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삶이 힘겨운 청춘들을 위해
미생은 노량진에 살았다. 학원이 늘어선 대로 뒤편으론 고시원을 향해 뻗은 샛길이 즐비했고, 간판이 볕을 가린 좁다란 골목은 낮에도 내내 침침했다. 끝까지 닫히질 않는 미생 집 창가엔 언제나 기름 먹은 컵밥 향내가 감돌았다. 집이라야 곰팡이가 세 겹 덧방한 벽지를 뚫고 번지는 두어 평 되는 반지하였다.
미생은 집에 비바람이 새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글 읽기만 좋아해 늘 궁핍했다. 그 아내가 배달대행을 뛰며 겨우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굶주림을 참다못한 아내가 울며 푸념했다.
“당신은 한평생 서류전형 응시도 하지 않으면서 어쩌자고 글만 읽는단 말입니까?”
미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내 아직 글이 서툴러서 그렇다네.”
“생산직 취업도 못 한단 말입니까.?”
“공장일을 평소에 배우지 못했으니 어쩌오?”
“그렇다면 하다못해 장사라도 해야지요.”
“장사를 하려 해도 밑천이 없으니 어쩌오?”
아내는 마침내 성을 냈다.
“밤낮없이 글을 읽더니 ‘어쩌오’ 하는 것만 배웠수? 공장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 한다, 그럼 도둑질은 어떻수?”
미생은 책장을 덮고는 벌떡 일어섰다.
“애석하다. 내 10년을 기약하고 독서를 하려 했더니 이제 겨우 7년이로구나.”
그 길로 미생은 문을 박차고 나섰다. 그러나 거리에 아는 이가 없었다. 그는 강남 인근을 서성이며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세간의 투자자 중 제일가는 부자가 누구요?”
고용노동부가 올해 창업지원 프로그램에 300억원 가까이를 편성했다 알려주는 이가 있었다. 미생은 곧장 세종을 향해 내달렸다. 그는 장관을 만나 길게 읍하고서 대뜸 말했다.
“내 집이 가난하여 밑천이 없소. 도모하는 일이 있으니 돈을 좀 빌려주시오.”
“그렇게 합시다.”
장관은 곧장 거금을 내주었다. 미생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자리를 떴다. 고용노동부에는 고등고시를 통과한 우수한 관료와 박사학위를 거머쥔 엘리트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그들이 문을 나서는 미생의 몰골을 보건대 영락없는 거지 품새였다. 남방 너머로 비치는 라운드티는 목둘레가 늘어나 주름져 있었고, 코끝이 닳아 반질거리는 스베누 S라인은 이미 양말을 수차례 물들이고 남은 색이 없었다. 주머니에 대충 박아넣은 노키아 X6이며 해어지다 못해 무릎이 나오기 직전인 츄리닝 바지, 고기 맛을 본 지 오래라 온통 푸석해진 피부 꼴을 보아하니 분명 집안에서도 손을 놓아버린 가망 없는 장수생이었다. 모두가 어리둥절해 물었다.
“장관님께서 아시는 분입니까?”
“난생처음 보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혈세를 그리도 건네다니, 더구나 이름 석 자도 묻지 않으시고 어찌하려 그러십니까.”
주변이 모두 놀라는 와중에도 장관은 태연히 답했다.
“이건 그대들이 알 바가 아닐세. 무릇 남에게 구하는 것이 있는 젊은이는 자기의 스펙을 과장해 늘어놓기 마련이야. 자격증은 무엇이 있으며, 인턴은 어떤 기업에서 했노라며 말일세. 그러면서도 눈빛 한구석엔 나약한 티를 감추지 못하며 입가로는 비굴한 웃음을 흘리지. 하지만 이 사람은 평생 사람은커녕 햇볕조차 멀리한 히키코모리임에도 고관대작을 마주하매 비위를 맞추려는 기색이 없으며 자신의 행색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네. 재물에 관심이 없고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런 만큼 구상하는 일 또한 분명 시시한 규모가 아닐 테지. 나 또한 그를 시험해보고자 한다. 게다가 애초에 주지 않았으면 모르되, 이미 돈을 내주었으니 구태여 이름 석 자를 물어 무엇하겠나.”
