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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며화려한 Jan 08. 2020

취준과 취업 사이

일상생활

 아이들이 방학을 했고 자유로운 시간에 약간의 제동이 걸렸다. 마음껏 즐겁게 보내겠다고 작정한 나의 마지막 1월. 몇 살까지 일을 하며 살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 남은 자유의 시간임은 당장엔 분명했다.

 오후 네시부터 움직인 날은 저녁이 여유롭다. 반찬을 여러 가지 만들고 뚜껑을 반쯤 닫아놓은 채 열기를 식히고 있노라면 밥이 취사가 되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여백의 시간에 나의 공간인 식탁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주로 핸드폰을 하지만 책을 읽는 시간도 있다.

 오늘은 부지런히 준비한 덕에 책을 읽게 되었고 앉아있는 무릎 위로 까미가 조용히 다가와 앉았다. 순간 여유로움이 마음 가득 들어찼다. 어떤 것으로도 만족을 줄 수 없는 꽉 찬 기분이라는 것이 이런 걸까. 크게 즐거울 것도 속상할 것도 없지만 모자라지 않은 완벽한 중간의 마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취업에 정신이 팔려 당장 1월부터라도 일하러 나갈 수 있습니다의 자세로 살았는데. 어느새 나는 남아있는 하루하루를 아까워하며 출근일의 디데이를 세고 있다. 취준과 취업의 한 글자 차이는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간절하게 만들었다가 아쉬워하게도 만들었다가 불안함에 몸부림치게 했다가 안정감에 나태해지게도 만든다. 구인구직 어플 알림 소리에 부지런히 확인 도장을 찍던 내가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며 고양이를 쓰다듬는 기분을 직장을 다니면서도 느낄 여유가 있으려나 걱정한다.

 사회초년생이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 일과 생활의 자연스러운 배분이 되지 않았던 게 아쉬움으로 남곤 했다. 나는 항상 피곤했고 쉴 때 어딘가라도 외출을 해야 했으며 그마저도 즐겁지 않으면 시간을 아깝게 흘려보낸 것에 화를 냈다. 일을 할 땐 일을 밥을 먹을 땐 식사에 집에 있는 시간에는 원래대로의 나로서 자연스럽게 지내고 싶은 것이 지금의 바람인데. 나 잘할 수 있을까.

 군산에 있는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나의 책에 감명받는 희귀한 경험을 하면서 나로서의 모습을 잘 지켜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의 하루는 교대시간에 맞추어 엉켜가겠지만 그 안에서 규칙성을 만들어가야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이 함께하는 삶. 서른여덟에 다시 사회로 나가는 난 이제는 잘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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