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거는 비상은 비상이 아니었음을
코로나 19가 창궐하는 상황이 꽤 오래도록 이어지는 만큼, 요즘 들어선 어느 기업이 비상 체제를 선포했노라는 이야기가 이젠 그리 낯설게 느껴지질 않습니다.
실제로 지난 1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업체 302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5.8%가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으며, 8.3%는 ‘생존까지 위협받았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생존을 위협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기업 중 41.1%는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으며, 대다수는 ‘매출 급감(79.0%)’을 이유로 꼽았습니다. 구체적인 조치로는 대부분이 ‘임금 감축 등 경비 절감’(71.9%, 복수응답)과 ‘휴직 혹은 휴업’(50.0%)을 택했습니다.
비상시에 비상 체제를 가동하는 것 자체야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코로나 19 창궐 사태는 그 누구라도 비상 발령을 납득할 만한 실체가 있는 위협이기도 하고요.
다만 비상은 한자 뜻풀이 그대로, 예사롭지 않은 특별한 상황이며, 그런 만큼 대응책엔 위기 극복을 위해 어느 정도는 무리와 희생을 강요하는 내용이 담겨 있기 마련입니다. 대개는 임금을 깎는다거나 근로 시간을 연장하는 식으로 고통을 분담하는 조치를 동반하죠.
물론 일시적인 희생을 감수하며 환란의 시기를 큰 피해 없이 넘기는 것 자체는 결코 나쁜 전략이 아닙니다. 오히려 두 걸음 나아가기 위한 한 발짝 후퇴라는 점에선 슬기롭기까지도 하죠. 그럼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비상의 상시화’입니다.
비상을 명분 삼아 진행하는 재정 긴축이나 사내 분위기 단속은 대체로 경영에 이득이 되는 편입니다. 이 때문에 숱한 기업이 위기를 넘기고도 체제만큼은 비상시기의 텐션을 유지하고픈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지난 2012년 대한상공회의소가 당시 기준으로 설립한 지 30년을 넘긴 전국 기업 300개에 설문한 결과, 65.7%가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시 비상 경영 체제로 버텨왔다고 답했습니다.
비상 경영을 발동하면 지출은 줄고 노동량은 증가하며 이득을 볼 수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지나치게 장기화되면, 특히 비상을 명분으로 야근이나 특근을 상시 요구할 경우, 총체적인 생산성은 오히려 평시보다 하락할 위험 또한 있습니다.
지쳐버린 임직원의 반발과 의도적인 태업 문제는 차치하고서, 설령 구성원들이 비상 경영의 필요성에 온전히 동감하며 충실히 따른다 가정하더라도, 그들 또한 사람인 이상 결국엔 육체가 견디질 못하며 노동 생산성에 손실이 발생하기 마련이니까요.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강모열 교수와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이동욱 연구강사 연구팀이 지난 2020년 1~2월에 걸쳐 임금근로자 389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주당 52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는 같은 기간 동안 40시간 일하는 근로자에 비해 건강 문제로 인한 노동 생산성 손실이 남성은 5.1%, 여성은 6.6% 더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소득이 낮을수록 뚜렷해졌으며, 가장 소득이 낮은 군을 기준으로 했을 때 52시간 이상 근무자는 40시간 근무자에 비해 건강 문제로 인한 노동 생산성 손실이 남성은 5.8%, 여성은 10.1%만큼 추가로 발생했습니다. 연구팀은 “흔히 생산량 증가를 목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근로자의 건강 상태를 악화시켜 오히려 노동 생산성이 저하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이는 비용이나 생산성 측면에서 경제적인 선택이 아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람인 HR연구소는 “비상 경영 체제가 필요한 상황은 분명 존재하며, 조직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려 단기간 내에 위기를 돌파하는 것은 의미 있는 전략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비상 경영을 남용하면 오히려 손해가 된다”며 “필요시엔 비상 경영을 활용하되 적절한 시기에 통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가장 효율적인 방책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