입금을 확인한 미생은 집 대신 남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다른 곳은 땅값이 저렴하고 세액감면 혜택이 우수한 지방 공업단지였다. 다음날부터 그는 온·오프라인에 풀린 커피믹스를 모조리 거두어 곳간에 저장했다. 얼마 뒤 전국 일터에 커피믹스가 동이 났다. 당이 떨어진 근로자들이 몸을 일으키지 못하매 나라 안에 제대로 굴러가는 중소기업이 드물었다. 미생을 비웃던 사업자들은 오히려 엎드려 빌며 커피믹스를 구했다. 열 배 값을 불러도 물리치는 이가 없었다.
“복지라고는 봉지 커피가 전부인 회사가 이토록 넘쳐나다니, 이 나라 산업의 뿌리가 심히 얕구나.”
미생은 탄식했다. 그는 커피믹스를 다 처분하고서 제주도로 몸을 옮겼다. 그리고선 에너지 드링크로 분류된 음료를 모조리 사들였다.
“몇 해 못 가 언론에서 IT 강국 운운하는 기사가 자취를 감출 것이다.”
과연 오래지 않아 크런치에 실패하며 프로젝트 납기를 맞추지 못하고 무너지는 기업이 수두룩했다. 미생은 연일 밀려드는 유튜버들의 인터뷰 제의를 거절하기에 바빴다.
어느 날 미생은 제주에 머무르는 한 늙은 교수에게 물었다.
“한반도 안에 사람이 모여 살만한 땅이 아직 남아 있는가?”
“있습죠. 예전에 탈주한 박사과정 학생을 사흘 밤낮으로 추적하다 인적 드문 시골에 닿았는데, 가만히 살피건대 공기가 맑고 주택 가격이 합리적이라 가족을 부양하기에 버거움이 덜했습니다.”
미생이 매우 기뻐했다.
“만일 나를 그곳으로 인도한다면 노후에 부족함이 없도록 돕겠네.”
제안을 받아들인 노교수가 미생을 그 땅으로 안내했다. 미생이 높은 바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더니 마뜩잖은 투로 말했다.
“헬리오시티 부지보다 좁은 땅을 무엇에 쓴단 말이냐. 다만 군수가 테크노밸리에 관심이 있으니 구로 정도는 될 수 있겠구나.”
교수가 말했다.
“사람보다 소가 많고 50대가 청년회장을 맡는 동네에서 대체 누구와 더불어 신사업을 일으킨단 말입니까?”
“워라밸이 있으면 인재가 저절로 찾아오기 마련일세. 주4일 근무제 플랜을 짜는 것이 걱정이지, 어찌 사람 없는 것을 근심하겠는가.”
당시 전국 각지에선 갓 입사한 중소기업에 사표를 던지는 신입사원들이 속출했다. 전국 고을 수령과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방책 마련에 골몰했으나 보도자료에 얹을 만한 실적이 도무지 나오질 않았다. 다만 스스로 직장을 버린 이들도 중견·대기업에선 받아 주는 곳이 드물어 대부분이 배를 곯고 있었다. 소문을 들은 미생이 취업 카페의 장을 찾아 설득에 나섰다.
“첫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 중 지금 너희 손에 남은 것이 얼마나 되느냐?”
“한 해도 온전히 채우지 못하고 나온 이에게 누가 퇴직금을 준단 말이오.”
“덕질할 돈은 저축해 두었는가?“
“새 터전은 대기업에 마련하고자 학원 등록을 하고 스펙을 쌓는 데만도 돈이 모자라 손을 놓은 지 오래요.”
“그럼 집은?
동석한 카페 스텝들이 왁자하게 웃었다.
