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졸다가 눈을 떴다. 전철이 멈춰 서고 출입문이 열렸다. 아직도 여섯 정거장이나 더 가야 한다.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얼핏 창밖으로 커다란 구렁이를 본 것 같았다.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열차는 이미 출발했고, 오른쪽 출입문 앞에 마흔 즈음 돼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두툼한 겨울 니트를 입은 여자의 목에 갈색 목도리가 칭칭 감겨있었지만, 아랫도리는 속이 비치는 시폰치마 한 장뿐이었다. 게다가 맨발이었다.
여자가 휴대폰을 귀에 대고 말했다.
“언니, 나야. 지금 바빠?”
초조한지 추운건지 여자가 자기 발등을 번갈아가며 밟아댔다.
여자가 나를 등지고 서 있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여자의 맨발과 내 털부츠 사이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어느새 나는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에 잔뜩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언니, 나 길을 잃은 것 같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아니. (지도 어플은 있어. 근데 그게 좀 이상해. 노선도가 다 글자로 바뀌어있어. 길 설명이 아니라 그냥 이상한 이야기들만 잔뜩 적혀있다니까? 잠깐만. 내가 한번 읽어줘 볼게.”
소라껍질 속 파도처럼 다가왔다가 멀어지길 반복하는 여자의 목소리에 애가 닳았다. 오른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옆자리로 엉덩이를 밀어 넣고 기둥에 어깨를 기댔다. 몸에 힘이 빠지면서 여자의 목소리가 좀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 Time over 된 부분)
아프다.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지조차 모르겠을 만큼 여기저기 쑤신다. 눈알도 뻑뻑하고. 카페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문득 떠올랐던 이야기로 에포케 연습을 해 봤다. 오늘은 일찍 아이를 찾아서 집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