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회사는 회사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살짝 윗세대까지만 해도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은 곧 우리 개개인의 영예로 이어진다 믿는 분들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엔 공교육에선 나라의 융성이 내가 발전하는 근본이라 가르쳤고, 언론 또한 나라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는 것이 국민의 본분이며 마땅한 도리라 강조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물론 국가와 개인을 동일시하는 여론이 전혀 없다고 까진 말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과거에 비해선 분명 이 둘을 별개로 간주하는 인식이 흔해졌습니다. 저명한 외국인이 공개 석상에서 싸이를 안다 말해도 예전보단 감흥이 덜하고, 박지성의 왼발과 오른발을 겨레의 공공재로 보지 않는 사람 또한 늘었다는 것이죠.
회사를 바라보는 태도에도 비슷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직장의 발전이 곧 나의 성장이라 말씀하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았죠. 실제로 네덜란드의 조직심리학자 게르트 홉스테드가 1967년부터 1973년까지 56개 국가에서 근무하는 IBM 직원 10만여 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한국은 당시 개인주의 성향이 100점 만점에 18점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91점을 기록한 미국은 물론, 중국(20)이나 일본(46)보다도 회사원들의 집단주의 성향이 강했다 합니다.
그러나 현시대 회사원의 마음가짐은 선배들과 사뭇 다릅니다. 사람인이 지난해 8월 451개 기업에 물은 결과 56.5%가 ‘밀레니얼 세대(1980년~2000년 초반 출생 세대) 인재를 관리하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 중 1위는 ‘개인주의가 강하고 조직보다 개인을 우선시한다’(67.8%, 복수응답 허용)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불이익에 민감하다’(37.3%), ‘개성이 강하고 조직에 융화되지 않는다’(32.9%), ‘퇴사·이직을 과감하게 실행한다’(32.5%), ‘언행이 거침없다’(20.8%), ‘이전 세대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15.7%)는 응답들이 뒤를 이었습니다. 어느 답변을 보건 과거에 비해 집단주의가 쇠퇴한 대신 개인주의 기조는 강해졌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죠.
몸담은 직장과 명운을 함께한다는 관념 또한 희석된 지 오래입니다. 지난 2018년 사람인이 직장인 39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46.8%가 재직 중인 회사에 애사심이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그 이유로 ‘연봉이나 복리후생이 만족스럽지 못하다’(24.8%, 복수응답 가능)는 것을 가장 많이 꼽았고, 다음으로는 ‘회사가 직원보다 기업의 이익·입장만 생각한다’(19.8%), ‘회사의 발전 가능성이 작다’(17.8%)’ 등이 근거로 언급됐습니다. 사람인의 지난 1월 조사에서도 직장인 1129명 중 39%가 직장을 인생의 ‘2순위’로 보고 있다 말했습니다. ‘3순위’(30%)와 ‘아예 우선순위에 없음’(12.3%)이 뒤를 이었으며, ‘1순위’라 말한 응답자 비율은 5.3%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자신과 직장의 흥망성쇠를 별개로 생각하는 사원들에게, ‘회사를 위한 희생’을 쉽사리 권할 수 있을까요?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4월 30개 대·중견기업에 소속된 직장인 1만3000여 명을 심층 면접 조사해 발표한 ‘한국기업의 세대갈등과 기업문화 종합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40·50대는 ‘성과를 위해 야근은 어쩔 수 없다’는 항목에 각각 35.5%, 42.8%가 긍정적인 답변을 한 반면 20·30대는 26.9%, 27.2%만이 동의를 표했습니다. ‘조직이 성장해야 내가 존재한다’거나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할 수 있다’는 항목에서도 2030세대는 4050세대에 비해 ‘동의한다’는 응답을 한 이가 적었습니다.
즉, 젊은 직장인들을 회사에 붙들며 성과를 내게 하려면, 감정에 기대 ‘공동체 의식’이나 ‘애사심’ 등을 호소하는 대신 보다 명확하고 합리적인 보상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는 “세대갈등을 넘어서려면 피상적인 리더십 교육이 아니라 조직의 체질을 ‘가족 같은 회사’에서 ‘프로팀 같은 회사’로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가족처럼 인연과 정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프로팀처럼 ‘선수가 팀을 위해 뛸 때, 팀은 선수가 원하는 것을 준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