“최애캐와 더불어 해로할 내 집이 있다면 취직에 목을 맬 이유가 있겠소?”
“정말 그렇다면 왜 집을 마련해 굿즈와 다키마쿠라를 늘어놓는 대신 끼니 때우기에도 빠듯한 돈을 고스란히 학원가에 바치는가? 그렇게 하면 명절 때마다 피규어의 안위를 혈육들에게 위협당하는 일도 피할 수 있고, 비천하고 음란한 문물을 즐기고 숭상하는 자손은 호적에서 이름자를 제거해 마땅하다는 소리도 듣지 않을 테니 얼마나 좋은가? 실로 심신이 내내 자유롭고 풍족할 길이 아니겠는가.”
“누군들 그렇게 살고 싶지 않겠나? 손에 쥔 돈이 없으니 이 모양 이 꼴인 게지.”
미생은 웃으며 말했다.
“암호화폐와 주식이 역대급 불장이거늘 어찌 돈이 없음을 근심한단 말인가? 정 그렇다면 내가 마련해 주겠네. 내일 여의도공원에 나오면 USB 무더기가 보일 것이오. 그것은 모두 비트코인을 담은 콜드월렛이니, 내키는 대로 가져가도 좋소.”
이렇게 말하고는 홀연히 떠났다. 이날 카페엔 미친놈의 헛소리를 비웃는 글리젠이 끊이질 않았다. 다음날 일부 회원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의도역으로 향했더니, 과연 미생은 USB를 한가득 쌓아 두고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회원들은 매우 놀라 엎드리더니 척추를 곧게 하며 그랜절을 올렸다.
“그저 형님을 일론 머스크라 여기고 따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디 원하는 만큼 들고 가서 이를 종잣돈 삼아 부를 이룩해 보아라.”
미생의 말이 떨어지자 모여든 이들이 앞다퉈 USB를 챙겼다. 그러나 대부분이 환전한 돈을 근본 없는 알트코인이나 GME에 부었다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색목인들에게 농락당하며 나가떨어졌다.
“돈이 복사가 되는 호황에도 잃는 놈들이 직장 없이 부귀영화를 누릴 방도가 있겠느냐? 하지만 이제 와 대기업 입사를 도모하자니 너희 중고신입들은 나이 제한에 걸려 갈 곳도 없겠구나. 차라리 잘 되었다. 내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이제부터 너희들은 그간 써둔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모두 챙겨 오거라.”
약속한 날에 이르자 전원이 도로 모여들었다. 미생은 이들을 시골에 미리 준비해둔 신설법인 건물로 이끈 뒤 각자 적성에 맞는 업무를 빠짐없이 배정했다. 이에 국내 실업률이 폭락하자 관민이 한마음으로 기뻐했다.
미생이 정시 출퇴근을 보장하고 유럽식 장기휴가제를 시행하자 모두의 의욕과 애사심이 극에 달하며 업무 생산성이 크게 늘었다. PS와 스톡옵션을 넉넉히 뿌려도 회사에 돈이 오히려 남았다. 급기야 상장에 성공한 미생은 자기 몫의 주식을 약간 헐어 현금을 마련했다.
“이제야 하찮은 시험 하나를 겨우 마쳤구나.”
미생은 탄식하고서 이사회를 소집했다.
“내 처음 너희들과 이 땅에 올 적에는 우선 너희 살림을 일으켜 세운 뒤 기업도시를 꾸려 전 세계 유수의 대기업들과 힘을 다해 겨뤄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터는 좁고 나는 다국적기업을 이끌 재목이 못 되니 짊어진 과업이 분수에 넘치기 전에 그만 떠날까 한다. 너희들은 아이를 낳거든 두 발로 걷는 때부터 전문직의 아름다움을 누누이 가르치고, 정히 월급쟁이를 지망하거든 종놈 노릇도 대감 댁에서 해야 하는 법이라 굳게 이르거라.”
