도 말이다. 초·중·고에 걸쳐 12년간 그토록 매진했던 학업은 사실 내게 있어선 의무교육의 터전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한 발악에 불과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사람과 잘 지내는 법을 도통 알지 못했다. 숱한 동년배와 함께하는 일상 자체가 내겐 견뎌 내기 어려운 고통의 연속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내겐 타인과 평범하게 교류하기 위해서 필요한, 남들 대부분은 갖고 있는 무언가가 결여돼 있었던 듯했다. 보통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는 선민의식적인 사고의 발로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 부족함을 결손으로 인식하며 평범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한평생 동경했다. 결핍된 그것의 정체는 솔직히 지금도 알지 못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래 스무 해가 흘렀으나 나는 여전히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툴다. 다자이 오사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내왔을 뿐, 인간의 삶이란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꼴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내게 학창 시절 내내 괴로움을 주었던 그들의 입장도 아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비록 성인이라 해도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때 편안함이 없고 뭔가 이물감이 느껴지는 상대는 아무래도 꺼려지기 마련이다. 하물며 하는 말도 어렵고 사고 회로도 이해가 안 되는, 특출나게 예민하고도 괴팍한 아이를 그저 또래라는 이유로 포용해 주기를, 마찬가지로 미숙했을 청소년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이유에서 비롯하는 괴롭힘은 차라리 마음 한구석에서 이해해 줄 수가 있었다. 나마저도 가끔은 나라는 사람이 답답하고 혐오스러웠으니까. 나 역시도 이따금은 나를 어디 구석에 처박아 버리고선 쥐어 패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으니까.


다만 오히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우등생이라는 성취에 따르는 굴레의 무게였다. 성적이 곧 임원 자격의 척도였던 1990년대를 나는 학생 신분으로 살았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인지했던 만큼 내심으로는 가급적 타인과 부대끼는 상황 자체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파멸에 가까운 친화력과 인간관계에도 불구하고, 단지 성적 우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내내 학급 자치 활동의 핵심을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게다가 때로는 그 와중에 일부 '의욕적인 선생님'들의 교육적 실험을 위한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까지 맞닥뜨리곤 했다. 물론 그러한 시도 대부분은 같은 반 아이들이 반길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고, 그렇게 피어오른 불만은 선생님을 향하기에 앞서 자연스레 나를 거쳐 가기 마련이었다. 타인에게 사랑받는 성품을 타고나지 못했고, 그러한 사실을 스스로도 뼈저리게 자각하고 있음에도, 그저 성적이 탁월하다는 이유로 동년배와 마찰할 것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장소가 즐거울 이유 따윈 무엇이었겠는가. 하릴없이 고통스럽기론 사실상 연옥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여러분의 자녀가, 혹은 가족이나 지인이 얼마나 우수하고 또 성적이 훌륭하건, 그들에게 있어서 지식의 요람이 곧 안락한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는 의외로 우등생에게 줄곧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선생님들은 종종 말한다. 학생이 열 명 있으면, 두 명은 거꾸로 매달아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반면 둘은 어르고 달래고 두들겨도 공부에 관심을 기울이는 법이 없다. 결국 우리는 다그치고 지도해야만 학업에 힘을 쏟는 여섯에 열중해야 한다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곧 '알아서 잘하는 아이'라면 되레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기댈 곳 하나 없는 상황에서 거두는 출중한 학업 성취는, 때에 따라 도리어 그들을 고립시키며 짓누르는 트리거로 작용할 수 있다. 초상위권은 주변의 기대와 부담만큼이나 질투와 원망 또한 크게 받는 자리다. 실제로 나는 문과 기준 전교 2등을 달리고 있을 때 자퇴를 실행으로 옮기기 직전까지 갔었다. 여러분의 소중한 사람들 또한 겉으로 보이는 점수와 등급이 얼마나 훌륭하건, 내적으론 그러한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나는 적는다.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오로지 공부 하나만 잘했던 아이가, 열두 해에 걸친 의무교육 기간 동안 그를 찍어 누르던 갖가지 압력과 괴롭힘을 뚫고서 서울대로 달아나기까지의 여정을, 실제와 가상을 섞어 그려 낸 픽션이다. 무엇을 잘해서 명문대 입학에 성공했느냐가 초점이 아니다. 이른바 '서울대급'인 아이라 해도 학창 시절을 이토록 험악하게 보낼 수 있음을 모두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다루는 사건들은 어쩌면 누군가의 자녀와 형제가, 혹은 친구나 연인이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숨죽여 감내하는 잔혹한 현실일 수도 있다. 그것만큼은 분명히 말해 두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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