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배우기보다 힘든 직장 문화 적응
※오해를 피하고자 미리 말씀드립니다. 개인적으론 이 글에 언급하는 언론사 간에 우열이나 수준 차이는 딱히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제 기자 시절 경험에 비추어 회사마다 존재하는 문화 차이를 편히 설명하기 위해 예시로 들었을 뿐입니다.
C사에서 우수한 실력을 발휘했던 기자가 K사로 이직하면, 출근 당일부터 곧장 에이스 대우를 받으며 활약할 수 있을까요?
답은 ‘쉽지 않다’ 입니다. 설령 전 직장과 아예 같은 부서로 배정돼 완전히 동일한 업무를 맡더라도, 능력을 단숨에 100% 발휘하긴 어렵습니다. 글 쓰는 속도는 예전에 비해 더뎌지고, 데스크(언론사에서 취재·편집을 지휘하는 직위자)는 송고한 기사에 잘못 쓴 부분이 많다며 질책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물론 언론사 성향에 따라 취재처 혹은 취재원이 어느 정도 응대 수준이나 태도를 바꿀 수는 있습니다. 이는 분명 업무 진척이나 성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고요. 하지만 그 정도는 누구나 예상 가능한 변수이며, 채용한 언론사가 이를 참작하지 않고 이직한 기자를 평가한다면 오히려 바보 소리를 들을 일이죠.
실제 난관은 의외의 지점에 있습니다. 바로 회사마다 제각각인 ‘글쓰기 문화’입니다. 여러분은 언론사마다 기사 내 표현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예를 들면 조선일보는 다소 애매한 시간대를 표현할 때 ‘쯤’을 사용합니다. ‘지난 26일 오후 10시쯤’과 같은 식으로요. 하지만 연합뉴스는 ‘쯤’ 대신 ‘께’를 씁니다. 즉 같은 시간대를 ‘지난 26일 오후 10시께’로 적는 것이죠. 뉴스1처럼 ‘쯤’도 아니고 ‘께’도 아닌 ‘경’을 붙이는 언론사도 있고요.
시간 표현뿐이겠습니까? 동아일보는 천 단위를 숫자로 나타내지만 연합뉴스는 한글로 표기합니다. 이를테면 같은 액수 돈이라도 동아일보에선 ‘3000만원’으로 적지만 연합뉴스에선 ‘3천만원’이라 쓰죠. 세계일보는 ‘부장판사’로 쓰는 표현을 경향신문은 ‘재판장’이라 적기도 하고요. 한겨레에서는 '홈페이지' 대신 '누리집'을 써야 하며 조선일보는 스포츠면에서 '용병' 표현 사용이 금지돼 있습니다.
그 밖에도 회사마다 다르게 적용하는 크고 작은 기사 작성 원칙은 한둘이 아니며, 언론사에서는 이를 매우 엄격히 준수할뿐더러 반복해 어기면 상당한 질책을 듣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갓 이직한 기자가 새 직장의 작법을 바로 숙지하고 일필휘지로 기사를 써 내려가긴 그리 쉽지 않죠. 그러다 보니 내용을 떠나 형식상의 문제 때문에 기사 작성도 더뎌지는 데다, 실수도 반복돼 ‘기본도 안됐다’는 꾸중을 거듭 듣기 일쑤인 것입니다. 물론 실력이 정말 에이스급이라면 웬만해선 오래지 않아 기량을 되찾을 수 있겠지만, 아무튼 최소한 한동안은 이런저런 마찰을 피하기가 어렵긴 합니다.
이는 당연히 기자 업계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느 직종이건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모든 회사엔 저마다의 규칙과 프로세스가 있으며, 심지어 동종업계라 해도 이러한 ‘사내 문화’는 천차만별이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이 바뀌면 전과 같은 일을 맡더라도 한동안은 역량 발휘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임직원이 적잖습니다. 실제로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지난 2013년 1월에 발표한 ‘경력입사자의 전략적 관리방안’에 “직급과 전 직장 유형 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경력직 입사자는 대체로 신입사원과 조직 적응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기술했습니다.
하지만 경력직을 뽑는 기업 대부분은 이직자가 현업에서 바로 성과를 내길 바랍니다. 사람인이 지난 9일 기업 330개사를 대상으로 ‘경력직 채용 선호도’를 설문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서 53.3%가 ‘경력직을 신입보다 우선 채용한다’고 응답했고, 그 이유로는 ‘바로 업무에 투입할 인력이 필요해서(73.9%·복수 응답)’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습니다.
옮겨온 이에게 급히 실적을 내라 요구하다 기껏 뽑은 인재를 오래 품지 못하고 잃기도 합니다. 지난해 3월 사람인이 기업 385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1.7%가 경력사원에게도 수습 기간을 두고 있었으며, ‘업무 성과가 낮은 유형(48.7%·복수 응답)’이나 ‘회사 문화에 부적응(40.2%)’하는 인물이 수습 기간에 떠날 확률이 높은 이직자 1, 2위로 나타났습니다.
사람인 HR연구소는 “제아무리 뛰어난 축구 선수라도 활약하던 팀이나 리그를 옮기면 적응 기간이 필요하듯, 이직자도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려면 새 직장의 문화나 업무 프로세스를 익히기 위한 기간과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며 “기업은 장기적으로 이득을 보려면 경력직에게 성과를 서둘러 요구하는 대신 여유를 주며 연착륙(Soft landing)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