그러고는 마을 외곽에 담을 두르고 학교와 복합쇼핑몰을 유치했다.
“동네에 모든 편의를 갖추면 바깥을 나돌 일이 없다. 가지 않으면 오는 이도 없으렷다.”
또 억만금을 떼어 탈모약 개발사에 흩뿌렸다.
“연구개발이 가속되면 혜택을 받는 이가 적지 않으리라. 거금은 시중에 풀어 봤자 인플레만 유발할 요물이니, 인류의 행복 증진에 이바지함만 못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IP 주소를 추적해 일베나 메갈 등에서 암약한 기록이 있는 이를 모조리 내몰았다.
“화근이 될 싹은 미리 제거해야 한다.”
이로부터 미생은 온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생계가 곤란한 취업준비생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1조원이 남았다.
“이는 나라에 갚아야 할 돈이다.”
미생은 실로 오랜만에 고용노동부를 찾아갔다.
“그대는 나를 기억하오?”
장관이 놀라며 말했다.
“안색이 예전 그대로구려. 내어드린 돈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소?”
미생은 웃으며 말했다.
“풍요로울수록 얼굴이 피는 것은 제프 베조스의 습성이외다. 도를 좇는 이의 낯빛이 어찌 재물에 좌우되겠소.”
그러고는 1조원을 고스란히 장관에게 건넸다.
“내 하루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여 웅대한 뜻을 잠시 꺾었으니, 존귀한 나랏돈에 감히 손을 댄 것을 부끄러워할 따름이오.”
장관은 매우 놀라 절하며 돈을 사양했다. 그리고선 원금에 시중 이자만을 더해 받겠노라 말했다. 미생은 벌컥 화를 냈다.
“당신은 어찌하여 나를 도네에 미친 BJ 다루듯 하는가.”
라고 일갈하고는 삼선 슬리퍼를 끌며 가버렸다. 장관은 더 말해봐야 소용없을 줄 알고 가만히 그 뒤를 밟았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다다른 미생은 곧장 7호선에 올라타더니, 노량진역에서 내려 컴컴한 골목 한구석에 처박힌 건물 반지하로 들어가 버렸다. 마침 늙은 고시생 하나가 PC방 계단을 디디며 오르고 있었다.
“저 반지하엔 누가 살고 있소?”
“먼 지역에서 올라온 고학생이 살고 있다 들었소. 형편이 빈곤해 고향 부근 대학에서 간신히 학사나 마쳤음에도 글 읽기를 좋아하더니, 가출한 뒤로 소식이 끊긴 지 5년이오. 아내가 지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행적을 찾았는지라 요 부근에서는 사연을 모르는 인물이 없소만.”
장관은 비로소 그가 뜻을 펼치지 못한 지방대 졸업자임을 알고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다음날 장관은 받은 돈을 모두 거두어 반지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미생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내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굳이 비트코인을 뿌리고 억만금을 마다했겠소? 내 이제부터는 그대의 덕에 기대어 살 것이니, 그대는 수시로 나를 찾아와 주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최신으로 유지해 주며 뷔페식당 식권만 바닥나지 않으면 한평생 부족함이 없을 것이오. 무슨 까닭으로 재물에 얽매여 스스로를 고단하게 만들겠소.”
장관은 온갖 말로 미생을 설득했으나 끝내 뜻을 꺾지 못했다. 그날부터 장관은 미생의 의복과 양식이 궁핍할 즈음이면 직접 찾아가 근심을 덜어 주었다. 미생은 호의를 기꺼이 받았으나 행여나 필요에 넘치는 구석이 있으면 웃음을 거두었다.
“그대는 나를 망치려는 것이요?”
그러나 이따금 이벤트 쿠폰을 챙겨 찾아가면 매우 흡족해하며 더불어 밤새도록 가챠를 돌렸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자 두 사람의 정은 날로 두터워져 백년지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관은 미생에게 은근히 물었다.
“자네는 무슨 재주에 기대 불과 다섯 해 만에 거금을 벌었는가?”
“그야 쉬운 일이지. 우리나라엔 여가가 생산성 증대에 기여하는 바를 애써 무시하며, 입으로는 조기 경제교육을 외치면서도 단위 시간당 한계생산력 체감에 따른 야근의 비효율성엔 눈길을 두려 하지 않는 풍습이 있네. 휴전선 아래에선 일하는 모두가 극한을 넘어서는 과로를 상시 하고 있다는 것일세.
물론 자네에게 빌린 돈으로 이 땅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모조리 사들일 순 없지. 하지만 한계를 넘는 업무를 강요당하는 근로자가 연료로 쓰는 마실 거리를 거두는 것쯤은 불가한 일이 아닐세. 끊임없이 오버클럭 상태로 돌아가는 컴퓨터에 쿨링마저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나? 그러나 이것은 백성들을 괴롭히는 방법이니, 훗날 나의 계책을 다시금 모방해 펼치는 이가 등장한다면 그때는 필경 나라가 견디지 못하고 망가질 것이야.”
장관이 듣고서 다시 물었다.
“그럼 처음에 내가 돈을 내어줄 것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던가?”
미생은 말했다.
“틀림없이 줄 것이라고까지 믿은 것은 아니지만, 큰돈을 움직이는 이라면 내주지 않고선 배기지 못했을 것이야. 내 스스로 헤아려 보건대 나의 재주는 만금을 모으기에 넉넉하네만, 그 운명은 하늘에 닿아 있기에 범속한 필부는 이를 꿰뚫어 볼 도리가 없네. 그러니 나의 말을 능히 알아듣고 재능에 투자하는 이는 통찰이 남다르고 당장 이익보다는 먼 날에 이룩할 대업을 보는 식견과 인내를 겸비했음이 분명하네. 그러한 사람이 내게 돈을 아낄 연유가 있었겠는가. 자네 또한 하늘로부터 더 큰 인물이 되라는 명을 받아 나를 통해 행한 것일 뿐일세. 오히려 내 재산만으로 혼자 일을 시작했다면 그 성패 또한 알 수 없는 일이었을 게야.”
장관은 문득 미생의 재주와 배포가 아까웠다.
“바야흐로 지금 영웅의 기상을 두른 자들은 저마다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 스타트업을 이끌며 그 가슴에 품은 큰 뜻을 이룩하려 하고 있네. 지금이야말로 지략과 재주를 갖춘 이가 호기롭게 일어나 슬기를 펼쳐볼 만할 때가 아닌가. 자네는 워렌 버핏에게 점심 식사 초대를 받을 만한 역량을 지녔거늘 어찌 그리도 세속을 피한단 말인가.”
“허허, 예로부터 한평생 묻혀 산 삶이 어찌 한둘에 그치겠는가? 저 웃긴대학의 기린아로 불리던 귀귀로 말할 것 같으면 신문사와 장판파 놀이를 할 정도로 담대한 귀재였지만 불혹에 이른 지금도 일부 마니아만이 그의 작품을 숭상하며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루리웹의 괴도XX는 장안의 종잇값을 뛰게 할 정도로 기이하고 신묘한 글솜씨를 지녔으나 결국 음탕하고 기괴한 성정을 버리질 못하고 세상과 타협하길 거부하며 초야에 묻히는 길을 택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비상한 재주를 지녔음에도 부족하고 미운 데가 있다는 이유로 양지에서 뜻을 펼치지 못했네. 상한 데가 있는 나무도 손질해 쓰는 목수의 지혜를 본받을 줄 모르는, 오늘날 국가와 기업을 이끄는 이들의 기량을 능히 짐작할 수 있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돈벌이에 솜씨가 있어 마음만 먹었음 한강 이남 부동산을 모조리 쓸어 먹을 수 있었겠으나, 그렇다 한들 어차피 지방대 출신이라는 멍에는 평생토록 지우지 못할 테고 끝내 나라에서 귀히 쓰일 길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리하지 않았다네.”
장관은 탄식하고서 돌아갔다. 장관은 전부터 국회의원들과 교분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마침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에 선임됐다. 그는 어느 날 장관과 더불어 이야기하다 인재 추천을 권했다. 장관이 미생에 관해 이야기하자 위원은 매우 놀랐다.
“기이하도다, 그래 그 사람은 이름이 무어라 하던가?”
“소인이 그와 3년 가까이 어울렸으나 아직 이름을 모릅니다.”
“틀림없는 이인(異人)일세. 한번 같이 가세.”
이윽고 밤이 되자 위원은 수행하는 보좌관을 다 물리치고 장관과 같이 미생의 집을 찾았다. 차폭이 넓어 골목을 지날 수 없자 한참을 걸었다. 장관은 위원을 반지하 계단에 세워 두고는 혼자 안으로 들어가 미생을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미생은 듣는 둥 마는 둥 딴청이었다.
“들고 온 RTX 3090이나 어서 내어놓게.”
두 사람은 사이버펑크 2077을 설치해 즐기며 창궐하는 버그와 미흡한 완성도를 더불어 욕했다. 장관은 문밖에 세워 둔 위원이 민망스러워 거듭 언급했지만 미생은 좀처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어느덧 이슥한 밤에 이르자 그제야 미생이 말했다.
“손님을 불러볼까.”
위원이 들어왔다. 그러나 미생은 일어나 맞이하는 기색이 없었다. 위원은 몸 둘 바를 몰라 하다 마침내 나라에서 어진 이를 구한다는 뜻을 말했다. 미생은 손을 저었다.
“퀘스트는 많고 말은 장황하니 듣기에 지루하다. 지금 네가 맡은 나랏일은 무엇인가.”
“환경노동위원회에 속한 국회의원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제법 힘이 있는 벼슬아치로구나. 내 오랜 세월 블랙기업을 전전하며 한반도 노동 현장의 패악질과 악습을 두루 겪은 현인을 천거할 테니, 당신이 대통령에게 말해 그를 삼고초려의 예로 모시고 귀히 쓰도록 인도할 수 있겠는가?”
위원은 머리를 떨구고 한참을 생각하다 말했다.
“어렵습니다. 둘째가는 계책을 여쭙고자 합니다.”
“나는 본디 ‘둘째’라는 것을 배운 바 없는 사람이다.”
미생은 한참을 외면하다 위원의 간청에 이기지 못해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릇 천둥으로 내리칠 자는 오래도록 구름으로 떠돌아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내 주위를 둘러보매, 고생을 모르며 경험이 얕은 이가 핏줄이나 친분에 기대 쉽사리 만인의 위에 올라, 주변에 폐를 끼치고 기업의 건전한 경영과 번성을 방해하면서도 오히려 재물과 권세를 누리는 꼴이 적지 않더라. 너는 재주도 연륜도 없는 난봉꾼들이 뒷문을 타고 넘으며 유능한 인재들의 근로 의욕을 짓밟는 행태를 법과 제도로 다스려 근절할 수 있겠느냐?”
위원은 재차 고개를 숙이고선 마지못해 입을 뗐다.
“어렵겠습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그럼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가장 쉬운 일이라면 능히 해낼 수 있겠는가?”
“바라건대 듣고자 합니다.”
미생은 말했다.
“이 땅엔 엄연히 근로기준법이 존재하나, 수많은 업자가 근로자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악용해 도리에 어긋나는 불공정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하는 사례가 허다함을 너희들도 잘 알고 있으렷다. 그러니 국회에 청해 현존하는 근로계약서를 전수조사하고 조금이라도 법도에 거스르는 바가 포착되면 즉시 파기 후 다시 작성하도록 명할뿐더러 부리는 이를 농락한 고용주를 엄히 벌해 발본색원하라.
새로운 법을 만들라는 게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법을 바르게 세울 뿐이니 이 얼마나 쉬운 일이더냐. 더불어 그렇게 맺어 둔 불공정한 계약이나마 어김없이 이행됐는지 확인한다면, 노동계의 질서를 한층 더 다잡을 수 있을 것이네. 그런 다음 향후 도리에 어긋나는 행보를 걷는 자는 예외 없이 처벌할 것이라 널리 선포하면, 잘 풀리는 때엔 우리의 기업문화와 생산성이 선진국을 앞지를 것이며, 못 되더라도 직원 등골로 감자탕을 우리는 쥐새끼 중 상당수가 자취를 감출 걸세.”
황망한 표정으로 듣던 위원이 말했다.
“감시할 기업은 허다한데 위원들은 머릿수가 적고 맡은 일이 번잡한 데다, 수많은 기업인이 법정에 서면 경제의 기틀을 누가 다질 수 있겠습니까?”
미생이 벌떡 일어서며 크게 꾸짖었다.
“이른바 정치인이란 것들은 대체 무슨 염치로 얼굴을 들고 다니는 종자들이더냐? 비록 국민을 현혹해 분에 넘치는 자리를 얻었을지라도 부끄러움을 아는 자라면 미흡한 역량으로나마 힘닿는 데까지는 공복의 업을 수행하고자 견마지로를 다해야 마땅하지 않으냐? 그런데도 해고노동자를 자처했던 이가 부당해고 논란에 휘말려 당으로부터 경고를 받는가 하면, 위원 지위를 남용해 부정 채용을 한 국회의원까지 나왔으니 이 무슨 추태란 말이더냐?
옛날 서유구는 경화세족 가문 출신으로 높은 자리에 올랐으나 만민을 위해 손에 흙을 묻히길 주저하지 않았고,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안영은 평생 절약하고 검소했음에도 군주에게 간하는 바른말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지금 입으로는 고용·노동을 염려한다고 말하며 자기 몸이 고단하고 피로해질 것을 꺼리는 놈들이 감히 위정자를 자처하는 것이냐?
그뿐만 아니다. 도둑질을 단속하고 근절함이 너희들의 본분이거늘, 범죄자들이 잡혀 들어가며 저잣거리가 비게 될 것부터 걱정해? 내 비로소 세 가지를 말했으나 너는 그중 한 가지도 못한다 하면서 목민관 코스프레를 한단 말이냐? 이 나라에서 정치인이라 불리는 자들은 참으로 이렇단 말인가? 너 같은 자는 발바닥을 벗기고 레고 위에서 볏섬을 지게 하는 것이 옳다.”
미생은 좌우를 돌아보더니 밀레니엄 팔콘 10179를 바닥에 힘껏 내리쳐 흩었다. 위원은 매우 놀라 바깥으로 달아났다. 다음날 위원이 미생의 집을 다시 찾았더니, 휑하니 빈 집엔 주인의 종적이 남은 바가 없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송갑석 의원(더불어민주당, 광주 서구갑)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으로부터 제출받은 2019년 산업기술인력수급 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신입직원 중 68.6%가 최종합격 후 1년 이내에 조기 퇴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사업체 규모가 작은 500인 미만 중소‧중견기업의 신입직원 조기 퇴사자 수는 4만5458명으로 대규모 기업(4427명) 대비 약 10배 많았습니다. 중소‧중견기업의 조기 퇴사율은 73.6%로, 이는 대규모 기업의 40.4%보다 33%포인트 높은 수치였습니다.
심각한 취업난이 내내 풀릴 기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토록 힘겹게 목에 건 사원증을 한 해도 지나지 않아 도로 내려놓는 청춘들 또한 적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오로지 ‘요즘 젊은것들이 나약해서’ 직장을 등지는 것일 뿐일까요. 온 힘을 다해 거머쥔 꿈을 허망하게 놓아버린 청년들 앞에서, 기업과 정부는 아무 책임이 없다 말하며 그저 떳떳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